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17

2005년 5월 7일 밤 10시 45분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
김동수 해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여의도 상공에는 수천, 수만 대의 비행체들이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보다 더 위에,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외계인의 모선이 동수를 굽어보듯 떠 있었다. 지상에는 수천 대의 우주선들이 나란히 착륙해 있었고, 땅에는 엄청난 무리의 외계인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바로 김동수 해설이 서 있는 이곳이었다.
“쿠르르릉…… 철커덩!!!”
묵직한 기계음을 내며 또 한 대의 우주선이 계단으로 끼워 맞추어졌다. 지상으로부터, 6층 높이인 이곳 스튜디오까지 모두 20여대의 우주선이 조각맞추기하듯 맞추어지면서, 긴 계단을 만들어 내었다. MBC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펼치겠다던 외계인들은, 건물의 한쪽 벽면을 무너뜨리고, 스튜디오 윗층을 들어내버려서 이곳 스튜디오를 야외 경기장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1층에서 이곳 스튜디오까지 이어지는 긴 계단을 우주선을 연결시켜서 만들었다. 기상천외하고 황당한 방법이었지만, 여러 종족을 학살하며 이런 무대를 자주 만들었던 모양인지 외계인들의 솜씨는 매우 능숙했다. 멀쩡한 건물의 벽을 무너뜨리고 천장을 들어내버린 까닭에,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은 천근과 철골, 콘크리트 등이 보기 흉하게 삐죽 삐죽 솟아나와 있었다. 하지만 폭격을 당한 듯 황폐한 전쟁터같은 모습이, 인류의 운명을 건 마지막 대결의 결전지로는 오히려 적합한 것처럼 보였다.
“김동수씨!”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동수는 뒤를 돌아봤다. PD 였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선수들이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같이 가보시죠.”
“정말입니까? 어디입니까?”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여기, 이 계단으로 내려가시죠.”
김동수 해설과 PD는 뛰어가듯이 외계인이 만들어 놓은 긴 계단을 내려가서는, 선수들이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도착지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무엇인가를 분주하게 준비하면서,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는 외계인들의 곁을 지나다 보니 동수는 알 수 없는 괴로움과 씁쓸함 같은 것을 느꼈다. 다른 종족에 대한 학살과 파괴, 폭력과 전쟁에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다니. 그런데, 그것은 또한 인간들의 전유물 아니었던가.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더니, 정말 인류의 멸망은 이러한 인과응보의 모습인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동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가다보니, 선수들이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다다랐다.
“여깁니다. 여기로 선수들이 타고 있는 밴이 도착할 겁니다. 근데, 정일훈 캐스터님은 어디계신지 아십니까?”
“예, 정일훈 선배님은 다른 직원분을 따라서 중계석에 이미 가 계십니다.”
“아, 그렇군요.”
동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경기장 주변에 북적대고 있는 외계인들과 떨어져, 멀리 도로변, 강변 등에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들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목청껏 외쳐대고 있었는데, 멀리 있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다. 김동수 해설은 그들을 보며 PD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응원하려고 왔을까요? 경기를 하는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PD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의아해진 김동수 해설은 또다시 질문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니?”
그러자 PD는 한숨을 한번 푹 쉬었다.
“……저들은 시위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이곳 MBC 본사가 외계인들을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말이지요.”
“시위라뇨? 무엇을?”
“아시잖습니까. 김정민 선수의 출전 말입니다.”
김동수 해설은 입을 딱 벌렸다. 이미 외계인들이 정한 마감 시간마저 넘은 상황이었는데, 이미 정해진 선발 선수를 이런 상황에서 반대하다니. 그것도 목숨을 걸고 출전한 선수에게.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생각이 있는겁니까? 대체?”
“휴…… 선수들이, 특히 김정민 선수가 저걸 보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러고 있다니, 참 답답할 분이지요.”
“아, 저기……”
동수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저 멀리서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차 한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선수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 그런 것 같네요.”
동수가 말하자,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그 차는 동수 일행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동수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끼익-”
차가 동수 옆에 멈추어섰다. 열려 있는 창문 안에 낯익고 애틋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도 창문 밖으로 동수를 보고서는 확 밝아진 얼굴로 차 문을 열고 서둘러 내렸다.
“동수형!”
박정석이 가장 처음으로 반갑게 동수에게로 다가갔다. 동수는 성큼 걸어가서는 박정석을 꽉 끌어안았다.
“그래, 정석아!”
동수는 박정석의 넓은 등을 툭툭 치면서 더욱 힘있게 끌어안았다. 정말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정석이었다.
“동수형, 잘 있었나?”
