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4.10.04 일기

@blog 2024. 10. 5. 01:36
728x90







1. 불교도 아니야



애정결핍 신은 이 세상을 '러브 러브 러블리 월드' 로 만들라는 뜻으로
예수를 보냈지만 대실패하고 말았다. 
 
 
 
그만큼 세상 호구가 되라는 기독교는 신의 아들 정도 되야지 뭘 할 수 있지
보통사람이 행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 수준인데,
상대적으로 기독교보다 행하기 쉬운 불교는
내 성격을 비롯해서 사상부터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서 영 별로다.
(당연히 기독교가 더 어렵지.
불교는 모든 것이 공과 허다, 라고 가치를 0으로 산정하면 장땡이지만
기독교는 사랑하기 위해 가치를 억지로 올리고 올려야 할 정도로 큰 에너지가 필요하니깐.
참고로 무분별한 전도와 지옥 협박하는 개독 신도는 그건 사랑이 아닌 철저한 본인 욕심이다.)

 




특히 불교가 나와 안맞는 이유는
‘모든 것은 공과 허다‘라는 사상이 자기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모든 가치 역시 0으로 산정한다는 게 문제다.
붓다를 보라.
아들에게 라훌라, 속박 or 구속 or 장애물이라는 이름을 선사하고 가치를 팍 떨어트리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인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
부성애 같은 사랑 역시 부정하려고 하고.
삶을 고통의 바다라며 외면하고 피해야할 무언가로 보는 것도 너무 위험해보인다.
약간 소피스트 중에 뭐만하면 존재하지 않는다던 고르기아스 같아보이기도 하고.





이처럼 내게 있어 불교는 감정과 어떤 가치를 과도하게 절제하려는 느낌이 들어서 영 안좋아한다.
인간인 이상 사랑받으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행복을
’허무하도다,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하는데 좋을리가 있나.
물론 불교의 사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숨겨진 가치, 남들이 몰랐던 고귀한 면을 찾아내어
그 사람 스스로도 나는 꽤 괜찮다고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사랑하는 감정을 들게 만드는 것이 이상적인 관계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좋은 가치를 발굴하기는 커녕
’사랑도 무상... 감정도 무상.... 가치도 무상...
사랑하려는 감정에 속박 당하는 것은 좋지 않아...‘ 라고 한다라면
결국 나는 거기서 거기, 너도 거기서 거기라는 무상주의에 빠지겠지.
감정도 없에고 번뇌도 없에고 깨달음도 없는 무각으로 가라, 라는 것은
가끔은 섬뜻하게 보이기도 한다.






난 사람이거든?
자기가 돌이라는 것도 자각 못하는 무아의 돌댕이가 아니거든?
왜 사람이 사람처럼 살아가는 게 아닌 돌처럼 살아가길 바라는가.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것도 하나의 억압같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태반을 찢고 모든 감정을 담아 울었단 말이다.







 
 
 





2. 미술관 다녀왔다



주말에 너무너무 심심해서
인프라없는 깡촌 버리고
어린시절 공포증 준 미술관에 다녀왔다.
역시 무서워.
그림봐봐.









3. 드디어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소네트가
출판 승낙이 됐다.
소네트 작업 은근 재미있는데
2025년에도 한번 해볼까나?







4. 기질



요즘 힘도 없고 내 에너지는 모두 바닥 난 거라 생각했거든?
축제기간이라서 공연을 보게되자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더라.
이게 바로 내 안에 숨어있던 나의 에너지,
에너지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다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에너지가 나오고 싶은 곳을 내가 찾아야 하구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