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옥덕순의 인간 관계학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건 결코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인 척 하는 아이)

@blog 2025. 1. 7. 18:25

 
 
 
 











이 사람 뭔가 착한 거 같거든?
밥도 잘 사주고 이야기도 잘 통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 생각해서 챙겨줄 정도로 세상 친절하거든?
친구 하나 사귀기 힘들고 우정 유지시키는데 힘든 이 시대에서 평생의 우정을 약속할 친구같거든?
하지만 대화 중 느껴지는 어느 찝찝함, 그리고 놀고 난 후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불쾌감,
계속해서 느껴지는 소통의 막막함,
뭔가 자기 일에는 민감한 거 같으면서도 남의 일에는 둔감한 모습이 자꾸만 신경쓰인다.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소통의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왜 자꾸 그의 사소한 일상이나 안부를 궁금해하는 척을 해야하는 걸까.
결국 그애의 눈치만 보고 그 애의 이이기만 듣다가 끝나버린 대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우선 그 전에 나는 이 사람을 이 문장으로 정의를 내릴 것인데 
이들은 바로 소통에 있어서 유연함이 부족한 사람,
어린시절을 끝으로 해결해야하는 감정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사람,
즉 환경 때문에 강제적으로 어른의 탈만 쓰게 됐지
뼛속까지 어린 아이인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어른인 척 하는 아이'라고 하면 되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 겉보기에는 사회 생활도 잘하고 어른들 사이에 잘 섞이고 있기에 누가 봐도 어른,
물론 반발 작용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독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그 사람과 만난 사람들 역시 첫인상이 좋다면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다만 문제는 그 사람과의 오랜 관계로 지내기 위해서는 동등한 관계로 유지되기 보다는
한쪽이 맞춰주고, 귀기울여주며, 더 많이 인내하는 관계, 
즉 둘이 동등한 친구 관계나 연애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흡사 자녀와 자식의 관계로 나아가기 전단계인 것처럼 
한쪽은 자기 한탄, 후회, 내가 처한 이 상황에 대한 짜증과 분노를
자꾸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고
나머지 한쪽은 그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주고 미안해하거나 위로하는 것, 그게 다다.
왜냐면 어른인 척 하는 아이 유형의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가 딱 그러한 관계거든.
 
 
 




 
처음에 난 내가 용기가 없어서 그 사람 앞에 내가 겪었던 일,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건들을
그 사람 앞에서 말하지 못한 거라 생각했거든? 아니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타인의 이야기에 신경쓰지 않은 것이고
나는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러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 되며,
그러다보니 나는 내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드시 박수치고 티나는 호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대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인데
그들은 자기 이야기 들어주는 하인을 모집하는 건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짜증과 분노와 상대방에 대한 무시로 우위를 점해보려고 하고
그로 인하여 상대방을 떠나가게 만든다.
또한 너무도 과한 침묵을 유지하는 사람, 대화의 우위를 독점하려는 케이스 역시,
민감함을 가장하며 지적을 일삼는 사람 역시 이 케이스에 속한다.
저절로 상대방을 눈치보게 만들고 그 사람의 사정을 강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나면 편하기보다는 노동을 한 것처럼 후회가 들고
다음에는 만나기 싫다는 기분을 자연스럽게 주게 된다.
만약 이런 사람이 친구라면 그냥 멀리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겠지만 
문제는 바로 생각보다 부모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그거대로 머리 아프다.
 


 

그거 아는가? 
생각보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마음을 꾹 닫고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을 하면서
남남이 되는 쪽을 택하는 자녀들이 생각 보다 많다는 사실을 말이지.
왜냐면 ‘어른인 척 하는 아이’ 같은 사람은
자신과 같은 직장인,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잘 형성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 특히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녀에게는
부모로서의 권위 + 어른으로서의 허세 + 아이같은투정을 동시에 표출하여서 
결코 좋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약 아이가 자신만의 자아를 형성하려고 하잖아? 추억을 만들려고 하잖아?

