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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초겨울날, 밖에서 햄버거를 먹을까 집에서 밥을 먹을까 장장 10분을 고민하다가 쿠폰을 사용하여 롯데리아에서 치즈 NO.5와 오징어링을 먹기로 했다.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샤넬 NO.5도 아닌 치즈 NO.5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글을 썼을 당시에는 정말로 롯데리아에서 치즈 NO.5라는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고 버거킹 콰드로 치즈버거의 자리를 노렸는지 패티 안에도 치즈가 박혀있을 정도로 치즈맛이 지독하게 강한 햄버거였다. 다만 콰트로 치즈 버거와 비교해 보면 맛은 막상막하지만 가격면에 비싼 감이 있어서 결국 단종되었으니... 불쌍한 치즈 NO.5. 그런 미래도 모른 채 너를 맛있게 먹고 있었던 나. 그런데 치즈 햄버거 때문에 뇌에 과도하게 영양분이 공급되어 있어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데 와이파이도 없어, 핸드폰 배터리도 다 나가, 결국 아무글이나 쓰고 싶었던 나는 내 앞자리에 앉은 남자를 보고 글감이 떠올라 머릿속에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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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차림새를 대략 설명하자면 슬리퍼에 잠옷바지, 안 감아서 떡진 머리, 면도도 안 한 얼굴로 햄버거를 먹고 있어서 굉장히 인간미가 넘쳐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교는 물론 회사에서도 저런 옷차림의 남자들 중에 자신이 인간미 넘친다며 자부심 가지는 애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간미라... 아주 좋은 단어지. 사이코패스스럽다, 인간미 없어 보인다,라는 말보다는 괜찮잖아. 가게를 가도 기왕이면 인간미 넘치는 가게, 위생에 조금 덜 신경 쓰고 인테리어에는 투자하지 않지만 음식 역시 정확한 정량보다 더 많이 주는 가게를 가는 것처럼 말이지. 즉 '타인을 위하여 꾸미지 않음, 노력하지 않음, 솔직한 모습 그대로 보여줌 = 인간미'라는 공식이 있고 사람들 역시 잘 꾸며진 가식보다는 진실된 인간미를 좋아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그래. 인간미, 털털함, 자연스러움, 순수함, 무지함, 무지하게 좋은 단어들이지.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인간미가 독으로 작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나이를 먹을 수록 몸소 체감하게 되더라고. 어린 시절에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 무조건 좋은 줄 알았거든? 사람 냄새 풍기는 사람이 진국이라 생각했거든? 하지만 게이라고 놀림받아도 선크림 꼼꼼하게 바르고 헤어스타일링 잘하는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는 반면, 위에 말한 자칭 인간미 넘친다는 남자는 하나같이 여자친구 좀 소개해 달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연애의 세계에서나 어떤 모임, 단체에서든 매력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도 그러는데 여자들은 오죽하겠어? 특히 여자들은 자신의 우월함의 척도를 정할 땐 외모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남자 하나 없는 여대에서도 여자들이 화장하는 이유, 여초 회사일 수록 여자들이 명품 옷을 사 입는 이유, 모두 우월함의 척도에서 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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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가 독이 되는 부분은 외형 뿐만 아니라 성격에서도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할 말 다하는 친구는 학창 시절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 친구의 직설적인 말투와 예의 없는 발언에 이질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어째서 무한도전에 일인자가 유재석이고 이인자가 박명수일까? 이건 단순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절제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사람, 배려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모든 면에서 좋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게 가식적이라 할지라도, 쓰기만 해도 답답해 죽을 것 같은 페르소나라고 할지라도 말이지. 지금 매체에서 나오는 연예인, BJ, 스트리머,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이 인간미와 절제력 사이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인간미를 구현하기 힘들다는 증거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인간미를 보이잖아? 그거 하나에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인간미는 무조건 좋은 거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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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애의 세계는 물론 인간관계를 통틀어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은 인기가 적고 매력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나의 인간미를 왜 몰라주나고, 나의 순수한 마음을 왜 몰라주냐고, 이 돈만 밝히는 못된 여자들아! 라고 펑펑 우는 사람치고 매력 있는 사람 없다는 소리다. 더군다나 그들이 말하는 인간미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솔직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감정인데 그게 과연 인간미가 맞긴 맞는 걸까? 오히려 타인이 생각을 고려하기 싫다는 귀찮음, 배려하기 싫다는 게으름, 혹은 자기 위주로 왜 돌아가지 않냐며 고집부리고 땡깡 아니야? 장례식장에서 츄리닝 입고 육개장이 맛있다고 크게 웃는 사람은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가, 배려심 없는 사람인가. 물론 망나니처럼 다녀도 그대의 인간미 하나에 꽂혀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대의 인간미를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낮은 확률에 기대는 것에 실망할까봐 내가 다 걱정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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