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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FORCE 취중진담) 윤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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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1. 1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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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스타즈 ‘뇌제’ 윤용태

꽃 향기를 지배하는 8할은 토양과 햇빛이다. 아카시아도 토양과 햇빛의 역할에 따라서 더 진한 향을 내기도 하고 향기가 거의 나지 않기도 한다. 꽃이 각자의 향기를 갖고 있듯 사람도 특유의 향기를 갖고 있다.

어머니의 뱃 속에서 갓 태어났을 때는 대부분 비슷하지만 걸어온 길에 따라 발산하는 향기는 다르다. 꽃보다 오래 살며 주어진 환경을 딛고 일어날 수도, 순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을 거치느냐가 향의 진하기나 특징을 결정짓는다. 사람 사이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용태에게서는 프로토스의 향기가 난다. 다양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프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윤용태가 발산하는 향기는 독특하다. 그동안 등장했던 모든 프로토스들의 향기를 압축한 듯한 느낌이랄까.

독특한 향기로 차세대 e스포츠를 물들여갈 새로운 영웅, 윤용태를 만났다. 늦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남윤성 기자 force7@ 사진=이 건 기자 force6@

 


공부 대신 선택한 게임

윤용태가 프로게이머를 선택한 이유는 공부와는 적성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부모님은 과외 선생님까지 붙여 가면서 공부로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윤용태는 일찌감치 자기 갈 길을 정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 졌지만 게임은 하면 할수록 뭔가 깨달아 가는 느낌을 받았단다.

부모님 몰래 빠져 나가 게임을 하면서 점점 빠져들었고, 흥미를 더할수록 진로로 삼아야겠다는 열의도 더해갔다.

“재미있는 것을 하고 살아야 즐겁다는 말을 들었어요. 논어 옹야편에 보면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와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와 같지 못하다’는 뜻이더라고요. 게임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즐기고 있어요. 승패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공부보다는 게임을 선택하게 됐어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과외까지 시켰건만 이를 뒤로 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많았다.

“가능하다면 빨리 결과물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놀면서 돈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하고 싶었죠. 그래서 제 자신을 더욱 혹독하게 채찍질했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좋은 스승, 좋은 동료

하루라도 빨리 성장하기 위해 윤용태가 선택한 경로는 길드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길드에 소속돼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스타일을 배우겠다는 것. 여기 저기 노크하던 그에게 러브콜이 온 곳은 전상욱, 변형태, 마재윤, 오영종, 서기수, 송병구 등이 속해 있던 [gm] 길드다.

“길드에 들어가면서 정말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영종이형이나 기수형은 오랜만에 괜찮은 프로토스가 들어왔다면서 같이 연습도 해주고 갖고 있는 전략도 알려주셨죠. 프로게이머와 연습 경기한 리플레이를 주기도 했어요. 형들의 보살핌 덕분에 커리지 매치를 통과하고 준프로게이머가 됐어요.”

[gm] 길드는 결성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프로게이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마재윤, 전상욱, 변형태, 오영종 등이 이 길드 출신으로 프로에 데뷔해 메이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를 오가며 맹활약한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당시 막내 격으로 윤용태가 들어온 것. 다소 소심하기는 하지만 선배들에게 싹싹하게 잘하는 윤용태라서 선배들도 아낌 없이 정을 쏟았다.

윤용태와 비슷한 시기에 길드에서 활동하던 선수가 송병구다. esFORCE 104호 < 취중진담 > 코너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88년생인 윤용태와 송병구는 절친한 친구다. 나이도 같고 태어난 곳도 대구로 같아서 금세 친해졌다.

“친하지만 말 못할 부러움도 많았어요. 길드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아마추어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예선장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병구는 어느새 프로게이머가 되어 스타리그에도 나가는 거에요. 길드에서 만나도 말도 못 걸 만큼 짧은 기간 동안에 성장했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따라잡으려 노력했어요.”

