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아직 죽음이 있으니깐. (ez2dj - any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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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내 삶의 절반은 게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종류의 게임을 섭렵했었다.
퍼즐게임, 리듬게임, 격투게임, rpg, 전략시뮬레이션, 총게임, 디지몬 게임기 사서 디지몬 키우기, 그냥 다 했어 다.
공부 안하고 게임만 했어 게임만.
그래도 한판할 때마다 동전이 필요하는 오락실에는 돈 아끼고자 하는 마음에 늘 하던 게임만 했는데
하나는 횡스크롤 게임인 가디언즈 전신마괴2이고 나머지 하나는 ez2dj이다.
리듬게임 좀 하는 사람중에서 당연히 ez2dj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난 알고 있다.
지금도 유튜브에 ez2dj 플레이 영상을 올린 사람 있던데 뭐.
물론 ez2dj가 리듬게임의 시초는 아니겠다만 (코나미의 비트매니아가 리듬게임의 시초격이었지)
어린시절 노래에 맞추어 연주하는 느낌을 주는 그 게임, 진짜 힙해보이더라고.
특히 ez2dj의 좋은 노래에 맞춰 나오는 신비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안그래도 상상력이 풍부했던 어린시절의 난 노래 한편과 영상 하나에 영화 한편을 머리 속으로 찍었다.
진짜 많은 ez2dj 노래가 생각나고 좋은 느낌의 bga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은 노래라면 루비 투스데이의 anytime이겠지.
사실 이 노래는 그렇게 좋은 노래는 아니다.
아니, 좋은 노래일지 모르지만 내 스타일은 전혀 아니라는 거다.
거기다가 난이도가 어렵지 않는 편이라 소위 말하는 보스곡도 아니라서 크게 사랑 받지도 못했고
대신 저 노래와 영상이 주는 어떤 기묘하고도 음산하면서도 섬뜻한 느낌 때문에
종종 사람들이 무서운 곡이라며 회자화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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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으시시한 느낌과 다르게 anytime의 가사는
"우울하거나 힘들때 날 불러. 내가 항상 여기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게."
라는 아주 좋은 친구를 표방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칭구칭구야 ^^ 힘들때 날 불러 ^^ 너는 절때로! 혼자가 아니얌!^^"같은 베프 느낌으로 말이지.
그에 비해 전반적인 음이라던가, bga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전히 무서운 이미지를 풍기고 있으니
그야말로 상반된 것들끼리의 만남 아닐까?
우선 Anytime의 bga를 설명해볼까?
알 수 없는 지하실에 많은 수의 텔레비전이 켜져있고 그 중 하나의 텔레비전을 줌인 되더니 채널 52,
숫자 52는 동양에서 불길하다는 숫자 4, 그리고 서양에서 불길하다는 숫자 13이 곱해진 수의 채널이 켜져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는 마네킹처럼 생기없는 얼굴들과 주황색 긴 머리 여성의 얼굴이 번갈아 나오더니
큰 화면에 한자로 미칠 광(狂)자와 비어 있던 지하실에 정체모를 어떤 하얀색 존재들이 자리잡고 있더.
더불어 스크롤 올라가듯 양옆에는 해골이 그려진 주황색 필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황색 긴 머리 대신 짧은 숏컷 머리를 하고
해질녘 풍경이 반사되어 보이는 커다란 고글을 쓰며
새빨간 입술로 미소 짓는 여자, 혹은 남자.
그리고 그 사람의 뒷배경은 지옥을 연상하는 건지 건물들이 중력을 잃고
뿌리째 뽑혀 솟아오른 것이 막 도시가 아포칼립스를 맞이하는 모습같아 보인다.
난해하다고? 실제 bga가 무슨 예술철학처럼 난해하게 만들어지긴 했다.
물론 여고괴담처럼 점프 스퀘어를 이용하여 귀신이 팍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오싹하다고 한 이유는 난해한 내용, 또 생기 없는 존재의 등장,
특히 마지막 장면은 사람보다는 미지의 존재, 배경 역시 사람이 살 수 없는 붕괴된 도시라는 게
느낌이 좋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
그래서 추측한 건데 사실 anytime에서 말하는 화자는 어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붕괴된 도시와 어울리는 존재,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에 어울리는 존재인 죽음 아닐까?
주황색 머리의 여성이 바로 그 화자이고 머리카락색부터 해질녘 하늘이 고글에 비추는 장면,
즉 주황색은 저녁(죽음)으로 가는 황혼의 시간을 가르키고 있고 말이지.
힘들 땐 언제든지 연락을 주라는 말,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말,
살아 있는 사람의 주변에는 원치 않아도 늘 狂녀처럼 끈질긴
죽음이 도사리고 있으니깐 일리도 있고 말이지.
So I'll let you know your not alone
그래 네가 혼자가 아니란걸 알려줄게
You should never have no fear
겁먹을 필요는 없어 절대로
For you know I'm always here
알잖아 난 항상 여기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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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탄생을 겪었고,
세상 역시 사람의 의견에 전혀 꿈쩍하지 않으면서 무기력감만 준다.
심지어 같은 사람끼리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빼앗아버림으로서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마치 anytime bga에 나오는 생기없는 마네킹처럼 말이지.
그런데 단 하나, 오직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권한만큼은 내가 가질 수 있게 됐네?
거기다가 세상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수 있는 독재자조차 뺏을 수 없는 거네?
어떻게 보면 죽음이라는 것은 강약약강을 하지 않는 아주 정의로운 친구,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었을때도 언제든지 찾아와주는 좋은 친구처럼 보인다.
우리는 종종 죽음이라고 한다면 막연히 나쁜 것, 안좋은 것으로 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며 삶에 위로 받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에라리 죽으면 끝이야! 그냥 막 살자 살아!"라면서
세상 지긋지긋한 의견 뺏기 싸움에 벗어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한 죽음 앞에서 자신이 가진 권한을 남용할 수도 있다.
입으로 죽고 싶다, 죽고싶다, 하다가도 마음 휙 바꿔먹으면서
'내 죽음의 권한 만큼은 나의 것!‘이라면서 죽음 앞에서 뻔뻔하게 뒤통수치는 것도 가능한 걸.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 생각으로 불쾌한 밤을 잘 지내게 된다"나
앨프리드 테니슨의 "자살하는 힘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라는 명언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anytime은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친구,
바로 죽음이 화자로서 이야기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ez2dj에서 간접적으로 죽음, 그리고 자살을 보여주는 bga, 노래들이 종종 있었다.
You were the one 에서는 간접적으로 동반자살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exist는 납치당한 소녀가 탈출하려고 했는데 살해 당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어떤 영상은 간접적으로 성관계를 암시하는 것도 있더만?
y-gate는 bga까지 교체 됐을 정도로 너무 적나라해 보였다.
초등학생이 하던 게임치고는 너무 성숙한 bga들이 많지 않았나 싶더라고.
https://m.youtube.com/watch?v=_JERRFdr2rE&pp=ygUNQW55dGltZSBlejJkag%3D%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