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제 신은 힘이 다하였다.

@blog 2026. 1. 2. 14:37







  돈은 더럽다. 물리적으로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돈이 가지고 있는 기운은 기본적으로 타락하다. 내가 무소유주의자나 자본주의를 증오하는 공산주의자인줄 아는가? 나 역시 이 지옥에 살아남기 위해 끝없는 욕심 부리는 부자, 그러한 부자의 끝없는 탐욕의 도구로 날 이용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하지만 돈의 신은 오래전부터 숭배되어 왔고 지금 역시 숭배되어 지고 있다. 새해 기도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원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돈의 신을 향한 찬양은 인간이 있는 한 평생토록 지속되겠지. 하지만 돈의 신을 숭배하고 나서 돌아오는 것은 불안과 걱정과 만족이 되지 않는 탐욕이다. 그리고 그 집착은 살인에 비견될 정도의 광기를 가지고 있으니, 믿으면 믿을수록 신도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신, 돈의 신이 선한 신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알 수 있다.
 


  우리가 돈복 꿈을 꿀때 똥꿈, 불꿈을 꾸는 이유도 이와 같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돈이라는 것이 더럽고 불처럼 모든 것을 태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비루한 육체를 이끌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쾌적하게 살아야하는데 이에 있어 필요한 것이 바로 돈, 특히 국가가 돈에 탐욕을 부리는 부자들에게 해택은 물론 미래를 맡길땐 사람들은 더 돈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돈의신을 숭배하는 순간 인간이 어딘가 이상해지고 무엇보다 피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왜냐면 돈의 신을 숭배하는 사람은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마저 도구로 이용하니깐.



  이는 사실 돈의 신만 아니라 주류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림과 동시에 오랫동안 지속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제도화가 되고 그와 동시에 의미가 퇴색되어진다. 교황 자리를 둘러싼 추기경들의 암투, 한국 기독교의 헌금과 십일조 집착이 바로 그 증거다. 분명 마태복음 6장 24절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한국 기독교는 뭔 거지같은 헌금에 집착해서 거의 돈울 강요 한다. 헌금낼 돈이 없음에도 신을 만나보고 싶어 교회를 다니는 아이를 째려보는 목사를 나 집적 경험해본적이 있다.



  이미 돈과 권력이 끼어버린 종교는 힘을 다하였고 어떤 기도에 응답해줄 신이 없는 너무도 약해진 종교가 된다. 원래 초기 종교들은 그 순수성에 신도들이 평온하고 기적응 보여주며 신과 집적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 종교는 배터리가 방전인 것처럼 아무리 기도를 해도 신은 들어주지 않았고 이는 당신이 모시고 있는 신이 힘이 다했기 때문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예수와 성모마리아와 부처의 이름을 딴 사이비 종교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 퇴색성을 보여준다는 증거, 테레사 수녀 역시 피트 신부와 나눈 편지에 신의 부재를 생각했다고 했을만큼 그들이 믿던 신은 이제 힘을 다하였다. 오직 그 신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 만이 온 힘 다해 죽기 직전인 신이 아직 팔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가끔은 안쓰럽게 보일 정도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원하든 원치않든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고 매 순간 신이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끼는 종교를 믿어야 한다. 신도가 과도하게 있고 또 세상의 축에 한 권력이 있는 종교는 이미 힘을 다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원하든 원치 않든 더러워진다. 억지억지 믿음을 가지며 질질 끌려다니는 종교생활을 나도 다 해봤다. 유치원 때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교회를 조금도 빼먹지않고 꾸준히 다녔지만 그곳에서 난 신의 부재만 확실히 느꼈을 뿐이다. 그렇다고해서 무당처럼 남에게 벌을 주고 나의 탐욕을 채울 가상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자신만의 철학,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향에 한발자국 앞서서 당신을 기다려주고 있는 신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종교가 있어야 하고 교리가 있어야 한다.



복종이 아닌 반항이 모든 종교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지. 그리스도교는 기존 유대교의 빡빡한 규율에 반기를 들어 탄생했고, 기독교는 면죄부를 발행하는 천주교의 탐욕에서 벗어나고자 탄생했다. 내가 좀 더 신성해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만의 종교, 우리는 신의 이름 아래 거룩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