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신에게 기도해봤자 들어주지 않는 이유 - 스타벅스 유자민트티

@blog 2024. 9. 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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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이후로 좀 아팠다. 모르겠다. 시골에 다녀온 직후는 괜찮았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갑자기 감기에 걸려서는 기침하느라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래서 스타벅스 뜨거운 유자 민트티를 마셨더니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드는 거 있지? 나 매번 감기에 걸릴 때마다 스타벅스에서 이 음료 마시는데 솔직히 말해서 감기약보다 효과가 좋다. 실제 한의학적으로도 신맛은 나무의 기운이자 목과 기관지를 촉촉하게 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내일은 컴포즈에서 레몬에이드 테이크 아웃 해가려고. 다른 건 몰라도 컴포즈 레모네이드는 양도 양이지만 진짜 맛있다. 잠깐, 오해 마세요. 저 컴포즈 레몬에이드 홍보하려는 것은 아니었고요, 이렇게 풍족한 사회에서는 돈만 있으면 몸에 필요할 만 것을 재깍재깍 제공받을 수 있는 덕에 현대인의 수명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비닐하우스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귤이 먹고 싶으면 겨울까지, 거기다가 귤 생산지인 지역에서 자신이 사는 지역까지 장사꾼이 와야 먹을 수 있었거든.



  이처럼 과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구현해 낼 수 있는 힘이 미약했고 그러다 보니 운, 미신, 그리고 종교의 힘이 강할 수밖에 없으니, 당장 나 같은 경우에도 힘 약했던 어린 시절에는 교회도 꾸준히 나가면서 매일매일 기도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기도 하나 들어주지 않는 신을 찾는 것보다 강해진 내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기에 신을 찾지 않은 지 오래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신이라는 존재를 찾아다니지도, 믿지도 않고 있다. 목사조차 아프면 신이 아닌 의사를 찾아가고 기묘한 현상이 생기면 회개 기도가 아닌 조금이라도 증거를 남겨 과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처럼 말이지. 인터넷 특유의 시니컬함이 유일신을 잡신이라 부르고 성모를 성매매 여성으로 취급하며 종교의 권위를 바닥 저 끝까지 내려 찍었는데 신은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고 있으니, 과거 인간의 모든 일에 참견하여 달달 볶던 신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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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 텐데 성경 내용 대부분은 인간을 무한하게 사랑하는 신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속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매번 재앙 때리는 신과 완벽한 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구한 날 불만과 요구와 투정을 부리다가 재앙 맞는 인간의 이야기, 좀 더 스케일이 큰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는 것처럼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사연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그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이집트를 탈출하고 드넓은 광야를 거닐 때 히브리인들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호소하자 신은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지만 문제는 40년 동안 똑같은 것만 주었고, 고된 광야 생활 + 똑같은 음식에 히브리인들이 불만을 표하자 불뱀과 전염병을 내려서는 자기 말 안 드는 자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그러니깐 훈계의 의미로 혼을 냈다는 것이 아닌 아예 삭제, 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죽여버린 것이다.



  인간의 약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의 성격은 신약에서도 나온다. 소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라는 이야기로 퍼졌는데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른 달란트를 주며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다섯 달란트를 준 종은 2배로 불리고, 두 달란트를 가진 종 역시 2배로 불려서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무시무시한 주인의 성격을 잘 안지라 두려워서 그 달란트 그대로 돌려줬건만 주인이라는 사람이 한다는 말,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원금에 대한 이자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라면서 그 한 달란트 마저 뺏어 다섯 달란트 가지고 있는 종에게 주고서는 한 달란트를 가지던 종을 내쫓았다고 한다. 이에 몇몇 목사는 어떠한 달란트,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도 불평불만하지 말고 신을 전도하고 찬양하라고 해석하는데 한 달란트만 가지고 있는 종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감을 신은 어째 고려하지 못한 걸까? 당장 미약한 나조차 그 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이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주인이라는 사람이 종의 의지를 묻지 않고 뜬금없이 달란트를 빌려 주고 내심 많이 불리길 바라는 게 딱 한국 꼰대들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다 해주길 바라는 성격하고 아주 똑 닮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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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자 난 신의 성격이 대충 어떤 성격인지 파악이 됐으니,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꼰대, 여초 회사에서 많이 보이는 편 가르기 좋아하는 히스테리성 여성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소통이 힘든 경미한 아스퍼거 증후군과 애정결핍, 경계선 인격장애와 문제 해결 방식을 상하 관계로 해결하는 폭력적인 자라는 말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말을 할 때부터 알아봤어. 너무 자기 주관이 강해. 하다못해 수의사도 강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런데 자꾸 자신을 향한 찬양과 사랑을 바라고, 노아와 모세 같은 소수의 사람에게 편애도 심하고, 아브라함이 어렵게 얻은 아들을 죽여보라고 시험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여 생긴 의심 때문이겠지.



  이렇게 조물주가 피조물을 이해 못 하는 이유는 아마 둘 중 하나일 텐데 그중 하나는 인간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필요 없는 연구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실험체 혹은 과학자가 박테리아급 생물을 대하는 것처럼 이입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처럼 말이지. (특히 구약 에스겔서에서 표현한 신의 형상이 ufo와 매우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인간을 관찰하는 외계인이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인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신이 너무 완벽한 나머지 허약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거의 죽어가기 직전에서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엉덩이 무거운 신은 구약 시대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전혀 모르기에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 순진했던 나는 참 부지런하게도 기도했다. 우리 학교 정말 나쁜 애 꼭 천벌 받게 해 주세요, 사이코 국어 선생 학생 그만 괴롭히게 해 주세요, 시험 볼 때 전혀 떨지 않게 해 주세요, 저희 어머니를 보살펴주셔서 부자까지는 아니라도 마음 편히 치킨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게 해 주세요. 그런데 내 부탁, 내 기도, 내 소원을 들어준 적은 손꼽을 정도로 없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를 나오던 열성 신도인 나는 신의 무반응에 매우 섭섭해했다. 그런데 오히려 너가 신에게 사랑과 감사 기도를 해야 한다는 교회 선생 반응에 지리멸렬함을 느꼈으니, 이제 보니 신은 날 하나의 실험체로 봤을 뿐, 아니면 완벽하고 허점이 없으며 고통도 모르니깐 내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거구나. 이제 보니 신은 그냥 자폐아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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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을 하다 보면 그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의 성향을 우린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현화하고 의미를 숨겨둔 섬세한 제작자, 웅장한 스케일을 좋아하는 헐리우드 버스터급 제작자, 소소한 부분에서 행복감을 느끼길 바라는 소확행 제작자까지 그들이 창조한 세계에서 지내다 보면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신이 만든 세계에서 사는 내가 느끼는 제작자의 성향은 바로 무책임이니,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신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고 악이 득세하도록 일부로 방치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툭하면 아프고, 죽고, 불평불만하는 금쪽이가 지겨운 신은 우리를 버리고 간 걸까? 신명기 6장 5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말하던 애정결핍 신이 석나가서 그런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말을 듣고도 묵묵부답인 신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설마 인간 대신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했는데 그것들은 신을 많이 사랑하기에 지금의 인간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걸까? 아니면 무표정으로 실험체인 인간을 아무런 감정 없이 내려다보려나. 신이시여, 당신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에 좀 책임감을 가지고 계시길 바랍니다. 또 벼락치기하던 습관 못 버리고 부랴부랴 와서 재앙 내리지 말고 미리미리 하면 안 될까요? 숙제가 너무 많이 밀린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