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일도 하면서 꿈도 가지라고 말 좀 제발 하지 마 - 토마토 쥬스

@blog 2024. 7. 1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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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개짜증. 그냥 스타벅스 커피 마실 걸. 물론 자영업자들의 힘든 형편을 이해하지만 이게 토마토 쥬스인지 토마토 물인지 분간이 안갈정도로 너무도 연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늘 먹던 스타벅스 커피가 지겨워서 생과일 전문점에서 토마토 쥬스를 주문했거든? 물론 토마토 쥬스의 농도가 너무 진하면 토마토 죽 같아서 맛이 없지만 이건해도 너무할 만큼 맹탕 같아서 사람 먹을 것이 못됐다. 그만큼 쥬스는 농도가 생명이라는 사실.

 


  뭐 쥬스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반죽에 있어서도, 국요리에 있어서도, 하다못해 사랑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농도, 삶 그 모든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농도다. 나이를 먹을수록 느낀 점이 있다면 인생에 시간과 힘을 어디에 투자하여 농도를 높히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갈리는 것 같다. 일도 잘하고 사랑도 잘하며, 인간관계도 좋고 장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완생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사랑... 사랑과 일... 그 두 가지 다 잡으려고 하다가 니맛도 아니고 내맛도 아닌 사람, 토마토 맛도 아니고 맹물 맛도 아닌 토마토 쥬스 같은 사람이 된  채로 생을 마감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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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낮에 일을 하고 밤에는 자신의 꿈을 병행했던 위인들, 대표적으로 직장 생활과 집필을 병행했던 소설가 카프카와 낮에는 렌즈를 깎던 스피노자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일과 자신의 꿈을 병행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에너지를 모조리 꿈에 투자하여 농도를 높혀야만 만족해 하는 사람, 밍밍한 완성도에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같은 경우는 내가 스피노자나 카프카 같은 사람일 줄 알고 직장생활과 함께 작문 활동을 했지만 몇개월동안 괜찮았던 정신력이 바닥나면서 글쓰기가 귀찮아지고, 출근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집필을 포기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글의 퀄리티와 만족도가 물 한가득 탄 토마토 쥬스처럼 이맛도 저맛도 아닌 글을 참 많이 썼었다. 하지만 현재도 미래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던 내 욕심에 결국 심한 번아웃과 함께 이불 속 굼뱅이가 되어버렸으니, 그야말로 완생 쫒다가 망생이가 되어버린 거지 뭐. 다행히도 퇴사 후에 나만의 시간이 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자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되찾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하마터면 맹물맛 사람이 될 뻔했는데 기적적으로 나만의 맛이 돌아왔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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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향해 노력도 하면서 동시에 밥벌이도 하는 사람에게 난 존경심과 박수를 무한정으로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정신력이 약하고 노력을 안한 것이 아니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누구는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길에 짬짬히 쓴 글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는 밤늦게까지 국립도서관에 쭈구려 앉아 편의점 커피를 마셔야지 만족해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 어느 부분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여 농도를 짙게 만드냐에 개인차가 있고 본인이 만족하는 농도로 조절해야 한다. 마치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따로 있는 것처럼.



  문득 꿈이 있다던 친구에게 꿈도 포기하지도 말고 현실도 포기하지 말라며 직장일과 취미를 병행해보라고 개똥조언을 해주던 일이 생각난다. 왜냐면 꿈에만 모든 것을 바치는 건 너무 위험해 보였고, 또 자기 꿈에만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무모하고 막연한 망상에 사로잡힌사람이라 생각했거든.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들은 자기 인생의 농도를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 위험을 알면서도 확실하게 결단을 내린 용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농도를 가진 사람중에는 실패한 사람도 있지만 성공한 사람도 많았으니... 아... 나는 도대체 왜 그런 멍청한 조언을 해준 걸까. 그놈의 현실현실만 이야기하다가 현실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그 밍밍한 시간 속에 친구를 보내버리고 싶었던 걸까. 친구야 정말 미안해. 지금에 와서 사과한다는 게 구차해 보이겠지만 지금이라도 너의 맛을 찾았으면 좋겠어. 너의 농도를 찾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