칼 루이스도 혼자 연습할 때에는 100m를 10초 안에 끊지 못한다고 했던가. 두세 발짝 먼저 나가있는 송병구를 따라잡기 위해 윤용태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2005년초 준프로게이머가 된 윤용태는 2005년 말부터 프로리그에 모습을 드러내며 입지를 넓혀 나갔다. 그런 면에서 송병구는 윤용태가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제2의 도약과 한빛 스타즈

같은 길드 소속의 프로게이머들이 윤용태의 성장 기반이 됐다면 두 번째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곳은 한빛 스타즈다. 윤용태는 친구인 유인봉의 권유로 명장 이재균 감독의 눈에 들었다. '방학 테란'으로 유명했던 유인봉은 이 감독에게 윤용태를 소개하면서 "2~3년 안에 대성할 선수"라 소개했단다.

처음 한빛에 들어갔을 때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2005시즌 전기리그부터 본격적으로 합류했지만 팀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다른 팀들이 대기업과 손 잡으며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빛은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다. 그러나 윤용태는 외부 환경과 담을 쌓아 버렸다.

"제가 실력을 갖추기도 전에 환경부터 봤다면 아마도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른 팀이 어떻게 지내느냐와 성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선배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윤용태가 처음으로 대중의 눈에 든 것은 2005년 하반기에 열린 한 개인리그의 예선전. 1차전에서 위메이드 이윤열을 만나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역전승을 거둔 뒤 STX 김윤환과 온게임넷 박명수를 차례로 꺾으며 듀얼토너먼트까지 진출했다. 본선 무대에서 1승2패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지만 윤용태는 단숨에 '신성'으로 떠올랐다.

"행운이 많이 따랐어요. 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덤볐는데 전략이 잘 통하더라고요. 게임을 거듭할수록 신났고 잘한다는 선수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라는 뿌듯함을 느꼈어요. 공부를 포기하고 선택하길 잘했다고 만족했어요."

데뷔전 이후 윤용태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이재균 감독은 신인들의 통과 의례라 할 수 있는 팀플레이를 윤용태에게는 시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윤용태는 2005년 후기리그부터 개인전을 뛸 기회를 잡았다.

"프로리그에 처음 나갔을 때 엄청 두려웠어요. 온게임넷 박찬수 선수와의 경기였는데 큰 무대에서 처음 플레이하는 거라 심장이 두근거렸죠. 어떻게 이겼는지 아직도 멍해요."

이 기회를 발판으로 윤용태는 한빛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6시즌 후기리그에서 김준영과 보여준 원투 펀치의 위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2007시즌 전기리그에서는 개인전 다승왕까지 오르며 물오른 실력을 자랑했다.

"제가 만약 유명한 프로게임단에 속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한빛 스타즈에서 성장했기에 이 자리까지 단 시간에 올랐다는 겁니다."

한 때 '연봉 600만원' 사건이 각종 게시판을 뜨겁게 달굴 때에도 그는 덤덤했다. 재계약 전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연했다고 했다.

"2005년에 10 경기도 뛰지 않은 선수에게 누가 선뜻 2000만~3000만원을 주겠습니까. 2006시즌 한창 성적을 올리고 있었지만 계약 기간도 아니었기에 저는 당연히 그 돈을 받았습니다. 선수 생활 1~2년하고 접을 것도 아니잖아요. 성적에 중점을 두고 열심히 한다면 연봉은 언젠가는 오르겠지요."

준영이형 우승 보며 부러웠다

윤용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바로 김준영이다. 같은 팀에서 동고동락하던 김준영이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 우승컵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고.

"변형태 선수와의 결승전에서 0대2로 지고 있을 때만해도 못 뒤집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세트, 한 세트 따라잡더니 역전 우승을 차지하더라고요. 시나리오로 써도 저렇게 못 쓸 거에요. 준영이 형이 무대의 중앙에서 웃는데 전율이 느껴졌어요. 저도 저 저리에 서고 싶고 웃으면서 마무리하고 싶더라고요."

