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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의 인플레이션 - 스타벅스 바닐라 크림 콜드브루

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by @blog 2024. 10. 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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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친구와 함께 스타벅스에 왔고 스타벅스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메뉴, 바닐라 크림 콜드 브루를 주문해서 마시고 있다. 그런데 평소 바닐라 시럽을 얼만큼 넣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과거 주문했던 내역을 봤거든? 보통 정량이 바닐라 시럽 1스푼인데 2스푼을 넣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주문을 해서 커피를 마셨더니 쓰더라고. 그러니깐 커피가 써서 쓴 것이 아니라 시럽이 너무 많이 들어가 달아서 아릴 정도 쓰다는 거다. 도대체 이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인가? 과거의 난 단것에 환장하던 미친 사람이었나? 어떻게 정량보다 2배나 많이 넣고 주문한 거지? 그러나 얼음이 녹고 시럽이 골고루 퍼지자 내가 좋아하는 맛, 적당히 달면서 쓴맛이 나는 것이 왜 시럽 2스푼을 넣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참 적당한 맛 찾기란 힘들어. 그치? 1스푼이 아닌 2스푼 넣어서 얼음이 녹기까지 기다린 후 먹어야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을 수 있으니깐. 사실 바닐라 크림 콜드브루만 아니라 내 입맛에 딱 맞는 맛, 내게 만족도를 줄 수 있는 맛을 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파전같은 경우는 막 만들어진 순간보다 하루가 지나서 차갑게 식을 즈음, 후라이팬에 기름을 가득 넣어 과자수준으로 튀겨야지 맛있다. 초콜렛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닌 녹인 후 실리콘 도마 위에 얇게 펴서 냉동실에 얼린 후 초콜렛 칩처럼 먹을 때가 제일 맛있더라고. 한번 이 맛에 들리면 과거 평범하게 먹을 수 없게 되니, 왜이리 과정이 어려워야지만 음식이 맛있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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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이런 현상은 내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더라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 가능한 빵이 아닌 값비싼 재료와 노동력으로 이루어진 마카롱이 더 맛있고, 그냥 막대기에 꽂힌 과일보다 설탕물을 바르고 굳힌 탕후루가 더 인기가 있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과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는 그것에 대한 만족도가 커진다. 과거 같은 경우, 그러니깐 당장 부모님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크림이 들어간 빵은 매우 고급스러운 음식이고 바나나 역시 정말 귀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거든? 그러나 크림빵과 바나나가 쉽게 공급된 지금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맛있는 것, 더 새로운 것, 호텔 케이크 정도는 먹어줘야 만족해서는 인스타그램에 올려 사진을 찍는다. 그만큼 만족도라는 것은 올라가거나 잠시 정체될 뿐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의식주 모두 한번 좋은 것을 맛보고 나면 내려오기 힘들어진다. 어느날 갑자기 대재앙이 일어나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비상텐트에서만 산다고 하자. 뭐 한 두 달은 어쩔 수 없으니깐 버티겠지. 하지만 이미 버튼만 누르면 불이 켜지고 스위치만 돌리면 물이 나오던 집을 잊어버리면서 텐트 생활에 만족할까? 과거 살았던 집에 대한 욕망, 편리함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머리 속에 남아있겠지. 그만큼 한 번 맛 본 만족에서 인간은 벗어나기란 힘들고, 특히 자연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인공물 정도는 되여 만족할 정도로 우리는 비자연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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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축화가 되어버린 거다. 이제 우린 사람의 손을 거친 인공물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가축이 되어버렸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스타벅스 커피 역시 자연에서는 저절로 만들어 질 수 없는 크림과 커피와 감미료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인공품 아니던가. 물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 수 는 있지만 도시에서 맛 본 전등불, 화장실, 수도시설을 비슷하게 구현화해 나가면서 살아가는거지 완전한 자연인은 절대 아니다. 생감자보다 불에 구워먹는 감자가 더 맛있고, 불에 굽는 것보다 잘라서 튀겨먹는 게 더 맛있으며, 소스까지 뿌려 먹어야만 만족하는 단계까지 도달한 우리들, 가면 갈수록 인공물과 자연의 괴리는 커지고 우리는 사람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족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문득 그 사실에 사이버펑크 2077 게임 속 나이트 시티라는 도시가 생각나는 거 있지? 범죄율도 높고 치안도 좋지 않으며 2명 중 1명은 자살한다는 도시 나이트 시티, 나였으면 그 지옥같은 곳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난 도시의 가축이었고 나이트 시티 주민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당장이라도 도시를 탈출하고 싶지. 회사도 그만두고 자유롭게 살고 싶지. 하지만 사람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는 죽지않고 생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까지는 죽지 않을 자신은 있다. 왜냐면 젊기 때문에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며 살수 있으니깐.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병이 생기면 과거 도시의 첨단 의료 기술이 기억나면서 다시 되돌아 가지 않을까? 이미 한 번 맛 본 최첨단의 맛, 인간 중심적인 발전을 포기할 수 있나? 마치 인간이 키우는 가축과 농작물을 자연으로 되돌리며 얼마 살지도 못하고 먹히고 죽어버리는 것처럼 우린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도록 태어났고, 우린 사람의 손길 속에 살아야만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신체와 정신과 성격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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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바닐라 콜드브루 하나에 인간 가축론까지 생각할 마음은 없었지만 높아져 가는 사람들의 만족도, 그리고 인간 무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유가 강탈당한 기분이 드는 거 있지? 과연 나는 언제쯤 회사와 이 집과 사람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을까. 또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할 꺼면서 왜 자유를 그렇게 갈망할까. 그냥 이건 인간의 야생적 본능 아닐까? 갈수록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하는 만족은 야생성을 무시함으로서 오는 높은 패널티이고 말이다.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자이나교급으로 엄격한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버리고 퍽퍽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오는 만족도를 자진해서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버린 걸까? 갈수록 이루기 어려운 만족은 야생적인 본능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 뿐이라는 것을. 나 역시 내 안에 가축으로서의 삶을 탈출하고 싶은 야생성이 꿈틀거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다이소에 가서 물건 한가득 지르거나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야생성을 잠재우곤 하지만 과연 이 방법은 언제까지 통할까? 영화 <파이트 클럽> 속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이케아 가구를 사면서 무료함을 달랬지만 결국에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은 것처럼 과연 나의 야생성은 어느 방향으로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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