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음주 거부자? 박태민과의 삼겹살 데이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달라진 <취중진담>의 컨셉트를 아시는지? 파악하셨다면 esFORCE의 열혈 마니아로 인정한다. 그렇지만 처음 이 잡지를 접하시거나 그동안의 스토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팁을 드린다. ‘사진 중에 술잔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이 힌트라면 힌트다.
그렇다. 술을 마시는 인터뷰이를 섭외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컨셉트다. 사실 섭외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지간히 술 좋아한다는 인물들은 거의 다 취재했고 남은 인재풀이 거의 없다.
1년 전만하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 취재원을 추천할 경우 인상을 쓰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뽑아준 것만 하더라도 감사하다. 거의 70회를 맞고 있는 취중진담의 한계일 수도 있다.
지난 114호에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이승훈을 만났다. 이승훈은 SK텔레콤 T1 박태민을 지명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박태민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언제까지 취재를 거부(?)할 수는 없는 법. 술 대신 삼겹살을 앞에 놓고 박태민을 만났다.
양심적 음주 거부자
삼겹살을 시킨 뒤 다짜고짜 ‘왜 술을 마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강짜를 부리는 것으로 비출 수도 있지만 취중진담이 갖고 있는 컨셉트를 각인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마치 강호동이 무릎팍 도사에서 인터뷰이에게 겁을 주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가듯.
박태민은 “아직 정신적으로 어리기 때문”이라 말했다. 정신적으로는 미성년자와 다름 없으니 술을 마시려면 멀었다는 위트 넘치는 반격이었다.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는 웃으며 “자라온 환경이 술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각설했다.
“어린 나이에 게임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중간에 고등학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학창 시절을 오래 보내기도 했고요. 남들보다 술을 접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고 할까요.”
꼭 그런 이유만이 아닌 것 같아 다시 캐물었다. 종교적인 이유는 없느냐고. 크리스천의 교리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내용도 들어 있지 않냐고 했더니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술과 친해지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에요. 하나는 어머니, 또 하나는 아버지였죠.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세요. 지금도 일주일에 2~3번은 교회에 나가시거든요. 그런 어머니께서 ‘태민이는 모태 신앙을 갖고 있으니 교리를 지켜라’하시면서 술과 담배를 멀리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술을 좋아하셨어요. 가끔 많이 취해 들어오시면 용돈도 주시면서 좋은 모습도 보여주셨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어요. 두 분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으로 인해 술과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태민은 태어나서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을까.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먹어본 적 있다”였다. 청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중에 역시 술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WCG(World Cyber Games)의 전신인 WCGC 대회를 치를 때 외국에서 온 선수들과 교류할 시간이 많았어요. 경기장에서는 적수였지만 숙소에서는 격의 없이 지내는 친구처럼 한 달 가량 보냈거든요. 어느날 외국인 친구 방에 놀러갔더니 맥주 한 캔을 꺼내더라고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셔 보라는 뜻 같았어요. 그 때 처음 술을 접했죠.”
두 번째 기회는 중학교 동창생들과의 모임 때였다고.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였고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어서 기분 좋게 마신다고 했는데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단다. 그도 그럴 것이 350ml 잔에 소주와 맥주를 ‘비율도 어겨가면서(!)’ 섞어 마셨으니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날 이후로는 술 자리도 찾는 편이 아니에요. 음료수나 차를 마시면서도 얼마든지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굳이 술까지……. 우리 팀이 우승하고 난 뒤 뒷풀이가 아니면 거의 가지 않습니다.”
이 한 마디에서 ‘양심적 음주 거부자(?)’ 박태민의 단호한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
박태민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복학한 이후였다. e스포츠 초창기였던 그는 2000년 WCGC를 제패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선배인 임요환 보다도 오래 전에 세계 만방에 대한민국 e스포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국제 대회를 치르면서 휴학을 한 뒤에 다시 학교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는 마쳐야 사회인으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이후 다시 게임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믿음이 가지 않았어요. 자신에게도, e스포츠라는 분야에도 마찬가지였죠. 그 당시에는 정말 냉혹하고 살벌했어요. 하루에도 몇 개 팀씩 생겼다가 사라졌으니까요. 믿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고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죠.”
독실한 어머니 덕분에 그는 모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교회를 정기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결심은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냉정한 e스포츠의 현실 앞에서 작아져만 가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절대자로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주일에는 항상 교회에 나가려고 해요. 결승전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가지 못하더라도 꼬박꼬박 다니려고 합니다. 부모님이 다니시는 일산으로 갈 때도 있지만 주로 숙소 근처에 있는 어떤 교회라도 꼭 가고 있어요. 제게 힘을 주는 분에게 신뢰를 보여야죠.”
앨범 한 장 내볼까요
박태민은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하다. 생일 파티나 팬미팅 등 팬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있을 때 마이크를 넘겨 주면 빼는 법이 없다. 레파토리도 다양하고 음정이나 박자 모두 척척 들어 맞는다. 감칠맛 나는 목소리라고나 할까. 주위에서도 가끔 은퇴하고 나면 가수를 해보는 것은 어떻냐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 정도니까 ‘준 가수’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05년 말에 파인애플이라는 그룹과 함께 SK텔레콤 T1 전체가 공동 음반을 낸 적이 있잖아요. 그 때 굉장히 의욕적으로 연습했어요. 솔로곡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죠.”
