에세이/비너스 요원의 오퍼레이션 마스 (완)

남초의 극단성은 무정부주의다

@blog 2024. 2. 18. 12:49




















  어린시절 나는 또래 여자애들과 노는 것보다 남동생과 남동생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모르겠어. 그냥 여자들은 너무 사리고 놀아서 재미없더라고. 난 동적인 놀이를 좋아하는데 여자아이들은 정적인 놀이를 좋아하는 터라 그 모든 것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놀이터에서 남자 애들과 노는 여자애는 나 뿐이었고 놀이터 뿐만 아니라, 문방구, pc방, 남자애들이 모일 법할 곳에서 다같이 함께 잘도 놀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쳤고 남동생도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싫은 건가?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몇년을 같이 놀았는데 갑자기 나와 놀기 싫다고? 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은 어느 정도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었으니, 왜냐면 그때 그애들의 나이가 여자에게 한창 성적 호기심을 느끼고 은밀한 생각을 남자끼리만 교류하고 싶은 나잇대라서 그렇다.



  실제 사회에서도 여자를 배척한 남자들만의 은밀한 교류문화는 남초 회사, 남자 유저들이 많은 온라인 게임, 남초 동호회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다. 그러니깐 남자와 끈끈하게 친해지려면 대화가 통해야한다는 것도 있어야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농담, 성적 욕구를 담은 희화화, 음담패설도 어느정도 해야지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편하다고 하는 여자, 여자끼리는 기싸움이 있으니 남자와의 우정을 만들고 싶다는 여자가 절대 남자들과 깊이 친해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장벽을 넘지 못해서이고 결국은 해봤자 털털한 여자, 여왕벌 행세하고 싶은 여자, 튀어보이고 싶은 여자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거다.



  남자가 더 편하다는 여자가 남자들과 깊이 친해질 수 없는 이유는 음담패설 외에도 주먹다짐 문화 역시 한몫한다. 남자들 사이에서 주먹싸움이라던가 몸싸움은 위법의 영역까지 가지 않고, 또 맞은 애 역시 자기가 맞았다면서 경찰에게 신고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남자들 사이에서 주먹싸움은 암묵적인 합법행위거든. 법의 힘을 빌려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방법보다는 똑같이 위법인 폭행을 가하면서 복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 어찌보면 음담패설과 주먹다짐 문화, 이거 다 법의 영역에 들어가면 빨간줄 하나 생길 수 있는 문화지만 남자들이 모인 남초에서는 하나의 해프닝이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취급한다.



  그런데 꼭 어디 덜떨어진 남자, 여자에게 인기 드럽게 없이 생겼는데 눈치도 드럽게 없는 남자가 남자들의 세계에서만 통할법할 규칙을 끌고 와서는 여성들 앞에서 “한대 맞아볼래?“ ”한 판 해봐?“ ”와. 저년 몸매가 000하고 0000하네. 그거 남자들 사이에서 칭찬인데.” 라면서 본인 스스로의 품격을 떨어트리곤 한다.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뛰어난 남자라고 평가받은 남자는 하나같이 젠틀한 남자인데 덜떨어진 남자가 뭐 그런거 알겠어? 예술에서는 솔직함이 최고의 미덕이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과거 기안 84가 패딩을 입고 시상식에 참여하는 것이 논란이 되었던 이유 역시 본인이 보내왔던 세계만 생각하고 타인의 세계를 배려하지 않는 “규칙, 허레허식 엿이나 먹으라 그래!” 라는 무정부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시상식에 참가한 사람들 역시 패딩 입는 법을 알고 그게 편하다는 것을 알지만 품격을 차려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또한 오랜 전통에 대한 배려와 타인의 세계에 대한 배려를 위하여 정장과 드래스를 입고 가는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여초집단은 빡빡한 룰을 가진 독재국가라면 극단적인 남초집단은 지켜져야할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무정부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정부주의에 대한 욕구는 익명성이 보장된 커뮤니티에서도 볼 수 있으니, 알지 않은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익명 커뮤니티가 바로 남초 커뮤니티라는 거. 이곳에서는 대통령도 욕할 수 있고, 회사 상사도 욕할 수 있고, 죽인다고 협박할 수 있고, 실제로도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 넣은 적이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주먹다짐 문화가 있을 수 없기에 인터넷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는 다름 아닌 남는 게 시간 뿐이라 하루종일 인터넷에 시간을 투자하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알고서 이리저리 선동하는 남자인데, 난 그런 남자들을 볼때마다 황건적조차 진압하지 못했던 무정부시대와 같은 후한말에 있었던 황건적들의 대장, 사이비 교주 장각을 보는 것 같더라.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해? 혀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