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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에서 오는 우월감 - 이디야 녹차라떼

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by @blog 2024. 8. 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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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모님 집은 잔디밭이 딸린 마당과 마루 바닥은 그 비싸다는 편백 나무, 구조는 한옥  2층 집을 이룬 것이 딱 성수기때 1박에 60만원 받을 거 같은 팬션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휴가철만 되면 언니를 포함해 형부, 조카들까지 부모님 집으로 와서 휴가를 보내고 있으니, 시끌시끌, 후끈후끈, 여름 휴가 때면 에어컨 온도가 27도 이하로 떨어지지를 않을정도로 사람 참 바글 거리더라고. 뭐 여기까지는 좋아. 또 내가 아이들 비위 잘 맞춰주니깐 조카들하고 노는 것도 문제 없어. 다만 연례행사처럼 꼭 있는 절차, 걱정을 가장한 내 인생을 평가하려는 친척들의 시도에 난 늘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뭐 그런거 있잖아. 대놓고 "돈 안되는 짓 왜해?"라고 묻지는 않지만 “그거 아직도 해? 00 작가처럼 성공할 수 있어? 결혼은? 결혼할 나이 아닌가?"처럼 정해진 평균선에 벗어난 나를 파묘 하듯이 파해치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친구와 놀고 온다는 거짓말을 하고 이렇게 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야 살 것 같더라. 아 물론 진짜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지만 취소되어 전화위복으로 녹차라떼 마시며 글 쓰고 있으니, 이게 가장 나 답더라고.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조카보다 내가 쓴 글이 더 소중하고, 카페가 부모님 집보다 더 편하며, 대화 하나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고 있으니 이거 뭔가 잘못 된거 같은데,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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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평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전반적이 있지만 특히 우리집, 그러니깐 집안 식구는 많은데 가장이라는 분이 예술가적 기질로 인하여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엄마가 가장 역할을 맡게 된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물론 대놓고 말하지 않지. 하지만 간접적인 분위기로 뚜렷한 자아 형성하여 평균선에 벗어나는 순간, 엄마는 물론 같은 형제에게까지 비웃음 당할 것 같은 살얼음판이 우리집 안에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인가. 한 성격하던 어무니보다 고집 센 사람이자, 욕 한사발 쳐먹어도 나 하고 싶은 거 다하는 나, 나하고 싶은 길로 가게 되자 가족들의 눈총은 물론 어른답지 못하다는 남동생의 시비도 듣는 뻔뻔한 나 아니던가. (정작 남동생은 평균선에 벗어나게 되자 가족들과의 왕래를 거의 끊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무엇인 줄 아는가? 우리집 가장이 정한 평균선, 들어오면 욕 먹지 않을 그 평균선이 다른 집의 평균선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집이 정한 '평균선 밖'은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긴데, (대학 가서 돈이 많이 들 수 있음으로) 인문계에 가지 않는 것, (부모가 학비를 부담할 수 있는) 대학교에 가지 않는 것, (자칫하면 돈이 많이 들 수 있는) 본인이 좋아할만한 취미, 특기 가지지 않는 것, (돈이 많이 드는) 휴가철 여행 가자고 조르지 않기 등등... 어때? 기기괴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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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우리집 뿐이랴. 사회가 정한 평균선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매우 자주 사회가 정한 평균선이 가면 갈수록 얇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깐 누군가에게 잔소리, 지적질, 걱정을 가장한 인생 평가를 피할 수 있는 평균선이 얇아지고 있는데 또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듯 휘어지고, 꺾어지고, 궤도까지 튼다는 것이다. 우리 어무니 어린 시절에는 주판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뛰어난 인재라고 하더라고. 나때는 한창 창의력 타령, EQ타령하면서 그러한 능력을 가진 애가 취직 잘된다던데. 요즘은 또 코딩이 핫하더만? 이렇게 ‘지적질 안당할 수 있는 어린 인재’는 시대에 따라 자꾸 변하고 앞으로도 계속 변하겠지. 이 나라의 가장이라는 국가의 변덕에 따라서 말이야.



  어린 아이도 그런데 어른은 오죽하겠어? 요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녀 평균이 월 300만원 수입에, 대출 조금 끼고 자가집 보유, 자동차 보유, 취미는 독서에 성격은 털털, 덤덤, 곰같은 성격이 아니면 결혼 하나로 인생 역전 해보려는 욕심 그득그득한 노총각, 노처녀 취급 받지 않은가. 그리고 이 평균선에 속한 사람은 내가 다수에 속한다는 우월감에 이것은 어떤 하나의 지위가 되고, 그 지위는 현실적인 조언을 할 자격이 부여 되면서 젊은 나이에 인생 다 사는 듯한 타령을 하는 할아부지로 만들어 버린다. 



   창피한 말이지만 나 역시 평균에 속했다는 자만심, 우월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깐 ‘월 300’에 집착해서는 학과 성적, 자격증, 수상활동을 하며 참 열심히도 살았었다. 그렇게 중견기업 사무직으로 입사, 그렇게 난 평균선안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큰소리 떵떵치고 친척 가족들 앞에서 얼굴 빳빳하게 들 생각에 좋아했지만 문제는 바로 나, 내 마음이 잔뜩 심통나서는 얼마 있지 못해서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 화나면 화난다면 말할 수도 없었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사육장 같은 그곳을 나 사랑할 수 없었던 거야. 물론 회사 생활이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당신의 사정이고요, 나는 내 사정이 있다. 벗어나는 순간 가슴이 답답한 나만의 평균선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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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강아지구충제인 펜벤다졸이 암 퇴치 효과에 좋다는 말이 떠돌자 말기 암 환자들이 먹었던 사건이 있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말기 암 환자의 어리석은 판단, 비이성적인 행동에 비웃었지만, 말기암 환자의 입장이 되지 못한 그대여, 그들의 행동에 뭐라 할 자격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이 되지 못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린 알아야 한다고. 희망도 주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도움이 되지도 않는 ‘현실적인 조언’이 얼마나 앵무새 대가리에서나 나올법할 예측가능하고 반복성만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는 사람들만 몰라. 말하는 사람만.

 

  앵무새같이 평균평균 떠들어 대는 당신, 현재 자신이 평균선 안에 있고 거기서 오는 안정감 하나 믿으면서 방심하지 말라. 왜냐면 당신도 언제든지 평균, 일상적, 보통이라는 선 밖으로 튕겨져 나갈 수 있으니깐. 다수결이 우위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변두리 밖에 서지 않다는 걸 어떻게 보장 할 수 있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환자에게 사망 선고를 말하는 의사도 막상 자신의 사망 선고는 그 누구보다 유예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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