개인리그에서 우승하고 싶은 것은 모든 프로게이머들의 꿈이다. 윤용태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 서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 친구인 삼성전자 송병구와 1년 후배이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MBC게임 김택용은 이미 그 자리에 섰다.

"두 사람보다는 한참 늦었죠. 데뷔 시점도 늦었고, 개인리그에서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니까 변명할 여지도 없어요. 그렇지만 대기 만성이라는 말처럼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으려고요.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 딱 좋아요."

서글서글 웃고 있지만 작은 눈구멍 사이에서 새까맣게 빛나는 흑옥같은 눈빛이 광채를 발한다. 사실 윤용태도 이들의 경력에 부럽지 않을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었다. 지난 8월에 열린 < WCG 2007 한국 대표 선발전 >에서 4강에 오른 것. 4강에서 송병구에게 패한 뒤 3-4위전에서 마재윤에게 또 지면서 시애틀행 티켓을 놓쳤다.

"친한 선수들과 경기하면 꼭 지더라고요. 긴장감이 안 생겨요. 그래서 병구랑 택용이에게 유난히 약한 가봐요."

'거만' 용태?

이재균 감독이 윤용태를 부르는 별명은 서너개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라는 동요 한 구절처럼.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이재균 감독이 붙인 것이다.

이 감독은 윤용태를 부를 때 '거만 용태'라고 부른다. 평소에는 수줍음도 많이 타지만 경기에 들어가면 천하제일이라는 눈빛으로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힐끔 보면 거만하다고 부를 만하다.

"감독님이 제게 많은 애정을 쏟아주시기 때문에 별명도 많이 붙여 주세요. 거만하다고는 하지만 저는 좋아요. 실제로는 전혀 거만하지 않으니까요."

최근 윤용태에게 또 다른 별명이 붙었다. 바로 '라이벌'이다. 10월 결혼식을 올릴 이 감독의 피앙세가 윤용태의 열혈 팬이기 때문. 숙소에 자주 찾아와 간식도 해주고 반찬도 해주는 등 열성을 보이면서 "윤용태 선수 팬"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리지 않기에 이 감독이 자주 눈을 흘긴단다.

"형수님이 제 팬이라고 하시길래 깜짝 놀랐어요. 저야 팬이 한 명 늘어서 좋고 누님이 한 명 더 생겨 좋죠. 대신 감독님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입니다. 하하."



팬들에게 어필하고 싶다

윤용태가 e스포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온 적도 있다. 윤용태가 아니라 윤용태의 팬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2006시즌 후반 윤용태의 팬들은 윤용태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 착용하고 응원전을 펼쳤다. 훗날 '액션 가면'이라 이름 붙은 이 응원 도구는 점차 확산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경기석에서 처음 봤을 때 웃음도 났지만 너무나도 고마웠어요. 별 것 아닌 저 같은 선수를 응원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도 좋았고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명 받았어요."

액션 가면 응원도구를 접한 뒤 윤용태는 더욱 신나서 경기했고 한빛은 2006시즌 포스트 시즌까지 진출했다. 이러한 성과를 모두 팬들의 공으로 돌리는 윤용태.

"우리 팀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응원 소리가 다른 팀보다 작은 것이에요. 한빛 파이팅 소리를 더 크게 질러 주시면 저희 모두 더 열심히 경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응원 오세요."

'혁명가'의 인생 이야기 듣고파

윤용태는 다음 상대로 김택용을 선택했다. 한 살 차이이면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김택용의 삶 이야기를 듣고 싶단다. 배틀넷에서 자주 만나 농담도 나누고 정보 공유도 많이 하는 편이라 친하다고. 어린 나이에 MSL 우승을 밥 먹듯하는 비결을 듣고 싶어 지명했다고.

"택용아, 내가 < WCG 2007 한국 대표 선발전 >에서 재윤이형한테 진 것 알지? 다음에 배틀넷에서 만나면 이기는 법 좀 알려줘."



출처 : cafe.daum.net/nowwetalk/5nq7/15176?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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