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차이보다 더 중요한 말의 밀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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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여자들 사이에서 함께할 때, 그리고 여초 회사를 다닐 때 간접적인 언어를 쓰는 몇몇 여자들 때문에 무지하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깐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여자 있잖아. "00는 그 옷 좋아하나봐?"라는 말에는 사실 "맨날 그 옷만 입니?"라는 의미를 담았고 "00씨는 자존감이 높은 가봐." 같은 경우는 "00 너는 왜 주변 상황 신경 안쓰고 너하고 싶은 행동만 하냐?"라며 말에 숨은 의미를 담는 여자.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상냥한 미소를 짓다가 뒤돌아서면 얼굴 일그러트리듯 감정을 숨기는 여자,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속이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 처음에는 그녀들의 말처럼 내가 눈치가 없는거라 생각했거든? 그러니깐 A를 말할 때 모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A 속에 숨은 뜻인 B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 대화법은 속마음을 내미치기 두려워하는 그녀들만 쓰고 있었고 더욱이 그녀들은 자기 감정을 자신도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알아요. 그녀들이 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대화법을 으뜸으로 여기는 지를 말이지. 태어날 때부터 직접적인 감정 표현에 서툴러서, 혹은 솔직한 발언으로 인하여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알아듣기 힘든 대화법을 가지게 됐겠지. 특히 여자 쪽에서 이러한 대화법을 가진 사람이 많은 이유는 남자에 비해 분쟁과 육체적인 싸움을 기피하지만 인간이라서 당연히 가지는 공격성을 주먹이 아닌 말로 풀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수적인 특징으로는 깔끔병과 외모강박증인데 그만큼 타인에 대한 의식과 주변 환경에 대한 민감도, 불안감이 높다는 뜻이겠지. 자칫 이러한 특징이 강해지면 편집증 혹은 세상 모든 것이 나처럼 아닌척 하지만 속에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현병 환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조현병 환자가 자신이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정체불명의 조직, 그리고 주파수와 마이드 컨트롤 망상을 믿는 것처럼 위에 말한 사람들 역시 자신이 잘못 됐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고 타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대화법을 하지 않은 사람이 답답하고 눈치 없는 사람, 분위기 모르는 사람이라 정의내려 버리는 것이다. A를 단순 A라고 말하는 사람은 둔한 사람이라며 답답해하는 그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불편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걸 당사자는 알까?
문제는 그런 유형이 꼭 여자들이 모여있는 회사에 한명씩, 모임과 단체에 한명씩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말단 사원이라면 문제가 없는데 팀의 리더, 선생, 혹은 상사라면 그때부터 그 조직의 분위기는 그녀의 성격에 따라서 빙빙돌려서 말하는 분위기와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이 불쾌감을 느꼈다고 토로하는 불편한 조직이 되기 쉽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말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는 마태복음 5장 37절의 성경 구절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대화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서로 믿으면서 뭘 말할 수 있지, 처음부터 다른 의도를 담고 말하면 누가 그녀의 말을 믿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겠는가. 그만큼 지나친 완곡어법은 타인을 위한 배려보다는 본인 이미지에 손상은 가고 싶지 않지만 공격성을 표출하고 싶은 이기심으로 뭉친 대화법이다.
물론 남자중에서도 이런 베베꼬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목사나 스님처럼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만 좋게 할 뿐 실제로는 행동으로 옳기지 않는 사람, 걱정해주는척 은근슬쩍 자랑하는 사람, 평소 말 수가 적다보니 고심하면서 말 한마디 했는데 자신의 의도를 몰라 준다면서 속으로 꽁해있는 사람.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대화를 통한 견제는 오히려 상대방을 화를 부추기면서 싸움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서 인지, 속마음을 말해도 해를 당할 일이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건지, 감정을 돌려 말하는 것이 여자들 사이에서나 미덕인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여자에 비하여 이러한 유형이 적다. 괜히 여자들이 여자들끼리의 기싸움이 싫다 토로하면서 남자 모임이 더 편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러다보니 남자중에서 여자와 연애할 때 "여자는 원래 이렇게 의미를 배배 꼬듯 말하나요? 여자는 원래 자기 감정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가요?"라며 인터넷에 질문글이 올라오지만 그건 여자의 특징도 아니고 여자만이 쓰는 “여자어”는 더욱 아니다. 그냥 그녀의 특징이다. 그 사람만 그런다고요.
이처럼 사람을 만날 때 나와 대화 수준이 맞는지, 취미가 비슷한지, 사상이 맞는지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지만 말 속에 숨긴 의미의 밀도 차이,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의도를 숨겼느냐의 차이도 중요하다. 성격차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거라니깐? 만약 말 속에 숨긴 의미의 밀도 차가 상반되는 사람끼리 만난다면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닌데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냐면서 서로 답답해하거든. 내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본 뜻은 다르다면서 화를 내다가 서로 싸우거든. 그러기에 빙빙 돌려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는 자신과 닮은 빙빙 돌려 조심스럽게 말하는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맞지 않은 사람 만나 스트레스 받지 말고, 또 타인에게도 피해주지 말고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라는 말이다. 왜냐면 예민한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아는 것은 같은 예민한 사람, 말하지 않아도 직감으로 그 사람의 말 속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빠르게 파악할 가능성이 높으니깐. 다만 어떤 안정감을 주는 느낌, 확고한 자세, 변치않는 주관성, 넘어가주고 이해해주려는 모습은 기대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당신을 닮았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