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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마이어 비욘드어스 팬픽 / 내부의 적 - 6 (완)

에세이/단편소설, 팬픽, 팬아트

by @blog 2025. 3. 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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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구 밑바닥 끝으로 떨어지든, 심해와 연결된 어떤 비이상적인 공간으로 떨어져 영영 사라져버리든, 재문이는 미련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을 담고서 그렇게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해매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다이빙하던 그때, 재문이는 잠수복 핼멧에 반사된 빛을 발견하게 되었고 곧바로 자세를 바로 잡고서 빛이 비추던 위를 바라보았다. 분명 무언가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심해생물이 아니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무언가, 자신과 같은 잠수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였다. 종종 후보생들은 체력 훈련에 대한 후유증으로 iso 명상시 환각과 환청 현상을 겪는다고하지만 재문이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건 분명 실제하는 무언가였고 만약 그것이 다시 한 번 자기 앞에 나타나준다면 제터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서라도 그 빛을 쫒아 갈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러기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던 형상이 있던 곳을 향해서 재문이는 손을 뻗었고 다시 한 번 자기 앞에 나타나주기를 부탁했다.
 
 
 

 

  재문이도 이미 26번은 서류상 실종처리 된 사람이었고 그녀를 규정하는 그 단어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행동예측과 사람이 재문이에게 따로 찾아 온 것이었는데, 행동예측과 사람들은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아서 사고사 당한 후보생과 조금이라도 접촉이 있는 후보생을 귀신같이 찾아내어서는 상담을 실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도자 후보생의 심리적 케어라고 하지만 사실 지인을 잃었다는 슬픔이 학술원과 청수를 향한 분노로 돌아갈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발빠른 대처였으니, 그러기에 재문이는 학술원 한켠에 마련된 작고, 좁고, 딱봐도 취조실 같아 보이지만 꼴에 편안한 공간으로 보여지기 위하여 쿠션과 인형과 담요로 꾸며진 상담실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재문이의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열어보려고 억지 미소를 싱글벙글 짓는 행동예측과 사람이 그 중 최악이자 최고로 불편했다.
 
 



이제부터 편하게 말할게. 나는 재문이에게 어떠한 해를 끼치려고 이곳에 부른 게 아니야. 청수를 이끌 소중한 지도자 후보생인 너희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싶어서 그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 해볼까? 요즘 뭐 힘든 일 없어? 잠은 잘자고?
힘든 일이요? 딱히 없는데.
친구 일은 저... 괜찮고?
친구요?
그야 당연히...
아... 26번 누나요?
실례가 안된다면 얼마나 알았고 또 얼마나 친했는지 알 수 있을까?
처음에는 친했는데 그 후에는 그냥 인사정도만 하는 사이가 됐어요.
그냥 그런... 사이라고?
네. 이름만 아는 동기.
 


 
  모든 사람을 알 때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세글자 이름이잖아요. 세글자에서 시작해서 세글자로 평생 기억되며 사라지는게 바로 인간의 삶이잖아요. 그 이름을 얼마나 기억할지는 당신네들한테 말할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그것은 오직 내가 결정하고 내 판단 하에 둘테니깐. 하지만 재문이는 그러한 본심을 숨기고 그냥 껄끄럽고 서먹서먹한 관계였다며 애둘러 표현했으니, 수많은 후보생을 상대했기에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그녀였지만 이미 재문이는 그녀보다 한 수 위, 아니 몇 수 더 앞서 있었기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내뱉으며 그렇게 거짓된 영혼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까지, 악마가 늘 탐하는 인간의 영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는 경지까지 재문이는 도달하게 되었다.
 


그래. 그러면 우리 간단한 심리테스트 해볼까?
 

 

  상담사는 무언가 미심쩍었는지 심리테스트 용지를 건내주었고 재문이는 오히려 재미있는 게임을 발견한 것처럼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반겼다. 방금 만든 가짜 영혼에 심리테스트를 대입하여 심리전을 걸면 어떨까? 걱정할 거 없다. 이제는 절대 혼자가 아니니깐. 자신의 마음 속에는 이미 최상의 비밀 요원이 재문이를 지켜봐주고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하나 없었다. 손에 쥔 펜을 한번 가볍게 돌리면서, 최근 수면 부족 및 식욕 저하를 느끼십니까? 매우 그렇다 대신에 보통이다에 체크. 취침하기 직전에 경미한 우울감 및 회의감을 가집니까? 이번에도 매우 그렇다 대신에 그렇지 않다에 체크. 재문이는 그것을 마치 수학문제 풀듯이 추측하고 추론하면서 이 세상에 없는 하나의 사람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이딴 사람 수십명 쯤 만드는 건 이제 시간문제도 아니였다. 사람의 마음을 관통해서 보는 유령조차 속일 자신이 있었다.



