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사나이가 전라도 사투리를?
배병우는 울산 토박이다. 고등학교까지 울산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말투를 들어보면 경상도 사투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발음은 전라도 사투리고, 속도는 충청도 수준에 가깝다. 전반적으로 느릿느릿하고 구수하다.
“프로게이머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지 2년이 조금 넘었네요. 그 전까지는 경상도 사투리를 진하게 썼는데 여러 사람들과 말투가 섞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상해졌어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서울말을 쓴다고 자랑했는데 서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직 멀었나봐요? 하하하.”
이 말을 하는 동안 3분 가까이 흘렀다. 성미 급한 사람은 배병우와 대화하다 보면 ‘복장이 터질’수도 있으니 조심하시라.
상금 사냥꾼에서 정식 게이머가 되다
배병우는 프로게이머가 될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게임에 관심을 갖고 시작한지는 오래됐지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단지 좋아서, 재미있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마추어 게이머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 대회에는 몇 번 출전한 적이 있어요. 용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재미 삼아 나갔죠. 학교에서는 톱 5 안에 드는 스타 플레이어였거든요. 여기 저기 대회를 나가다 보니까 아는 선수들을 여럿 만났는데 프로게이머를 지망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커리지 매치를 통과했죠.”
커리지 매치에서 우승하여 준프로게이머 자격을 땄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까지 들어간 뒤인 2006년 3월 드래프트장에 나갔을 때도 되면 되고 말면 말지라는 마음이었다. 프로게임단에 아는 선수나 코칭 스태프도 없고 마땅히 들어가고 싶은 팀도 없었지만 CJ(당시 GO)에서 배병우를 지명했다.
“아무 상관 없는 팀에서도 저를 뽑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저는 드래프트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 알았거든요. 우선 지명 선수들도 많고 이 선수들을 뽑은 뒤에는 대부분 지명을 포기하니까요. 그런데 명문 팀인 GO에서 저를 선택해서 기뻤죠.”
배병우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활동을 시작했다. 상금 사냥꾼으로 재미삼아 게임하던 아마추어의 때를 벗었고, 프로로서의 마인드를 배워 나갔다. 그러나 신예 배병우에게 GO라는 팀의 벽은 높았다.
“연습생이나 다름 없는 환경이었어요. 동기생인 장 육은 GO에서 우선 지명 선수로 뽑아 놓고 트레이닝을 받은 상태였고, 이주영, 마재윤 선배처럼 이미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들도 여럿 있어서 제게 차례가 오지 않았죠. GO는 예선을 통과해야만 1군으로 인정을 해주는데 턱도 없는 실력이었어요.”
배병우는 숙소에 머물지 못하고 온라인 연습생으로 강등됐다. 울산에서 배틀넷을 통해 다른 선수들의 연습을 도와줘야 했다. 프로리그 출전의 꿈이 점점 요원해질 즈음 김동우 코치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KTF의 저그가 부족하니 이적할 생각이 있느냐는 의사를 묻는 내용이었다.
“저를 프로게이머로 만들어준 팀을 떠나기는 싫었지만 이적 후에 잘할 자신은 갖고 있었어요. KTF에도 훌륭한 저그 플레이어들이 많지만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강정우 선수와 함께 유니폼을 갈아입었죠.”
<블루스톰>을 만나다
2006년말 KTF로 이적한 뒤에도 배병우는 기회를 거이 갖지 못했다.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쓸 수 없는 상황은 KTF도 마찬가지였던 것. 겨우내움츠리고 있던 배병우는 스스로 설 자리를 찾아 나섰다. 2007년 3월 치러진 예선을 자력으로 통과하고 4월에 열린 듀얼 토너먼트 무대에 섰다. 그러나 초반부터 운이 없었다. 2006년 내내 칼을 갈아 온 삼성전자 송병구가 1차 상대였다.
“방송 무대 첫 경기가 송병구 선수였어요. 긴장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는데 제가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허둥대다가 GG도 못 치고 엘리미네이트됐던 기억이 나네요.”
스스로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배병우는 3개월 동안 갈고 닦아 프로리그 출전권을 얻어냈다. 이동 통신사 간의 라이벌 전이 펄쳐진 2007년 7월 10일 배병우는 SK텔레콤 박성준을 상대로 프로리그 무대에 서게 된다. 두 팀 모두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된 상태에서 시험삼아 내보낸 경기였지만 배병우에게는 프로리그 공식 데뷔전이였다.
“박성준 선수와의 경기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저글링 싸움을 크게 벌렸던 것만 생각나네요. 상대가 GG를 치는 순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배병우의 가능성을 확인한 KTF 김 철 감독은 후기리그에 전담 맵을 배정한다. <블루스톰>을 배병우에게 맡기고 한 맵만 파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감독님의 의사를 전달받고 진짜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맵이 나오자 마자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팀에서도 인정받았어요. <블루스톰>만 하루에 40~50경기 정도 한 것 같아요. 꿈을 꾸면 머릿 속에서 온통 푸른색밖에 없을 정도였죠.”
