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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16

@blog 2025. 9. 24. 21:33

 

 

 

 

 

2005년 5월 7일 저녁 9시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우우우~~~ 집어치워라!”
  “미쳤냐! 김정민이라니!”

  시청 앞 광장에서는 시민들의 야유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만들었는지, 군데 군데에서 피켓을 들고 흔드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이런 시위는 지금 시청앞 광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김정민의 마지막 출전은 의외 중의 의외였고, 이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었다.

  “약한테란 김정민 꺼져라!”
  “당장 선수 교체하라!”
  “미쳤냐!!! 당장 선수 교체해라!”

  시민들의 시위는 김정민의 출전이 결정된 순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져만 갔다. 이들 중에는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서, 프로게이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김정민이 변변한 우승경력도 없고, 특별하게 강한 이미지도 아닌, 소위 말하는 B급 프로게이머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뭐 제대로 하는것도 없는 애라면서?”
  “그러게. 이제까지 우승을 한 번도 못했대.”
  “그런 병신을 왜 내보냈어? 미친거 아니야?” 

  군중들은 여기저기서 수군덕거렸다. 아가씨는 그러한 사람들의 수군덕거림과, 사람들의 외침, 고함, 각종 소음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휴……”

  아가씨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저만치에서 <김정민 죽어라> 라고 붉은 팻말을 든 어떤 중년 사내는 목이 쉬어라 계속해서 ‘죽여라!!!!’ 라고만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과연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독기를 품은 것일까. 자신의 생명? 가족의 생명? 혹시 공공의,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 그게 아니라면 그냥 공포와 분노를 표출하는 것 뿐일까? 

  “야, 경기 어디서하냐? 내가 김정민 이새끼 죽여버리고 내가 대신 나가도 김정민보단 낫겠다. 어떻게 저런새끼가 선발선수가 됐냐?”
  “그거, 프로게이머들이 자원해서 선수 한다고 한 것 같던데요.”
  “뭐? 자원? 그러니까 지가 하겠다고 해서 하는거에요?”
  “응, 그렇다니까.”
  “우와…… 미친 새끼. 지 주제를 모르고 꼴값을 떠네?”
  “김정민 걔도 걔지만 다른새끼들, 그리고 감독들은 뭐하는 자식들인지 몰라. 저런새끼가 나오면 좀 막아야될거 아냐?”
  “아…… 진짜 씨발, 이새끼들 다 어디있어? 다 죽여버린다, 진짜.”

  주위에서는 계속해서 욕설과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아가씨는 그 광기어린 소음에 귀를 막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욱신거리는 발목의 통증보다, 사람들의 잔인한 말이 더욱 무서웠다. 

  “진호씨…… 사람들이 다 미쳐가는 것 같아요.”

  아가씨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2005년 5월 7일 저녁 9시 30분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앞


  “으아앙~!!! 윤열오빠!!!”

  아라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었다. 그 아이도 여태 숙소에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제 T1 숙소는 완전히 비워졌고, 출전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흩어지기 위해서 모두 바깥으로 끌려 나와 있었다.

  “아…… 아라야……”
  “오빠, 오빠 가지마요…… 으흑, 으흑! 으아앙~!”

  윤열이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만, 아라는 윤열의 옷을 붙잡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아까 숙소 문밖을 나서면서부터 아라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빨리 가야한다.”

  외계인이 윤열 옆에 다가왔다. 그러자 윤열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던 아라의 손을 꼭 잡았다.

  “아라야, 울지 마. 뚝.”

  그러자 아라가 훌쩍거리며 그제서야 조금씩 울음을 멈추었다.

  “으흑, 흑, 흑! 오빠, 어떻게 해요. 오빠……”

  그런 아라를 보며, 윤열이 아라의 손을 조금 들어올렸다. 그리고 아라의 손등에 입술을 조용히 갖다댔다.

  “오…… 오빠.”

  아라의 눈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음에도 동그랗게 커졌다. 역시 조용히 아라의 손등에서 입술을 뗀 윤열이 씩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랄게.”

  그리고 윤열은 아라의 손을 놓고 뒤돌아서서 뛰어갔다. 저만치에서는 이미 다른 선수들이 외계인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잘가! 힘내라!!!”
  “박정석 파이팅! 김정민 파이팅!”
  “진호야, 요환아, 힘내라!!! 꼭 이겨야돼!”
  “민아, 너도 몸조심해!”

  프로게이머들이, 감독들이 손을 흔들며 선수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선수들은 차량으로 경기장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강민까지 여섯 명의 프로게이머들은 한번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서는 차에 올라탔다.

  “……”

  아라는 윤열의 뒷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손등에 남겨진 입술의 촉촉함 때문인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윤열이 손을 놓는 순간 느껴진, 그 알 수 없는 아득한 느낌 때문이었다. 
  선수들이 탄 차가 출발하자, 아라는 그때서야 있는 힘껏 소리질렀다.

  “이윤열 파이팅!!!”