박태민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직접 부른 노래가 앨범으로, 그것도 독창하는 곡이 따로 있다는 점은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막상 부르고 나니 후회가 남더란다.
“녹음하러 가기 직전 단체 회식을 했어요. 속이 든든해야 노래도 잘 된다면서 중국집에서 거하게 먹었죠. 사실 그게 독이었어요. 가수들 같은 경우엔 너무 많이 먹은 날은 오히려 노래를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면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금세 쉰대요. 그것도 모르고 많이 먹은 게 후회돼요.”
원래 실력의 60%밖에 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박태민은 언젠가는 앨범 한 장을 꼭 내고 싶단다. 프로게이머 출신 최초는 아니지만-허용석이라는 선수가 가수로 변신해 힙합 앨범을 낸 적이 있다-발라드로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저주받은 몸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박태민은 esFORCE에 상의를 탈의하고 면도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호평을 이끌어 냈다. 그 사진을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평상시 몸무게가 50Kg 후반이에요. 근육 운동을 통해 상체를 키우고 싶어서 피트니스 센터 강사로부터 몸짱되는 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일단 살이 붙어야 된다더라고요. 그래서 두 달 가량 하루에 여섯끼를 먹었어요. 세 끼는 숙소에서 먹는 식사로 해결하고 남은 세 끼는 단백질로 구성된 보충제를 물에 타서 먹었죠. 한 끼용으로 1ℓ씩 세 번을 먹는데 곤욕이더라고요.”
무한한 노력 덕분에 63Kg까지 몸무게를 늘렸고 상체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각 잡힌 몸매를 만들었다. 그러나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고. 체중이 늘면서 위크 포인트인 하체도 비례해서 늘었기 때문이다.
“한창 운동에 맛을 들였지만 팀이 숙소를 두 번이나 옮기고 리그 일정이 빠듯해지면서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몸꽝입니다.”
박태민의 약점은 두터운 하체. 종아리부터 허벅지, 엉덩이까지 풍만하기 그지 없다. 사실 풍만보다는 탄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근육으로 감싸여 있는 것을 기자가 몇 번이나 확인했기 때문에.
“어느날 문득 피트니스 센터에서 뛰고 있는데 제 다리가 왜 굵은지 번뜩 떠올랐어요. 어렸을 때 오락실을 가끔 다녔는데 자금을 아끼려고 동네 뒷산을 걸어서 왔다갔다 했거든요. 그 돈을 절약하면 한 판이라도 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야구나 농구는 젬병이지만 축구는 남들보다 잘했어요. 하체 운동을 어렸을 때 너무 많이 한 결과 지금의 ‘저주받은 몸매’가 된거죠.”
아집, 부진 그리고 노력
박태민의 소속 팀 SK텔레콤 T1은 7주차를 마친 현재 7위에 랭크돼 있다. 선수들의 이름값이나 연봉으로 치면 최고여야 마땅하지만 2006년 후기리그부터 세 시즌째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박태민이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부진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고집이 센 편이라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더라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제가 쌓아 놓은 방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잖아요. 제 식으로 이기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고집이 아집이 된 것 같아요.”
본론에 들어가서 속내를 털어놓다 보니 목이 타나 보다. 탄산음료를 한잔 한 뒤 삼겹살을 쌈에 싸서 크게 하나 입에 넣고 온갖 스트레스를 담아 우걱우걱 씹는다. 부진한 자신을 곱씹듯.
“여자 친구가 댓글을 자주 보는데 제 평가가 ‘막장’이라 됐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아팠는지 제발 분발하라고 조언을 하대요.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뭐라 할 말이 없어요.”
훈련량이 모자란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자신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없다고 했다. 다만 승자만이 살아 남는 승부의 세계에서 뒤쳐진다는 것은 곧 도태되는 길이기에 지면 안된다는 독기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사실 SK텔레콤으로 이적한 이후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됐어요. GO에서 묻은 색깔을 빼는데 적잖이 고생했죠. 그렇지만 이제는 완벽한 T1맨이 됐습니다. 환경의 차이를 인정하고 동화됐습니다. 성적이 다소 발목을 잡고 있지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거든요. 제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문구입니다.”
얄미운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노력이 배신한다면? 박태민은 “그 때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죽어라 노력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프로의 세계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태민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기대하고 있는 주위 사람들도 많고 지켜보는 시선도 많다. 또 함께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다.
“성준이가 팀에 합류한 뒤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서먹하기도 하고 서로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이 있어 남들이 생각하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만 요즘에는 마음의 벽을 터놓고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저는 결단력을, 성준이는 운영의 묘를 체득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투의 신과 운영의 마술사가 합치면 어떤 모습의 완전체가 나올지 팬들은 적잖이 기대했다. 언제 완성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SK텔레콤 T1이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행복 날개’를 펼칠 그날이 아닐까.
남윤성 기자 force7@
사진 이 건 기자 force6@
출처: cafe.daum.net/yohwanfan/5np7/16230
[기몽기] 10억을 벌었습니다 (0) | 2021.02.15 |
---|---|
10-11 프로리그 선수별 성적 (0) | 2021.01.30 |
[동양제과 오리온] 우승 사냥꾼들의 '집합소' (0) | 2021.01.23 |
esFORCE 취중진담) 조용호 (0) | 2021.01.18 |
[개념치킨] KTF매직엔스, SK T1, GO팀 (0) | 202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