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이 지구가 사실 지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신이란 존재는 지루하고 착한데 재미없는 사람을 툭하면 죽이고
나쁘지만 다채롭고 재미있는 사람을 오래 살리는, 유머를 사랑하는 악마고 말이지.
어허. 날 쇼펜하우어같은 비관주의자로 생각하지마라.
난 사랑이 모든 문제의 해결법이고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는
낭만적이고 로맨티스트적인 사랑만능주의자거든.
하지만 지금 이 지구가 천국이라는 증거보다 지옥이라는 증거가 너무 많기에
지옥이라고 판단한 것 뿐이다. 합리적인거지.
지구가 지옥인 이유.
첫번째, 긴 고통에 비하여 짧은 행복을 느끼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제우스에게 영원히 형벌을 받는 시지포스처럼 말이지.
특히 인간은 상상하는 것은 쉽지만 그 상상을 구현화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건 저주에 더 가깝다.
두번째, 고통의 감정이입은 누구보다 잘하는데 행복의 감정이입 능력은 떨어진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을때 추상적이고 막연해하던 사람들이 고통을 들을 땐 마치 자기 일마냥 몸소리 친다.
세번째,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지옥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과 유사하다.
특히 세번째 같은 경우는 딱 지옥에 사는 죄인들만이 행할 수 있는 행복법인데,
아주 잠깐의 행복, 그러니깐 시지포스가 아주 잠깐 바위를 정상에 올리는 것처럼
순간의 식욕, 성욕, 수면욕이나 배설욕을 해결하는데서 오는 쾌감 말고
지옥에 사는 죄인들이 그나마 오래도록 행복할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줄 아는가?
하나는 샤덴 프로이데라고 내가 있는 지옥이 다른 지옥보다 그나마 괜찮다는 마음,
나머지 하나는 너는 지옥에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즉 죄를 지어서 지옥에 온 죄인에게 너는 감히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항상 충만하고 항상 행복한 천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고 오직 지옥에서만 통하는데
마침 지구에서도 통하기에 지구는 지옥이라는 게 다시 한번 더 성립하게 된다.
그 중 첫번째인 샤덴프로이데는 모든 국가와 인종과 성별을 막론하고 통하는 전통있는 행복법이다.
소위 꼰대 어른들이 많이 하시지?
넌 북한과 아프리카에 비하면 행복한 아이라고, 나때는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 말이다.
나는 돌굴리는 형벌을 받는데 누구는 불타는 거대한 쇠구슬 굴리는 형벌을 받는 걸 봐봐.
그런데 이게 의외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크다.
남의 불행에 은근한 우월감과 행복,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
나는 저정도 막장까지 안갔으니 다행이라는 만족감.
심지어 남의 불행을 촉진시켜서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 은근히 많다.
두번째는 너는 지옥에 있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해주는 것,
즉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봐봐. 구구절절하잖아.
너는 완벽해, 너는 아름다워, 너는 위대해, 너는 천재야, 너는 고귀해.
물론 사랑 받는 사람은 이게 뻥이라는 것도 알지만
죄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것, 즉 행복한 것은 명백한 사실.
이처럼 지구는 지옥이고
사람인 이상 샤덴프로이데 혹은 사랑으로 고통을 감내해야하는데
기왕이면 난 남의 불행에 행복해하고, 또 남이 불행을 은근히 바라는 사람보다
너는 지옥에 어울리지 않는 천사라고 칭송해주고 또 칭송받는 사랑법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라고 하고 싶다.
물론 그 사랑법 역시 이별을 하면 없던 말이 되겠지.
거짓말이자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는 가벼운 말이 되겠지.
하지만 적어도 사랑할 동안은 행복하잖아?
행복한데 동시에 찜찜하기도 한 샤덴프로이데와 달리
진짜 천국에 온 것처럼, 천국의 빛을 맞은 것처럼 행복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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