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답을 알고 있다는 것 - 투썸플레이스 카페라떼 라지

@blog 2024. 8. 1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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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지역에는 거대한 국립대학교가, 그리고 그 대학교에 어울리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특히 그 호수의 해질녘 뷰는 정말 아름다운데 어린시절에도 그렇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가곤 한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지 사람들이 모였다 싶으면 생기는 편의점, 카페, 레스토랑이 허허벌판이었던 호수 주변으로 들어섰고, 난 편의점에서 저렴한 커피 한잔하며 호수 경치를 구경할까, 카페에서 제대로 구경해볼까 장장 10분을 고민하다가 결국 편의점에서 경치를 감상하기로 했다.
 
  아니 그런데 편의점 테이블에 앉는 순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1초도 안되어서 드는 거 있지? 경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라면과 핫바 냄새, 쩝쩝짭짭 거리는 소리, 그리고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에서 뭘 어떻게 감정의 바다에 빠질 수 있는 건지. 결국 편의점을 나와 카페로 들어섰고 커피향과 원목 테이블, 그리고 카페 특유의 잔잔함이 어수선한 내 마음을 한순간에 진정시켜 주었다. 좀 더 문학적으로 표현한다면 폭풍우에 이리 저리 휘둘리던 배에 탔는데 잔잔한 날씨를 만나는 느낌, 배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따스한 햇빛을 온몸으로 맞아 뼛속 깊은 곳까지 충만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래. 난 처음부터 편의점이 아닌 카페를 가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다만 돈을 조금 아끼고 싶다는 생각에 편의점을 택했지만 결국 처음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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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겪은 일 뿐만 아니라 나는 꽤 많이 첫인상, 처음 느꼈던 감정과 직감이 맞았음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소위 말해서 쎄하다고 하지?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첫인상이 별로면 그 다음 대화할 때 역시 무례하고, 건방지며, 예의없음을 한번 더 보여주여 확인사살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 거지같은 신문사, 채용공고에는 문서작성 및 사무직이라고 적어 넣고서는 실제로는 기피 직종인 고객 상담과 미수금 받아내기 일을 시키던 악덕 신문사 역시 그랬다. 면접날 당시 1지부와 2지부가 있는데 실수로 2지부에 찾았갔던 나, 죄송한데 길을 잘 못 들어서 혹시 면접 보기로 한 지부가 어디냐고 묻자 한숨 푹 쉬던 인사과 직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이 또 도망칠까봐 챙겨주는 척 했지만 자꾸 보이는 이기주의,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몸에 베여있는 갑질 정신. 그 순간 내 본능이 당장 그 거지같은 회사에서 도망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만 더 있어보면 회사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계속 다녔고, 그러는 와중에도 나갈까 말까, 여기 말고 다른 곳을 갈까 말까 아마 수천번은 생각했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첫 직감이 맞았을 정도로 그 회사는 형편없는 곳이었고 내 직감을 무시한 대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본능을 무시한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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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이거해볼까 저거 해볼까,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고민이 든다면 당신은 옳은 선택을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다른 선택을 향해서 살짝 간을 봐보는 건 어떨까? 만약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잖아? 그 순간 고민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가슴 속에서 답답함이 뻥 뚫리는 느낌을 느낄 것이다. 편의점에 있었을 때는 카페를 갈까 말까 수십번을 생각했지만 카페에 들어 가는 순간에는 편의점에 갈까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 이처럼 최고의 선택은 잡념, 고민,걱정을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특징이 있다. 다만 그 선택이 몇년 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후회하게 만드는 최악의 수가 되어 당신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려해두는 것도 잊지말고. 어허.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깐? 반대의 경우도 적용될 수 있잖아. 오히려 내가 하는 선택이 최고의 수가 될 수 있고 그만큼 인생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지금의 행복, 나의 잡념을 사라지게 만들어주고 몰입하게 만들어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자 실리적인 판단이 아닐까?



  참고로 위에 말하던 선택법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선택에 한해서 통하는 말이지 남에게 피해주고서는 지금 난 행복하니 됐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반대다. 성추행 해놓고서는 지금 좋으니 장땡이라고? 남을 괴롭혀 놓고서는 난 행복하니 됐다고? 좋다. 다음 번에는 이제 피해자가 행복한 선택을 할 차례다. 그들의 행복은 바로 가해자에게 몇배, 몇십배로 복수하는 것, 불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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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개미와 베짱이>를 보면서 자라 온 아이는 분명 어느 순간이 되면 베짱이의 미덕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서 택한 선택이 주는 행복, 결국 그것이 맞았음을 말이지. 당장 오늘 같아도 그러는데 뭐. 맛있는 커피 마시고 좋은 경치를 보면서 글 쓴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대단한 선택을 한 것이 분명하다. 만약 편의점에 계속 있었으면 글 한 글자는 커녕 핫바와 라면 냄새에 질색하면서 경치 감상은 물론 에세이 한편도 못썼을걸?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는 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시간만 보내다가 집에 갔을 걸? 그러기에 앞으로 난 나의 감을 무시하지 않을 거다. 내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민을 사라지게 만드는 선택을 할 거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 젊어보이는 이유, 그건 바로 고민의 시간은 물론 모든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선택을 하여 행복해서 그러겠지. 타고난 동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운명인 거다. 고거 참 부럽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