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문제는 4U야.

에세이/나의 작문 일대기

by @blog 2025. 4. 19. 22:13

본문

728x90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인쇄할 것이 있어서 말이지. 인쇄 다하고 시간이 남아서 한국 소설 수상작을 들쳐다 봤거든? 큰 기대를 안했지만 조금은 재미있는 소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봤거든? 자극적인 주제로 내 뇌를 도파민으로 채워줄거라 기대했지만... 너무 크게 기대 해버린 거 있지. 처음 순수 문학을 접했을 땐 난 내가 집중력 장애 ADHD인 줄 알았는데, 그러니깐 자극적인 것만 좋아하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 이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저 한국 소설에 트라우마있어요.

 
  심지어 작가의 역량이 의심되는 충격적인 글을 읽은 적 있는데 대략 스토리를 이야기 해보자면,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인데 같은 학과 여학생들이 루이비똥 가방을 하나씩 들고 다녀서 자기도 따라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명품 매장에 왔다 갔다 했다던 그런류의 소설이었다. 아... 이게 뭐야. 좋아요 10개도 못 받을 고민글이네. 사유가 너무 상투적이야.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 정의로우며 너무 교훈적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한국 소설에 트라우마을 지게 된 이유다. 예를 들어 <원미동 사람들>, 그런 어려운 주제를 초등학교 어린이가 어떻게 알 수 있는 건데.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은 지금봐도 참 별로야. 가난한 자를 위한 찬미, 쫒기는 소시민의 애잔한 삶. 그것을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었고, 무엇보다 그런 줄거리의 소설이 교과서는 물론 도서관에서도 너무 많아서 살짝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tv만 틀면 내 나이에 어울리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며, 다음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만화가 나오는데 왜 소설은 자꾸 어떤 우중충한 느낌을 주는 걸까. 특히 청소년 권장 도서라고 적혀 있으면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암울한 스토리인 <몽실 언니>로 쐐기를 따악, 그 후로 문학소녀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넥슨 게임만 주구장창 했데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어린 시절 소설을 보고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독서부족, 교양부족, 작가로서의 기질 부족이라 생각했지만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며, 여러 매체를 접해 본 결과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냥 소설을 일상생활에 접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 본 결과, 문학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일반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또 사유 역시 반기득권 = 반가부장제 = 반남성주의 = 페미니즘 = 퀴어니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이 과거 기득권에게 대항했던 도구, 좌파 운동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업종이다보니 더욱더 그러는 감이 있지 않나 싶다. 생각해봐. 어린 아이가 뭐 소시민의 삶과 빈부격차의 박탈감이라는 어려운 주제에 흥미를 느끼겠어? 어른이 된 지금에서도 그러한 주제는 너무 무겁고 흥미가 안갈만한 소재인데.


  즉 내게 있어서 한국 소설이 버거운 이유는 소설이 사유의 매너리즘에 빠지다 못해 절여져 있다고 자꾸 편견을 가지게 되고,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단순 나만의 문제가 아닌 거 같던데? 물론 아닌 소설이 많다는 거 나도 안다. 그냥 조온나 재미있는 소설이 많다는 거 나도 안다고. 세상은 넓고 뛰어난 한국 소설은 많은데 내가 아직까지도 과거에 읽었던 소설만 가지고 편견을 가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즉 문학력이 부족한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선과 악이 정해져 있고, 뻔하고 예측 가능한 사유가 깔리는 재미없는 글, 그리고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작가가 분명 존재한다. 특히 다양한 사유를 탐구하기 귀찮으니깐 권리, 혐오, 상처라는 치트키를 쓰고 있는 작가도 분명있다. 이거 완전 개꿀이잖아?
 


  
  솔직히 말할까? 난 매우 무례할 정도의 사유, 무례하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생각을 가진 소설이 보고 싶다. 왜 동성애자가 똥꼬충 소리를 들어가며 세금 갉아먹는 악마 취급 받는지, 어째서 다양성 시대에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퀴어축제를 보고 인상 쓰고 있는지, 왜 페미니즘 시위에 나온 여자는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여자로 보이는지, 위고비의 등장으로 아가리 다이어터들은 어떻게 됐는지, 왜 캣맘은 주둥이로만 고양이 사랑이라 외치고 집에 대려다 키우지 않으며 고밥비라면서 명목으로 돈 빨아먹을 생각에 눈에 불을 켜는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사유는 재미없거든. 이미 선과 악의 배역이 정해진 영화가 재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지. 갈등의 대립이 보고 싶다.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보고 싶다. 우린 이미 태어나기전부터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박터지게 싸워왔잖아. 싸움이 곧 삶이다.



 
  비록 글이라는 매체가 쇠퇴했다고 하지만 가장 먼저 쇠퇴한 것은 바로 문학이 가지고 있는 사유의 자율성이 아닐까? 그리고 사유의 자율성이 사라진 이유는 앞전 글 <조때따. 이미 페미와 퀴어가 한국 문학을 점령해부러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순수 문학이 K-드라마처럼 하나의 장르 방식으로 밀고 나가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고 말이지. 이미 글이라는 매체조차 불리한데 사유마저 정형화되고 보편화 된다면 이를 어찌해야할꼬...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