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남의 일이기에 아름다운 거야 - 스타벅스 자바칩 프라푸치노

@blog 2024. 10. 23. 19:50



 




 
 1
 


 
  지금의 난 우리집 근처 스타벅스가 아닌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마시고 있다. 왜냐면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동네로 이사가고 싶어서 부동산을 통해 이집 저집 알아보고 있는 중이거든. 하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는 소위 말하는 '마음 붙이고 평생 살만한 집'으로 이사 가는 건 불가능했고 타협과 포기와 자본주의의 불공평함만 느낀채 저녁밥 대신 스타벅스에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자바칩 2개 더 추가하고 초콜렛 드리즐 잔뜩 넣어서 말이지.
 

  인생 참 불공평해. 그치? 어떤 사람은 혼자 청소하는 것 조차 감당 못할 정도로 넓은 집에서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움막집에서 살고 있다니. 특히 집을 구하러 부동산 업자와 돌아다니다 보면 집주인의 탐욕으로 지어진 인간성 상실된 집, 다닥다닥 붙어 있어 숨이라고는 쉴 수 없는 집을 볼때면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곤 한다. 누으면 집의 절반을 차지하는 집, 녹슨 물이 나오는 화장실, 곰팡이와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축축한 방, 심지어 창문도 없는 감옥같은 집이라니. 우리가 보통 집을 생각할 때 적어도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떠올리잖아. 주말에 혼자 집에 누워서 취미 생활을 하는 그런 집 말이야. 허나 상상은 한계가 있고 현실의 잔인함은 무한하기에 PTDS라는 병이 있는 것처럼 집이라고 부를수도 없는 공간이 집이라고 매물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2
 

 
  이처럼 우린 적나라한 현실, 보기 싫은 진실을 상상조차 하지 않지 않을 정도로 기피한다. 사람 사이에서도 냉혹한 현실, 팩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인기 것처럼 말이지. 몇몇 인간관계에 서툰 사람 중 '진실 = 무조건 좋은 것 = 우월한 것'이라고 생각을 가지며 "너 진실을 받아들일 멘탈이 약하구나? 유리멘탈~"이라면서 이상한 우월감을 가지지만, 잘 생각해봐라.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잘난 남자가 못난 여자에게 절절매는 말도 안되는 클리셰의 웹툰, 웹소설, 드라마, 영화, 하다못해 썰이 사랑받는 이유 역시 우린 모두 진실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TV 프로그램 중 집 매물을 찾아주는 방송, 거기서 오늘 내가 봤던 집과 비슷한 집이 단 한채도 나오지 않았던 이유, 저기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집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 우리의 머릿속 상상하던 일반적인 집만 나왔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나 그 프로그램보고 깜짝 놀랐잖아. 방금 나는 철기시대에나 어울릴 법할 움막집 보고 왔는데 저 곳은 한국이 아니라 다른 세계인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최선을 다하여 그런 집을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던 걸까?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본질보다는 실존이 우선이었고, 이런 집에서는 도무지 못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 옆집에서 부스럭 거리는 인기척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그곳은 억지로 적응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3

 


  그런데 재미있는게 뭔줄 아는가? 끔찍한 현실을 상상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또 자기랑 멀게 느껴지면 남의 나라 이야기, 즉 예술로 본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프랑스 시민 1200명을 대상으로 소득별에 따른 취향의 차이, 즉 아비투스를 증명하기 위하여 했던 어떤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부르디외는 늙고 쭈글거리며 노동으로 인해 변형된 손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빈곤층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분 좋지 않다, 별로다, 라고 평가했는데 중산층과 상류층은 마치 반고흐의 작품 속 노동자들의 손과 같다, 노동자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니깐 빈곤층의 같은 경우에는 노동으로 인해 변형되고 쭈그러진 손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기에 본능적으로 싫어했지만 중산층과 빈곤층은 자신의 일이 될 확률이 낮은 걸 알기에 그 사진을 예술적으로 감상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자 예술인거지.




  내가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낮으니깐 예술적으로 보이는 거, 사실 이거 예술 쪽에서 꽤 많거든. 문학작품만 보더라도 남성 작가의 뮤즈로서 꼭 창녀가 등장하잖아. 남성 작가는 알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여자가 되고 또 창녀가 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기에 안심하고 멀리서서 그것을 예술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나 영화제 같은 곳에서 꼭 등장하는 공장 노동자의 고충 역시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될 만큼 이름 있는 예술가는 공장 노동자의 삶과 한참 먼 사람들이거든. 그에 반해서 예술가는 신기하게도 예술업계 문제점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왜? 마주치기 싫으니깐. 자신이 속한 세계의 적나라한 현실, 언제 내 일이 될지도 모르는 그러한 일들을 다루는 것은 괴롭거든. 문득 장강명 작가의 인세 누락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성명서도 내지 않던 작가 협회와 작가 연대가 왠 미얀마 군부 쿠테타에 관해서는 성명서는 내놓았다는 칼럼이 생각났다.(1
 
 
 
4
 
 
 

  어째서 악이 득세하는 세계를 창조해놓고서는 신이 완벽한 세상이라며 자뻑하는 줄 아는가? 그건 자기가 그 곳에 살 것이 아니기에, 남의 일이기에 아름다워 보여서 그렇다. 하루에도 억울하게, 불합리하게, 불평등함에 죽어나가는 사람이 있지만 신이 보기에는 그건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형상으로 밖에 안보이겠지. 이제보니 신이라는 작자는 그냥 겉 멋든 예술충이었네. 요즘 유튜브에 "신이 곧 내려온다, 말세가 찾아온다."라는 말이 많은데 신이 이 땅위에 내려오는 순간 비좁아터진 고시원에 가둬놓고서 고통의 맛을 제대로 보여줘야지. 그리고 이게 단순 피조물만이 겪게 될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라고 뼈져리게 느끼는 순간, 신은 뒤늦게서야 지옥이라는 곳이 따로 필요없다는 걸 알겠지.




 
 
 
 
https://brunch.co.kr/@soulstory/50

05화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취향 학자 부르디외가 말하는 계급 사회 | 어렸을 적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로 구별되었다. 중학생이 된 친구들은 학원으로 끌려가기 바빴고 운동장에 남아있는 친구

brunch.co.kr

 
 
1)
https://ch.yes24.com/article/view/44951

[장강명 칼럼] 출판 계약을 해지하며 | 예스24 채널예스

거대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기본을 제대로 지켜 달라는 거다. 입금, 교정, 예의 같은 것들을. (2021.06.01)

ch.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