그게 무슨 대수냐고, 우선 날 위주로 맞춰주고 생각해야하지 않냐면서

아이의 방에 들어가 청소라는 명목으로 모든것을 치우고 정리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무례라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참고로 내 부모들이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지.
내가 가정을 위해 큰 희생을 하고 있고 그러니 나한테 좀 맞춰줘,
라는 의지가 집안을 늘 가득채우게 되었고 바로 그것이 싸움의 원인이었으니...
어쩐지 이야기 하다보면 어른이라는 느낌보다는
왜이리 어린 아이 같을까, 아주 끼리끼리 잘 만났네, 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반석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사람이 반석이 되어주길 바라는
전형적인 불완전한 사람, 자신만이 형성한 인간적인 철학도 부재인 시시한 사람 그 자체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사람은 자신 역시 불안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들은 이상하게도 외로움을 잘타는데,
그럴만도 하지. 그들이 원해하는 감정은 결코 자기 혼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감정이니깐. 
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 세워주는 칭찬,
내가 잘 대해주고 보호해 준다는 안정감,
나를 위해 너는 오늘도 희생해주어고 고맙다는 감사함, 
이런 감정을 혼자서 절대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힘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주변에 사람을 두고 싶고
친구나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이 만든 우리에서 제발 벗어나주지 않기를 빈다. 



 

 




타인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와 동시에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 뭔가 우월해지고 싶은 마음,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어떤 간접적인 공격 양상, 즉 가스라이팅이 그들의 주 특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면 아마 상대방의 선택에 걱정이라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일걸?
"야 그거 돈이 되긴해? 솔직히 말해서 돈 안되지?" 라며 상대방의 선택을 우습게 보는 발언이라던가,
"너 그 성격 진짜 고쳐야 한다니깐. 사회에서 그거 진짜 안 좋게 봐."라면서 상대방의 성격을 재단하는 발언이라던가,
"아니 그걸 너가 할 수는 있기는 하냐?"라며 시작부터 아랫사람으로 보는 발언이라던가,  
모두 다 자신이 우위에 있으면서도 상대방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걱정이라는 탈을 쓴 가스라이팅이다.
그래서 이러한 발언을 들은 상대는 고맙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쾌함과 찝찝함이 남은 것이
바로 그들의 본심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무심한 츤데레 같은 성격이 좋다는
어디 개떡같은 문화가 한몫해서 이런 사람들이 더욱 활개를 치고 판을 치고 있으니, 
고길동처럼 겉으로는 퉁명스러워도 뒷바라지를 해주니 좋은 사람이다?
박명수처럼 냉정한 말을 해도 기부하고 미담이 들리니 좋은 사람이다?
이 오빠 나한테 퉁명스럽고 윽박지르고 때리기도 하지만 잘해줄때는 확실히 잘해주는 좋은 사람이다?
언제부터 퉁명스러운 걱정이 하나의 미덕이 되어버렸나.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과 상반되는
선인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니깐 아직도 까칠한 도시남자 컨셉, 나쁜 남자 컨셉이 먹히는 줄 아는 바보들이 많은 거 아니겠는가.
그저 슬픈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짚신도 제짝이 많다는 말처럼 그런 사람은 또 그런 사람들끼리 잘 만나니깐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아주 잘 만들어진 어른의 가면에 서로 속아서 의지하려고 했다가
결국 왜 내게 맞춰주지 않냐면 때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는 한쌍의 인연.
서로 자기 이야기만하는 목적이 없어지면 유령 단톡방만 만들다가 사라지는 이들처럼
이 사람과의 인연에서 어떤 사람으로서의 깊은 맛을 느끼는 것을 기대하지 말길 바란다.
주는 것에 인색하고 받는 것을 당연시하며,
대접과 찬사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곳이든 찾아가는 사람이니깐.
맞춰주지도 말고 들어주지도 말고, 무언가 돌보고 지킨다는 우월감 역시 느끼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