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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글만 쓰는 사람들

에세이/나의 작문 일대기

by @blog 2025. 5. 2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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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웹툰 작가가 몇년만에 연재를 시작했다며 웹툰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웹툰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지만 5년이 넘는 공백기간 후에 연재한 웹툰이라서 왠지 지망생의 복수심이 담겨져 있을 거 같더라고. 지망생 특유의 한 맺힌 마음, 잘 알지. 기본적으로 지망생들은 자기를 못 알아주는 세상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으니깐. 그래서 싱글벙글하니 그 웹툰을 봤는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아니 스토리는 문제가 없어. 캐릭터의 인체 비율이라던가 조잡한 AI를 쓴 티도 안나고. 다만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올드함, 특히 캐릭터 복장이 요즘 시대 사람들이 절대 입지 않는 복장을 입혔더라고. 일부러 x세대 패션을 입는 힙스터 느낌이 아니었다. 진짜 촌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올드함이었다. 분명 작가말로는 공백기 동안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고 했는데 요즘 인기 웹툰 같은 거 보지 않고 그림만 그린건가? 결국 올드한 그림체 때문에 보는 것을 포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는지 지망생의 분노 서린 차기작은 별 반응 없었다 카더라.
 


  위에 말한 지망생 말고도 그때 그 시절 손맛을 잃기 싫은 올드한 지망생의 사례가 꽤 있는데 인터넷에 “150만원짜리 커미션”이라고 치면 나오는 그림 작가 역시 그와 비슷한 같은 케이스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림 퀄리티는 낮지만 스토리 하나는 끝내주게 뽑아내는 통통배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이 작가가 네이버 도전 만화가에 정식 연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월 150만원을 주고 그림 작가를 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체가 올드해도 너무 올드한 것. 무슨 반공만화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북한 만화 같기도 하고. 결국 스토리 작가는 다른 웹툰 작가와 이야기 나누어 보아도 그림체가 영 아니라고, 결국 150만원을 주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는데 그림 작가는 지적을 부인하는 것도 모자라서 스토리 작가에게 욕했다는 감동 실화가 있다 카더라.
 

 
  현재도 ai 그림이 많이 쓰여져야 하는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저 사람이 예시로 사용되는데, 물론 스토리 작가 역시 포트폴리오를 보고 직접 그림 그리는 것을 시켜보지 못한 안일함이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림 작가에게 몰매를 던진 이유는 그림 수준이 어디 써먹을 수도 없이 너무 올드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왜 모두에게 형편없다 손가락질 받는 올드한 그림체를 가지게 되었을까? 물론 내가 그 그림작가가 아니다 보니 그의 마음을 100% 알 수 없지만 이미 그림체가 고착화 되어버리고, 심지어 꾸준히 그린다고 해도 항상 같은 시대의 그림만 그리고 있는 게 않을가? 그러다보니 고집은 강해지고, 자신의 그림체가 좋다는 편견을 가지며, 그래서 스토리 작가에게 부인당하니 욕한 것이고 말이다.
 

 


 
  어디 그림판 뿐일까. 글판에서도 20년전에나 먹히는 문체와 서사를 가진 작가들이 꽤 있다. 물론 문학의 주소비층이 웹툰에 비하여 나이대가 있긴해도 그것을 넘어서 너무 올드한 문체, 올드한 스토리, 예측가능한 사유를 쓰는 사람 말이지. 이게 모두 본인의 개성보다는 그 시대의 유행에 기대고 자신의 개성을 고착화 시켜서 그런 것이다. 그 시대에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니 그것이 절대적으로 옮다고 생각해버린 탓도 있고. 과거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기대를 받았던 지망생들이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보이지 않는 이유,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못난 사람일 수록 자기 한창 잘 나갈 때 이야기만 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르는 미래를 기대한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똑같지만 누구는 과거를 보고 누구는 미래를 본다.



 
  글도 유행을 따른다고요? 네. 아주아주 잘 따른답니다. 웹툰에 비해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문학이라고 해도 유행이 있고 트랜드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과거, 인터넷에 한창 엽기 트랜드가 있었을 때 문학판에서는 '뉴웨이브'라고 해서 엽기적이고 독특한 소설과 시가 주목을 받았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부터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보이는 엽기 작가 박민규가 등장했던 시기였고 말이지. 한창 된장녀 열풍이 불었을 때는 인간의 허영심에 대한 지적, 명품을 따라가려는 신조에 대한 비판적 소설, 동시에 백수의 무기력함을 담아낸 청춘 스토리가 주였다. 그 후 페미니즘 열풍이 불더니 당당한 여자,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여성서사, 레즈비어니즘 스토리가 주를 차지했고, 그 후 거기서 좀 더 확장하여 레즈 + SF, 퀴어니즘이 되면서 눈에 보이는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시대에 맞는 대세인 스토리와 문체가 있고 그 흐름에 어줍잖게 벗어나면 올드하다는 평을 듣기 쉽다.
 
 
 


  이처럼 작가는 글도 잘 써야하지만 히키코모리처럼 틀여 박혀 사는 것이 아닌 사회 트렌드도 잘 읽어야 한다. 왜냐면 올드한 글보다 세련된 글이 사람에게 어떤 자부심과 자존심과 시대를 따라가는 안정감도 주기 때문이다. 당장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깐 청춘이다>가 출간되었던 2011년 때만 보더라도 당시 유행은 대학 서열, 자동차 서열, 핸드폰 서열, 노력하여 높은 등급으로 올라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문화 트랜드가 있었고, 그래서 그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저자 역시 수많은 강의를 하게 된 것. 그런데 트렌드가 변하면서 베스트셀러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 책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지만 유행이 변했기 때문에 책의 평가가 180도 바뀐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효도가 당연한 것이었지만 요즘은 또 불효가 그렇게 트랜드라며? 번 돈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는 효성 깊은 김씨 이야기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고 수요도 없는 이야기다.




  다만 유행을 타지 않고 자기 자체가 트랜드가 된 작가가 있으니, 보통 작가라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운좋게 글이 조명되고 인기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스티븐 킹, 김진명 작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자신이 하나의 트랜드가 됐거든. 물론 자기 복제라는 지적도 많이 받기도 하지만 보통 그 작가를 이야기하면, 아! 그 사람 차기작 예측 가능한데?, 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명백한 개성을 주고 명확해 져버렸다. 즉 비가 와도 우산을 팔고, 비가 안와도 우산을 파는 진짜 고수같은 사람인 거지. 사실 나도 시대를 타는 작가보다는 나 자체가 시대가 되는 작가가 되고 싶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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