<블루스톰>을 만난 배병우는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녔다. <블루스톰>이 쓰이는 날이면 여지없이 배병우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후기리그에 8번 나가 김준영(당시 한빛, 현 CJ)을 만나 한번 패했을 뿐 일곱 번을 승리했다. 전상욱, 이제동, 염보성 등 프로리그에서 한 가닥했던 선수들을 연파했다. 이 덕분에 팀 내 개인전 다승 2위까지 올랐다. <블루스톰>은 ‘병우스톰’이라 불리기도 했다.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3대 0으로 끝난 경기들이 많아 나가지 못했어요. 가장 아쉬운 경기는 STX와의 경기였는데 엔트리 예고제 당시에는 김구현, 진영수 선수와 4세트에 배치 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두 경기 모두 3대0으로 끝나면서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김구현 선수는 저그전에서 장기가 있다고 소문 나 있었고 진영수 선수는 테란 가운데 <블루스톰> 성적이 가장 좋았거든요. 그게 좀 아쉽네요,”
<블루스톰>은 2008시즌에도 쓰기로 확정됐기 때문에 배병우의 활약을 계속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후기리그에 이 맵 덕분에 인지도를 쌓긴 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맵에서 활약해보고 싶어요.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모든 맵은 배병우화 시키는 것에 도전하겠습니다.”
이제동 부럽고 본받고 싶다
울산 지역 출신인 배병우는 이제동과 인연이 깊다. 2살 차이가 나지만 경남 지역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자주 만나면서 면식을 갖고 있다.
“당시 아마추어 대회가 붐처럼 우후죽순 생겨났어요.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모든 대회를 출전할 수는 없었지만 주말에 열리는 대회에 나가면 이제동 선수의 얼굴을 자주 봤죠. 한 번은 맞대결을 한 적도 있는데 제가 졌어요. 그때 실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수퍼 스타가 되었죠.”
비슷한 시기에 드래프트 되면서 팀에 입단했지만 이제동과 배병우는 행보가 갈렸다. 이제동이 르까프 조정웅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치고 나간 반면 배병우는 트레이드도 되고 KTF 안에서 자리잡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동 선수가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어요. 어린 나이에 인지도 높은 대회에서 최고봉에서 선다는 것이 얼마나 멋집니까. 저도 저런 자리에 서야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KTF는 2008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을 대거 물갈이 했다. 우승자 출신 저그인 조용호가 은퇴했고 김세현은 군에 입대했다. 배병우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선배들이 모두 나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배병우도 이번 시즌이 엄청난 기회임을 깨닫고 죽어라 연습하고 있다.
“2008시즌에는 정명호와 저의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명호가 연습 때 엄청난 기량을 보이고 있어 제 입지가 위축되고 있어요. 저도 명호에 뒤지지 않으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뛰어야겠죠.”
배병우는 정명호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상황 판단이 정확하고 빠르며, 손이 매우 빠르고 마우스 클릭이 정확하다고 추켜 세웠다.
“저는 단지 생산 속도만 빠르거든요. S와 Z,S와 H,S와 M만 잘 눌러요. 마우스 움직임이나 미니맵 보는 능력은 아직도 명호에게 뒤집니다. 하루빨리 따라 잡아야 KTF의 저그 에이스가 될 수 있겠죠?”
홍진호를 닮았다?
배병우의 별명은 ‘리틀 홍진호’ . 2007년 초 <듀얼 토너먼트>에 출전했을 때 정소림 캐스터가 “홍진호 선수 닮지 않았나요”라고 한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리틀 홍진호’가 됐다.
“그 때 경기 스타일이 진호영을 정말 닮았어요. 상대가 어떻게 방어진을 형성하든 뚫고 들어가는 막무가내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외모상으로는 전혀 닮지 않았어요. 제가 키도 작고 얼굴도 아담해서 많이 달라요.”
배병우는 홍진호와 닮았다는 말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기분 좋은 듯 생긋생긋 웃는다. 2007년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전까지 저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배와 닮았다는 데 싫어할 후배는 없다. 게다가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선수 아닌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했다.
“지난 15일에 영호가 결승전에서 우승하고 나서 광주 시내의 한 술집에서 뒤풀이를 했어요. 화장실에 간다고 동료들과 잠시 거리로 나갔는데 팬들이 그러는 거에요. 홍진호 아니냐고. 우리끼리 ”내가 정말 진호형을 닮긴 닮았나보다“라면서 키득키득 웃었던 기억이 나요. 저야 고맙죠. 아직까지 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신다는 게 조금 슬프긴 하지만서도.”
홍진호 능가하는 선수 되고파
배병우는 홍진호를 존경한다. 단지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커리어까지 닮고 싶다고 했다. 준우승에서 ‘준’자만 빼서.
“저그의 대선배이고 같은 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진호형이 막내들까지 신경쓰진 않지만 얼굴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인지 제게는 꽤 조언도 많이 해주시거든요. 진호형의 모든 것을 닮고 싶습니다. 전성기때의 홍진호 선수처럼 폭풍을 몰고 다니는 스톰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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