*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고 재차 강조하는 대답과 다르게, 그냥 이름만 아는 동기였다는 말과는 다르게, 실제 재문이는 iso 명상을 마치자마자 바로 잠수복을 벗어 던지고 03번 게이트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렸다. 과거 어렸던 자신을 비롯해서 102번을 불안한 눈으로 기다렸던 그녀처럼 계속해서 다리를 떨고 녹초가 된 채로 학술원으로 돌아오는 후보생들의 모습을 보고 또 보며, 결국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후보생까지 보면서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교관들 역시 26번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자기들끼리 뭐라 분주하게 말하기 시작했고 특수 과업 운영 이사회의 직원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여직원 한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 앞에 곧바르게 섰다.
 
 

무슨 일이죠?
한 후보생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통신도 안받고요, 위치추적도 되지 않습니다.
통신하고 위치추적이 다 안된다고요? 그게 가능 하긴 한건가요?
아마 명상장소를 한참 벗어난 것 같습니다. 고의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습니다.
고의로 벗어났다고요?

 
 
  여기까지는 문제없었다. 그러나 재문이의 심기를 본격적으로 건드렸던 것은 바로 그 후에 나오는 교관과 여직원의 대화. 교관들은 척보기에도 안색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행동했던 26번의 판단을 탓했고 여직원은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한 26번이 지도자로서의 자격에 대한 의문, 그리고 의수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연구원들에게 불만을 표했던 일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분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훈련을 진행한 후보생, 무모한 후보생, 운좋게 학술원에 들어오게 된 후보생, 지도자로서의 재능이 없었기에 당연히 학술원에 적응할 가능성도 낮은 후보생. 그러고는 결국 그녀를 실종처리하자는 말로 합의 되어가자,
 

 
그래도 시체 정도는 찾아야죠!
 
 

  잠수복에서 흘러내린 바닷물들이 흥건한 게이트 입구는 높은 습기 때문에 찝찝함도 찝찝함이었지만 작은 목소리를 크게 들릴 정도로 소음을 증폭시켜주었고 재문이의 분노 담긴 목소리는 교관과 특수 과업 운영 이사회 직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교관들 사이에서는 물론 상층부에서도 어리지만 현자 같은 후보생이라고 평가받은 재문이가 그렇게 나오자 의아함 반, 그리고 놀람 반을 가진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 그러나 이내 곧 여직원은 마음을 가다듬고 교관들에게 상황에 대한 정리를 명했다.
 


교관님들. 그 후보생에게 사흘정도 계속 통신 보내보고 위치추적도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심해 탐색부한테도 연락해둘게요. 만약 업무 중에 잠수복을 입은 무언가를 찾게 되면 바로 연락주라고 할테니.


 
  그렇게 교관들을 보낸 그녀는 지도자로서의 가망성이 없어 보이던 26번과 같이 상층부 사람에게 함부로 소리친 재문이의 앞에 곧바르게 섰다. 그리고 그녀는 내일 행동예측과 상담사가 찾아올테니 꼭 상담 받으라는 명령을 남기고 돌아가려던 찰나, 말해주시면 안될까요? 왜 지금 바로 찾으러 나가지 않는 건지. 왜 되지도 않은 신호만 계속 보내며 이자리 그대로 있는 건지. 그 말에 여직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말도 안되는 땡깡을 부리는 그가 정말 37번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쪽 정말 37번 후보생 맞는거죠? 뭐 유니폼을 바꿔입었다던가 그런거 절대 아닌 한재문 후보생 맞으시죠?
왜 제가 한재문이 아닐거라 생각하시는거죠.
제가 아는 그 후보생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서 수백명을 구한 영웅같은 사람이거든요.
적어도 시체는 찾아야 한다는 말... 장례라도 치뤄주어야 한다는 말이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들리시나요? 
 
 

  체력 테스트와 iso 명상에 대한 피로로 인하여 재문이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검게 그을려 있었고 무엇보다 목소리 하나하나에 힘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헛소리나 계속해서 하는 그의 모습에, 시체를 찾아달라고 때쓰며 조르는 모습에 여직원은 답답했는지 한층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그러면 이 넓은 심해를 다 뒤져보라는 말입니까? 한재문 후보생도 잠수정까지 타고 나가봤기에 이 곳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 곳에 위치해 있는지를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알죠.
그 후보생을 찾는데 쓸 에너지와 비용으로 하르방 쓰나미 때문에 아직 복구 안된 곳에 힘쓰는 게 모든 면에서 이득입니다. 그 후보생이 쓰나미 때문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수백명의 아이들과 맞먹습니까?
...
그 후보생이 부상을 입고 사경을 해매고 있는 시민 수천명과 맞먹습니까?
...
난장판이 되어버린 항구와 도시보다 소중합니까? 지도자 후보생이면서 왜 시민들의 고통에는 그렇게 무감각합니까!
저도 압니다! 아는데!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불만이 담긴 볼멘소리를 했다고 하지만, 청수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된 인본주의를 주장했다고 하지만, 결국 재문이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해서 그녀에게 패배를 선언했고 그녀는 후배에게 도움이랍시고 어떠한 조언을 던져주었다.
  