 

 

 

 

 





2005년 5월 7일 저녁 9시 50분
서울특별시 한강 남단, 올림픽대로

  프로게이머들이 탄 밴은 대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도로는 공습 첫날의 폭격으로 군데 군데 파괴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달리는 그들의 자동차는 외계인들의 GPS 시스템(그와 유사한) 으로 자동 운전되고 있었고, 또 교통 통제로 도로를 달리는 차가 그들뿐이었으므로 프로게이머들은 아주 안전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아니, 이동이라기보다는 이송되어지고 있었다.

  “흐음……”

  요환은 창문을 살짝 열고, 창틀에 팔을 괴었다. 바람이 쉴새없이 그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밴의 앞자리에는 외계인 둘이 타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보니 반쯤 찬 달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항상 아무런 생각 없이 보던 달이었는데, 오늘은 반쪽짜리였지만 참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항상 저 모습으로 몇천 년 동안 지구상에 명멸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보고 있었겠구나.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도, 저 달은 그저 담담하게 내려다보고 있구나…… 요환은 강민의 말소리가 들릴 때 까지 그런 상념에 젖어 있었다.

  “미안하다.”

  강민이 김정민에게 꺼낸 말이었다.

  “뭐…… 뭐가.”
  “욕한 거.”

  그러면서 강민이 멋쩍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정민은 강민의 그 손을 왼손으로 감싸쥐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무슨 사과를 하고 그래. 네가 잘못한게 아니라 내가 바보같아서 그랬던건데.”
  “그래도 말이 많이 심했으니까. 미안하다.”
  “괜찮다니까. 본심으로 그런것도 아닌데.”

  그러자, 갑자기 강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거 나의 진심으로 그런건데?”

  잠시,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서는 정민이 강민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 퍽 쳤다. 강민은 실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에이, 이녀석!”
  “히히히, 미안, 미안. 농담이야, 농담. 정말이야.”

  다른 선수들도 함께 킬킬댔다. 잠시 떠들썩하던 강민과 김정민이 조금 조용해지자, 홍진호가 박정석에게 말을 건넸다.

  “야, 근데 정석이 너 아까 진짜 대단하더라.”
  “와?”
  “안 무섭냐? 너 진짜 깡 최고더라. 깜짝 놀랐다, 진짜.”
  “맞어. 옆에 있는 나도 무서워 죽는줄 알았는데.”

  진호가 칭찬하고 윤열이 옆에서 맞장구를 치자, 정석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내가 부산 싸나이 아이가? 그정도는 기본이제.”

  그러자 강민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핫…… 야, 야, 얘 아까 식은땀 흘리는거 못봤냐? 등짝 아마 다 젖었을 걸.”
  “아니, 그건…… 아까 좀 더워서 그런거 아이가. 민이형.”
  “어디 젖었나 안 젖었나 한번 보자.”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하던 정석에게 강민이 슬쩍 다가려하자, 정석이 손을 내저으며 피했다.

  “아, 알았다. 맞다. 맞다. 그래, 나도 씨겁했다. 왜 안무서웠겠노?”
  “정말이야? 뭐야, 부산싸나이.”
  “에에에이~~~!”
  “큭큭큭…… 하하하하!”

  차 안에 있던 프로게이머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내고, 모두 함께 한참 동안 웃었다. 

  “하, 하하하…… 하하…… 후……”
  “……”

  그리고, 거짓말같이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여섯 명의 프로게이머들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들 굳어진 표정으로 바닥만을 쳐다보았다.

  “휴……”

  요환은 다시 창틀에 턱을 괴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엔 여전히 반달이 떠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 반달?’

  그렇게 무심히 달을 바라보던 요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달은 반달보다 약간 부풀어 오른 달이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달이었다. 잘못 봤나 했는데 아니었다. 달은 오히려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요환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윤열이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열 시네.”

  그 말을 듣고 요환은 고개를 돌려 자동차 안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순간, 9:59에서 10:00 으로 시계가 바뀌었다. 인류에게 주어졌던 시간이 마감되는 순간,

  “……응? 하늘에…… 뭐가 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정민이었다. 요환은 다시 창 밖을 보았다. 달은 이미 초승달로 변해 있었고, 그것도 천천히 없어지고 있었다. 달이 없어지는게 아니었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이제 선수들은 모두 창문에 목을 내밀어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기현상을 바라보았다.

  “저…… 저기좀 봐!”

  이번에는 진호가 외쳤다. 땅에서 새빨간 불줄기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또, 지평선을 뚫고 수천, 수만의 불빛들이 밤하늘을 물들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 불빛들의 춤사위에 하늘에 떠 있는 괴물체의 윤곽이 어스름히 드러났다. 달을 가리던 거대한 원반 모양의 물체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바로 외계인들의 모선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날고 있고,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수많은 불줄기들은 외계인들의 비행체였다. 그 수많은 불빛들은 지평선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그 넓은 밤하늘을 붉게 수놓고 있었다. 그 어떤 불꽃놀이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이, 이게 무슨……”

  정석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프로게이머들은 지금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거대한 밤하늘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불빛의 찬란한 향연을 보면서, 그 장면에 감탄하기보다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 현란한 불꽃들은 무리를 지어 땅의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바로 그 곳을 향해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청년들이 서늘한 5월의 밤공기를 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