“그래, 녀석아. 어디 아픈덴 없냐?”
“아픈데가 뭐 있겠노? 딴 애들도 다 괜찮다.”
동수는 정석과 잠시 떨어진 후, 뒤이어 나온 선수 한 명 한 명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맨 처음으로 강민과 굳게 악수했다.
“민아, 이야기는 들었다. 용기있게 나섰다면서.”
“나는 선수도 아닌데, 뭐. 이 애들하고 어떻게 비교를 하겠어, 형.”
그리고 동수는 윤열과 손을 맞잡았다. 오늘따라 그가 더욱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윤열아. 첫 경기라고 긴장하지 말고. 넌 꼭 이길거다.”
“고마워, 형. 꼭 이길게.”
다음은 김정민이었다. 아무래도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시위대를 본 모양이었다. 정민의 얼굴은 어두웠다. 동수는 정민과 악수하면서, 다른 손으로 어깨를 툭툭 쳤다.
“힘 내. 저런거 신경쓰지 말고.”
“……훗. 알았어, 형. 고마워. 이렇게 나와줘서.”
“고맙긴 무슨.”
그 다음에 동수는 진호에게 다가갔다. 진호는 악수 대신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동수는 씩 웃으면서 진호와 크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맞잡았다.
“힘내라, 홍진호. 네 차례까지 안 갔으면 하는게 솔직한 바람이지만.”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동수는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선수 앞에 섰다. 동수는 씩 웃었고, 요환도 따라서 씩 미소지었다. 동수가 악수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자, 요환은 그 손을 잡아당기더니 동수를 끌어당겨 꼭 안았다. 요환이 동수를 안은 채로 말했다.
“동수야, 나 솔직히 무섭다.”
“애들앞에서 무슨말 하는거야. 오늘 지기만 해 봐. 가만 안둘테니.”
“네가 무섭다구, 네가. 이거 무서워서 어디 경기 하겠어?”
그렇게 김동수 해설이 프로게이머를 격려하는 동안,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그 때문에 밴 옆에 서 있던 프로게이머들도, 동행했던 외계인들도, 그들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다가서고 있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05년 5월 7일 밤 10시 55분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
“퍼걱!”
순간, 강민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둔탁한 충격음. 바닥에 서서히 쓰러지는 자신의 동료. 그 모든 상황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등뒤에서 들렸던 찢어지는 듯한 외침, ‘김정민 죽어라!’
“……뭐, 뭐……”
강민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가 뒤에서 각목으로 사람을 치고 도망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 속에서 서서히 깨달아졌다. 누구지? 누가 친 거지? 누가 맞은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무슨……
“아……!”
그런데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은 박정석이었다. 박정석은 김정민의 등에서 미끄러지듯이 바닥에 쓰러져가고 있었다.
“정석아!!!”
요환이 비명을 지르듯 정석을 불렀다. 정석은 정민에게 몰래 다가가는 누군가를 얼핏 보았고, 그가 각목으로 내리치려고 하자 황급히 정민을 몸으로 감쌌다. 그런데, 맞은 부위가 좋지 않았다. 목을 정통으로 가격당해 버린 것이었다.
“저, 정석아!!!!”
동수도 정석의 이름을 외치며 황급히 정석을 붙들었다. 그리고 정석을 치고 도망가는 범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었다. 웃통을 벗고, 부리나케 달려서 도망가는. 동수는 어이없는 경악의 눈으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석아, 정신차려 봐. 정석아!!!”
요환도 정석에게 달려갔다.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당황해 있었다. 일단 정석을 반듯하게 눕히고, 진호가 정석의 코에 귀를 가져갔다.
“어…… 어때? 숨은 쉬어?”
“조금만 조용히 해 봐!”
진호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정석의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귀를 가져가 보니, 아주 약하고 빠른 호흡이 귀에 들려왔다.
“숨은 쉬어.”
“대…… 대체 어떻게 된거야!”
동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도망가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채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 사람은 외계인이 던진 무기를 등에 맞고 고꾸라져 있었다.
“나…… 나 때문에…… 정석아.”
정민은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는 정석을 보면서, 정민은 온 몸으로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가슴 속이 타들어가 버리는 듯한 아득한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 버렸다.
“박정석, 야, 정신차려! 일어나봐!! 정석아!!!”
홍진호가 다급히 정석을 흔들었다.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외계인들이 그들에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외계인들의 우주선이 내는 굉음, 그들이 웃고 떠들고 즐기는 소란 속에 홍진호의 비명이 아득하고 길게 이어졌다.
“으아아아아아!!! 정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