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실제 겪었던 일이다.
우리 부모님 집에는 내가 공모전 수상했을 때 발간되었던 책들이 있고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재미있어 할 줄 알았거든?
물론 개개인마다 좋아하는 글 스타일이 있다고 하지만
이미 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검증 받았다는 뜻이기에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속내를 꺼냈는데
잘은 썼지만 솔직히 왜 심사위원이 감동한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보통 서민들이 말하는 감동포인트와 다르다고,
대중적이지 않다, 또 너무 어려운 내용을 품고 있다면서
보통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런데 그게 말이 안되는 것이 그 글이 어려운 평론이나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무려 동화,
글만 읽을 수 있다면 어떠한 내용이고
어떠한 의미를 담아냈는지 알 수 있는 글이란 말이다.
하지만 지극히 대중적인 부모님이 감동하는 포인트와 내가 감동하는 포인트,
그리고 심사위원이 감동하는 포인트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난 대중친화적인 작가를 목표했을만큼
대중지향적인 감성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착각해서 충격이 더 큰 감이 있다.
학과에서 작문 공부를 할 때도 소위 말하는 문단에서만 잘 먹힐 것 같은 글,
약간 그런 거 있잖아.
청년의 우울하고 서글픈 삶, 무기력한 소시민의 이야기, 여성으로서의 차별,
성소수자가 느끼는 고립감이라는 주제 +
모두를 아우룰 수 있는 주제의식보다 페미비건퀴어 소수자 힙해보이는 담론들 +
문체는 약간 우울 복잡 가독성 떨어지는 먹물 좀 먹은 글 말이다.
그게 싫었던 나는 최대한 문체는 가볍고 가독성이 좋으며
소재는 라이트 노벨에서나 나올 법할 기발한 소재로 썼고,
또한 대중소설의 끝, 웹소설까지 쓰면서
허세와 가식, 있어보이는 순수문학과 최대한 멀어져보려고 했다.
그러나 오직 대중을 상대한 작문은 정말 상상이상으로 천박했고
그 느낌은 마치 자신의 욕구를 들이밀고서는 당장 해결해 달라는 독자를 상대하는 것,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짤 중 하나인 "야 거시기 꺼내봐... " 그 느낌이 파바박 들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에 반해서 대중들과 먼곳에 서서 먹물 좀 머금은 거 같은 심사위원에게
내 글이 채택되고 상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으니,
아... 나는 대중 문학과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미학은 대중보다는 소위 말하는 먹물 좀 먹은 사람에게 먹히는구나.
대중문학이라고 해서 굉장히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틀에 맞춰진 신데렐라 스토리와
북부대공 집착광공 인물상이 먹히는 곳이었구나,라는 씁쓸한 현실만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느꼈는데
왜냐면 이제 나는 더이상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에 목매지 않을 거니깐.
대중을 타겟으로 하는 글을 쓰든, 문단을 타겟으로 하는 글을 쓰든,
문예지를 타겟으로 하든, 신문사나 방송사를 타겟으로 하든 그것은 철저하게 본인의 자유다.
오히려 대중 vs 지성인이 선호하는 글을 나누는 것은 작가의 가능성만 축소시킬 뿐이다.
다만 대중 친화적인 글이 무조건 이롭고 좋다?
마광수 교수의 말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은 나쁜 글?
문학은 자기들만의 리그?
꼬막 축제에 콩쿠르 팀을 초대하는 않고 품바팀을 초대하고
시그니엘 호텔에 품바팀을 초대하지 않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작문 기질이 맞는 곳,
당신의 글에 어울리는 미학을 가지고 있는 곳,
대접해 줄 수 있는 곳에 조금이라도 비비는 게 백번, 천번 좋다.
마치 고흐와도 같은 거지.
지금 고흐의 그림은 한점에 엄청난 가격을 호가한다지만
과거 물감값도 못받는 그림이었으니,
왜냐면 고흐의 그림을 대중에서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평단에서도 인정받지도 못했거든.
그러다 평단계에서 인정받고 고평가 해주니
그제야 대중들도 따라서 고흐의 그림을 높게 평가하며 대접해주는 것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평단에게 인정 받을 수 있고
평단에서 인정 받으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인정 받을 수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글이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좋게 평가해줄 수 있는 곳에
기웃기웃 거리는 거, 요거 참 중요하다.
누워야 할 자리도 알아봐야 한다니깐?
대중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는답시고 어디 익명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다가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라는 비꼼만 받았는데
그 글이 평단에 인정받고, 세계적인 상을 받고, 한국의 자랑스러운 소설이라고
뉴스에 오르락 내리락하잖아?
그 비꼬면서 댓글달았던 사람도 돈 주고 그 책을 살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글에 담긴 미학이 어느 곳에 통하고, 좋아하고, 먹혀주느냐,
그리고 똑같은 미적감각을 느끼느냐, 그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여튼 하여튼.
이게 다 공리주의가 제일 좋은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내가 속아버렸지 뭐야.
약간 '신과 함께' 같은 스타일의 영화,
신파 줄줄 나오는 영화 같은 거 보면 이런 대사 많이 나오잖아.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일 하세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세요.
업보를 청산하고 덕을 쌓는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배푸는 것입니다.
천국 가고 싶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세요."
그래서 작문의 미학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글이 좋은 거다 = 대중문학이 가장 옳은 것이다"
라는 착각을 했지만, 그깟 대중들 좆까라고 그래.
서로주고 받는게 있어야 사랑이 유지되는거지
한쪽만 사랑하는 짝사랑은 너무 슬프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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