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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 못했던 길 - 스타벅스 바닐라크림 콜드 부르

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by @blog 2024. 9. 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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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뭐 커스텀이 흔하디 흔한 개념이지만 나 어릴때까지만 해도 커스텀은 소위 말해서 ‘고오급’의 느낌이었다. 레스토랑 가서 “고기는 웰던, 가니쉬는 바삭하게, 와인은 고기와 어울리는 20년산 레드와인으로.“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지만 조금 고급스럽다는 생각도 드는 것처럼 말이지. 스타벅스가 처음 한국에 상륙했을 때도 웬지 고급 느낌이 드는 것은 다른 카페에 비교하면 비싼 커피 가격, 좋은 인테리어도 있지만 섬세한 커스텀, 그리고 그 커스텀을 당연하게 해주는 회사 종업원들의 행동지침 때문도 있다. 그래서 고급스러운 스타벅스 카페에 가서 바닐라 크림 콜드 브루의 바닐라 시럽을 한번 더 추가하여 마셨고 달달하니 당이 치솟는 게 딱 맛있구만유.


  다만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감을 사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 게임 캐릭터 커스텀 마이징 같은 경우는 키, 머리색깔, 피부색만 아니라 뭐 광대의 크기, 턱의 크기, 눈동자 크기, 진짜 무슨 신이 실제 인간을 만드는 수준이더만. 자율성이 높아서 좋다는 유저도 있지만 귀찮아서 점심 메뉴 통일하는 아저씨들처럼 랜덤 이미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커스터 마이징을 하는 게임 유저들 꽤 많다. 스타벅스처럼 속재료를 커스터 마이징 할 수 있는 서브웨이 같은 경우에도 매번 커스텀하는게  부담스럽고 귀찮다며 그냥 햄버거 가게에 간다는 사람이 있는 걸. 나 역시 서브웨이의 바빠 죽을려고 하는 종업원에게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다가 어떤 여직원이 힘든 티를 팍 내면 내가 돈 내고 먹는데 내가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다행히 키오스크가 적용되어서 그 문제는 줄어들었다만 그때의 일 때문에 웬지 서브웨이에는 마음이 안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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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커스텀 마이징이 다양할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실패인데, 자칫하다 시럽을 한번 더 추가한다? 샌드위치에 안맞는 소스를 넣는다? 그때는 뭐 먹지도 못하고 돈만 날리면서 그 날 하루 기분 완전히 망치고 만다. 어린시절에도 그런 일이 있지 않았는가. 단 한번 주어지는 기회, 생일날 먹고 싶은 거 단 하나 고르라는 부모의 말에 생각하고 생각하다 고른 음식이 진짜 맛없는 기억 말이지. 만약 부모님의 좀 넉넉하거나 내가 용돈을 많이 받았다면 그깟 한번의 실패를 경험 삼아 넘길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 돈과 시간과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선택지가 많은 선택은 그냥 하나의 고난이자 함정과도 같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선택도 모 아니면 도처럼, 가성비 아니면 명품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 양극화 문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1 분명 명품과 가성비 물품은 거리가 먼데 명품 판매율이 올라가는 동시에 가성비를 따지는 다이소, 저렴한 카페, 가성비 옷가게들은 번창하는 이유, 사실 가성비 제품도 그렇고 명품 제품도 그렇고 이는 모두 실패를 피하려는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가성비 제품같은 경우는 실수해도 경제적 타격이 적고, 명품은 누가봐도 백점만점의 완벽한 성공이자 모두가 인정해주는 정답이거든. 자신만이 선호하는 상품? 심미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소비? 장난해? 그런 것을 일반 서민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즘 카페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양이 많고 값이 저렴한 카페거나 완전 고급화를 추구해야지 자신만의 개성있는 메뉴, 특색있는 구성, 창의력 있는 인테리어는 그저 애매모호할 뿐 뭣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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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자기답게 사는 것, 자신의 삶을 커스텀 마이징, 즉 자유롭게 사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귀찮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실패를 감안해야 할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행동이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독 그런건지, 우리 세대만 그런건지 몰라도 실패와 실수에 대한 부정, 어긋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더라고. 현실, 현실, 그놈의 현실 이야기 하는 거 참 좋아해. 대학 필수 아님? 토익 700 필수 아님? 자격증 필수 아님? 월 300 필수 아님? 왜이리 필수 코스가 많은 건지 잘 모르겠고 말이지. 그리고 막상 입으로만 현실, 현실, 필수, 필수 나불나불 거리지 막상 행동으로 막상 행동으로 옮기거나 이룬 애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눈만 높고 입만 산 겁쟁이라는 것이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난 그 앞전 세대, 그들의 부모에게 큰 영향이 받았으리라 추측한다. 설마 부모 핑계 대시는 건가요? 라고 묻는다면 맞습니다요. 아이에게 부모는 처음 대면한 세상이자 부모가 싫으면 세상을 싫어하거든요. 특히 철저한 마음의 준비없이 얼떨결에 결혼해서 부모가 된 사람들 중에 부모의 자질이 전혀 없는 폭탄들이 많다. 게다가 IMF + 사무실 컴퓨터화에 적응하지 못하는데 사회 안정망까지 축소되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붙잡기 위하여 그들은 이상한 훈육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마치 복지과 공정성은 줄일 대로 줄이면서 국민에게 바라는 건 무지하게 많은 국가처럼 “너의 인생 너가 알아서 살고 난 책임 져주지 않을 테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간섭과 통제를 할 거야. 아, 엄마 친구 딸 보다는 잘나야 하는 거 알지?“ 라는 모습으로 말이지. 즉 유교적 훈육법 + 자유주의 훈육법의 단점이란 단점은 다 짬뽕시킨 훈육법, 간섭과 통제는 하되 그에 대한 실패는 너 혼자 감당하라는 방식으로 말이지.


 
  돈이 많고 적고보다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주지 않는 이런 미성숙한 부모들 때문에, 툭하면 ”너 공부 못하면 거지된다, 너 공부 못하면 굶어죽는다.“라며 극단적인 협박하는 부모들 때문에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맹목적인 안전추구자이자 입만 산 현실주의자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겁만 많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주의자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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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나는 과거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보관소다. 모두의 생각이 각자 다른 것 역시 내가 가지 않는 길목에 그들이 걸어갔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발전되서 ‘최적의 경로’에 대한 조언들이 수두룩하다보니 생각도 비슷, 걸어 온 길도 비슷, 토익은 750점에 한국사 자격증따고 컴활과 정보처리기사 어쩌고 저쩌고 따 놓은 자격증도 비슷하더라고. 마치 네이게이션의 최적의 경로 검색처럼 일말의 실수, 일말의 다른 길도 없으니... 이제 예전처럼 운전하다가 실수로 잘못된 길을 들었지만 오히려 좋은 스팟을 찾는 일은 없겠지? 부모와 다른 사람들의 말 무시하고 내 식대로 살아갔는데 성공하는 감동 스토리는 이제 없겠지? 주변 사람들의 말과 다르게 별로라던 사람이 알고보니 나의 이상형인 그런 기적같은 스토리, 모두 최적의 경로 밖에 있는 그저 허무 맹랑한 낭만적인 이야기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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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junews.com/view/20230418080006653

[극의 시대] 가격인상에도 잘나가는 명품 vs 가성비 패션 뜬다  | 아주경제

쇼핑 시장에서 명품과 가성비 제품을 찾는 소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소비 양극화는 MZ세대가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MZ세대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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