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무난함이 가장 사랑스러운 이유 - 스타벅스 카페라떼

@blog 2024. 10. 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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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우리 집이 평당 1억이 넘는 노른자 땅처럼 바로 앞에 백화점, 바로 앞에 지하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마트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패스트 푸드점이, 그리고 15분 거리에 크고 잘 만들어진 공원과 사찰이 있다. 대박이지? 산속 깊숙한 곳에서 볼법할 사찰이 15분 거리에 있고 말이지. 그래서 운동할 때마다 보온병 들고 가거나 가까운 편의점에서 내가 제일 가장 좋아하는 편의점 커피인 스타벅스 카페라떼 작은 거 사가지고 운동 하다가, 커피를 마시며 해질녘 경치도 감상하다가, 사찰 주변을 기웃기웃 거리다가, 사찰에 들어가곤 한다. 이상하게 난 스님이나 절을 보면 한편으로 무거운 마음이 들더라. 왜냐면 어린 시절에 저지른 행동 때문에, 그러니깐 뭣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했던 장난이라고 하지만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혼심의 힘을 다해서 불교를 욕보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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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당시 아부지께서 신앙심 넘치는 목사 일을 했었던터라 집 안에는 기독교 만능주의의 기류가, 거기다가 난 교회를 일찍 다님으로써 '기독교 외에는 모두 악마의 종교'라는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계단 높은 곳에 올라 양팔을 퍼덕퍼덕 거리며 "부처님 바보 똥개"라고 남동생과 같이 장난을 쳤고, 마침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비구니가 운영하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비구니에게도 그런 장난을 치며 논 것이다. 그리고 한 성격 하는 비구니는 너 지옥 불에 갈 수 있다는 무서운 말로 맞받아쳤으니, 그때는 뭣도 모르고 좋아서 낄낄거리며 웃었는데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부디 저의 무례함을,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세요. 이처럼 내 무례한 행동이 선명하게 기억남과 동시에 절의 위치가 너무 주택가 가까이에 있었던 것 역시 기억이 났고, 그래서 옆집 아저씨가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시끄럽다 자주 항의했고 나 역시 새벽 때마다 들리던 목탁 소리에 자주 깨던 일이 생각 났다.
 
 
  물론 절이 반드시 산속에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찬송가 소리로 민폐 끼치는 교회 역시 도시 곳곳에 있다지만 종교인과 일반인, 스님과 속세에 사는 사람의 생활상은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다르기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부딪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니깐? 서로의 삶에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생활 패턴은 물론 입에서 내는 소리, 생활 소음 모두 다른 것처럼. 그리고 이 다름으로써 오는 차이와 그로 인한 분쟁 역시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 비구니가 있던 도시 속 사찰은 내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고 대신 주차장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자주 가는 공원 속 사찰처럼 도시와 자연 그 중간지점에 있었다면 아직도 그 절은 있었을 것이고 비구니를 향한 내 사과도 도착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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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공존이 힘들다는 거다. 상대방의 입장도 존중 해줘야 하지만 나를 잃지도 않아야 하니깐. 그런데 30년 동안 운영된 공원 속 사찰은 도시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고, 사찰 같으면서 시민의 쉼터 같으니 그야말로 중도의 길, 도시 속의 쉼터가 되어 사람들과도 잘 공존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운동하다가 그 사찰에 자주 가곤 하는데 커다란 연꽃 모양 조각품이, 건너편에는 다른 사찰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쁜 카페가 있다. 특히 그 카페테라스 전경이 정말 예쁘더라고. 통유리 너머로 볼 수 있는 대나무 숲 뷰는 마음의 평화, 이너피스를 주기 때문에 멍때리기 딱 좋은 장소더라고. 그 카페와 연꽃 모양 조각품 사이 가운데 길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작은 돌부처가 있는 작은 정원, 그리고 통유리로 볼 수 있는 거대한 황금 부처상이 떡하니 자리 잡음으로써 이곳이 단순 쉼터만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참고로 그 공원 속 사찰 역사를 찾아보니 과거 군사 훈련소였는데 그 훈련소가 이전하고 세워진 사찰이라고 하니, 적군과 아군을 칼같이 나누는 군인을 양성하는 곳에서 중도의 길을 가르치는 사찰이 됐다는 게 뭔가 낭만적이지 않은가? 너무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사라졌던 과거 그 사찰과 다르게, 너무 살벌하기에 시민들이 찾아오지 않았던 군사훈련소와는 다르게, 공원 속 사찰은 무난하고 적절한 곳에 있어서 사랑을 받으며 공존할 수 있었던 거다. 원래 무난한 음악, 무난한 글, 무난한 패션이 제일 만들기 힘든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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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 관리직이 제일 힘들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모든 지 사이에 낀 사람이 가장 힘들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은 가장 힘들다. 직장생활도 그렇잖아. 나와 직장인 사이로서의 적절한 간격을 찾는 신입사원 시절이 제일 힘든 것처럼. 사랑도 그렇잖아. 나와 애인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찾기 위해 싸우면서 다사 화해하는 것처럼. 가끔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하고 나 혼자 지내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중도의 길을 찾으려는 이유, 그것은 외로움은 싫고 타인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는 더 싫기에 어쩔 수 없이 중도의 길이자 관계의 무난함이 필요해서 그렇다. 삶은 무난해지기 위한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