저 역시 학술원 출신이라서 한재문 후보생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금하고 비슷한 상황 다 겪어봤고 지켜도 봤어요.
...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 보세요. 위험에 빠진 후보생들은 하나같이 자기 앞가림 제대로 못하는 후보생들이자, 다른 훈련에서도 역시 뒤쳐질 운명이라는 것을. 지도자로서 전혀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
걸러진겁니다. 추려진거고요.
...
그러니 내일 꼭 상담 받으시고 이만 들어가 주무세요.
 

 
  형식적인 위로, 나도 겪어봤으니 너도 참고 버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재문이는 배터리를 다한 로봇처럼 벤치 위로 힘없이 쓰러져버렸고 후배를 안쓰럽게 보던 그녀의 얼굴과 결국에는 되돌아서는 모습까지 지켜보는 것을 끝으로 깊은 잠에 들었다. 자신을 늘 승리로 이끌어주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처음으로 대척점에 서있자 그것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죄가 되고 패배가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문이는 당장 여직원에게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에 제발 손을 들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소용없겠지. 자신의 속사정을 알아주길 바랬지만 아무 소용 없겠지. 그렇기에 재문이는 마음속으로만 그녀를 회상하고 조용히 장례를 치뤄주는 것을 끝으로 오늘 일어났던 일, 그리고 미련, 분노, 복수심, 그 모든 것을 끝마치기로 했다.



  첫 iso 명상을 끝내던 그때, 심해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해구 밑바닥에서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몇시간을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조차 못하는 명상을 마치고 난 후, 영혼이 찢겨지고 자아가 조각나는 무서운 체험에 재문이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심해 속 유일하게 빛나는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재문이는 처음에 왜 학술원을 포함해 심해 기지를 미륵보살돔이라고 명칭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첫 iso 명상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 건물은 유일한 구원자 같아보였기에, 어둡고 차갑고 인간이 살 수 없는 수압으로 이루어진 심해 속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었기에 재문이는 미륵불을 맞이한 중생처럼 바닷물을 해치고 그곳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렇게 재문이는 후보생들 중 가장 꼴찌로, 그것도 가장 늦은 시간에 학술원에 돌아왔고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을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재문이를 아끼던 삼인방은 게이트 입구 벤치에 앉아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쭉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재문이를 발견하자마자 무슨 수도꼭지에서 물이 터진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거대한 실수의 여파로 인하여 바닷물에 유독 물질이 있을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잠수복을 입은 재문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교관이 한심하게 볼 정도로 그들의 모습은 청승맞아 보였지만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눈물에,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까지 우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기보다 단순했고 알기 쉬운 것이었으며 청수에서 사라져버린 오래된 철학 속에 있었다.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적을 누구로 두느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한 행동이다.




  철학서나 심리학책에서나 나올법할 성숙한 소리를 한 사람은 다름아닌 늘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마음 속 6살 아이였고 재문이는 처음으로 그의 말에 인정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 코드가 내려지는 순간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기계가 아닌 이미 사라져버린 과거의 이념을 사랑하던 노신사처럼. 군체의 형태를 이루고 다니면서 오직 생존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곤충이 아닌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26번처럼. 학술원에서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낭만적이고 오래된 철학을 좋아하던 아이, 언제나 상처만 주고 울리기만 했던 그 아이를 재문이는 사과의 뜻으로 26번이 자신을 안아주었던 것처럼 따뜻하게 포옹하면서 마음의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 순간 상처투성이에 언제나 주눅 들었던 아이는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고, 어느덧 재문이보다 훨씬 더 성장한 어른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과 함께 말끔한 정장을 입으며 한 나라의 수장만이 가질 수 있는 카리스마와 기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 미묘한 미소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베일에 쌓인 수수께끼의 남자. 자신이 그렇게 찾아다녔던 이상향. 그의 이름은 내부의 적,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끌릴 수 밖에 없는 매혹적인 칭호.
 

 




*

 


숨어야 겠는걸. 들킬지도 모르니깐.

 

 

   03번 게이트 앞에서의 추억 회상을 지나, 무서울 정도로 사방이 새하얗던 상담실의 기억을 지나, 모든 기억의 끝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땐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조차 구분 안되는 어두운 심해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해구 밑바닥으로 점점 도달해갈수록 탈진 상태에 빠진터라 환각을 넘어 결국에는 환청까지 듣게 되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재문이는 미지의 빛이 잠깐 머물다가 사라졌던 해구 윗쪽을 바라보며 절대 마음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실성한 것 같은 섬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부디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차갑고 어두운 심해를 가로질러 우주를 향한 첫걸음인 새파란 하늘을 지나, 심해를 닮아 아주 많이 외로운 우주 너머 청수의 탄생 계기인 기원발견 스캔들을 일으킨 그 무언가보다 더 멀리 있을 그곳을 향해서. 깊고 은밀한 해구 속, 어둠은 산통하나 겪지 않았음에도 하나의 생명을 낳았으니,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인 햇빛과 따뜻함이 없는 죽음의 공간에서 그렇게 초인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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