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한국에서는 이 가난에 대한 어떤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가난은 질병이다, 가난은 죄악이다, 너 전생에 큰 죄를 저질렀으니 가난한 거야, 흙수저 부모는 내 부모지만 배울점 없음 ㅉㅉ. 레버리지의 민족이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니깐? 돈 없음에 무시당하고 살았던 기억이 선명해서인지, 서민들에게 무심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서인지 모르지만 여기도 사업, 저기도 사업, 그런데 또 임금체불은 일본과 미국에 비하면 몇배는 높은 것으로 보아 그저 욕심만 그득그득해서 부자되고 싶은 마음 확연히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기독교는 꽤나 흥한 종교라는 점인데, 분명 기독교에서는 부자는 천국 가기 힘들다고 했는데 무슨 일 일까?
예수가 분명 말했잖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이에 기복신앙으로 변해버린 기독교가 팔리지 않을까 안절부절한 목사들은 비싼 정장을 떠억 차려입으며 말한다. 사실 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마음이 탐욕스러우면 안된다! 물질적 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마음의 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라는 뭔 개소리를 하는데 성경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이비종교나 할법할 짓이다. 예수는 분명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즉 현재 기독교를 믿고 있어도 부자면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면 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힘든 걸까? 기독교를 포함하여 자이나교 역시 부유함이 천국과 거리가 먼 이유는 종교의 교리와 부자의 교리가 매우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 중 첫 번째, 부자가 된다는 것은 불로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누군가 제대로 된 노동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이자, 이는 전형적인 착취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관계가 계속해서 누적이 되고 또 착취되는 사람 수가 많으면 많으면 많을수록 부가 쌓인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같은 인간에게 사랑보다는 갑질, 명령, 지배를 행하기에 이는 어떤 천국에 있는 사람과 어울리지가 않다. 그리고 그를 두고 신성하다, 자비롭다, 사랑스럽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번째, 탐욕이 있어야 부가 유지된다. 그러니깐 마음에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랑은 도무지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왜냐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돈만 생겼다 싶으면 바로 배풀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줄창 이야기하고 있잖아.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주어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줘라. 이러한 방식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가난해지는 방법에 더 가깝다. 이미 기독교에서는 그러한 방식의 사랑을 추구하는데 어떻게 천국에 부자가 들어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번째, 바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부를 축척하기 위해서는 행동 반경은 물론 물론 마음 반경도 제한되어 있는데, 당장의 예를 들어도 부를 얻기 위해서는 제품의 원가를 진실되게 알려주어서는 안되고 직원을 진정한 이웃처럼 대해서도 안된다. 힘들어보이는 직원이 보여도 최대한 외면해야하고 오직 회사의 이익에 집중해야한다. 그러한 곳에서 어떻게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종교와 일맥상통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매우매우 힘들다. 십일조 백날해도 못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뭐 외제차 타고 다니는 목사는 좋아하겠지만.
그에 있어서 차라리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국 기독교 목사들보다 100배는 더 신성하고, 100배는 더 종교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스피노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상속도 포기하고 대학 교수의 자리 역시 과감하게 포기했으니깐. 유대교 율법학자에 맞서 자유롭게 사랑을 전파한 예수와 종교학자에 맞서 자신의 철학을 전파한 스피노자, 또한 그는 신을 섬긴 충만한 삶을 살았다. 물론 사람의 형상을 한 신이 아닌, 우주와 세계의 흐름을 하나의 신으로 표한 범신론이지만 말이지. 거기다 그는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청빈한 삶을 살았는데, 왜냐면 원하든 원치않든 자유에 있어서는 늘 가난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이상하게 자유롭고 자유로운 사람은 이상하게 가난하다. 디오게네스 역시 그 누구보다 가난했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산 것처럼. 즉 가난과 자유는 하나다.
물론 철학에서는 종교처럼 대놓고 가난하게 살라고 하지는 않지만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 많은 철학들이 자유를 가장 사랑하는 주제로 삼고 있다. 종교는 자유로울 수 있는 가난을 추구하고 철학은 가난해질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한다라... 결국은 추구하는 것은 같네? 시작점은 달라도 도착점은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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