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많은데 능력과 재능 없는 엔티제남 사연 하나 들어보시라.
자신을 자칭 엔티제라고 소개하는 남자의 특징이 있다면
자신은 그 누구보다 인생 부지런하게 살고 있어서 유능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요런 사람 중 취미랍시고 예술에 찝쩍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허세충이고 간혹 진지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와 친분이 있던 그 엔티제남은 유료 그림 어플까지 살 정도로 꽤나 진지했던 모양.
그래서 혹시 그린 그림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발빼는 엔티제남.
그런데 왜 그러는지 알겠더라고.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엔티제남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뭐 조금만 그리다가 별로라고 지우고, 뭐 하기도 전에 또 별로라고 삭제하고,
나한테 그림 실력을 들킬까봐 몸부림치며 가리고 있었으니깐.
보아하니 프로는 아니고 취미 수준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 같은데,
그림체 역시 보아하니 그림에 그렇게 뛰어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쓸때없이 높은 눈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면 아주 도자기 장인인 줄 알것어.
보통 이런 도자기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은 본인에게만 투영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타인에게도 적용시키는데
그냥 장난삼아 그림 그리는 내게 선이 너무 많나느니, 그렇게 하면 안된다느니,
내가 아는 미대생 친구가 알려줬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허이구. 누가 봐도 누굴 가르칠 입장은 아닌거 같은데.
물론 내가 정밀묘사며 소묘며 할 정도 까지는 아니어도
시각디자인 업종에서 일했고 또 시각디자인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으며,
무엇보다 심심해서 그리는건데 열성적으로 지적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이 놈은 그림을 그리고 싶기 보다는 그림으로 칭찬 받고 싶어하는게 한눈에 보였다.
관용도 없어, 여유로움도 없어, 부끄러움은 많아, 하지만 배우기는 싫고 가르치고만 싶어.
어차피 회사 동기일 뿐이라 퇴사 후 곧바로 남남이 됐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남자엔 지금 그림이라는 취미를 때려치고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나 추측해본다.
왜냐고? 그림판에 얼마나 뛰어난 실력자들이 많은데.
저런 좀스러운 패기가지고는 뭐 제대로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사실 저 엔티제남 말고도 부끄러움이 많은데 엄격함은 더럽게 높아서
도자기 장인마냥 글을 썼다 지웠다가, 지웠다가 다시 쓴 애들 참 많이 봤었다.
대학교 동기였던 남자애 역시 장편 소설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완성되면 꼭 보여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타면 보여준다나 뭐라나.
물론 글 쓰는 애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데 창피해한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부터 인정과 성공을 기준으로 글을 쓰면 그게 잘 될리가 없다.
거기다가 상받을 낮은 확률를 목빼고 기다리라고?
결국에 난 그 친구의 장편소설을 끝내 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내가 상을 받아서는 그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알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하면 산다.
상을 받고자 글을 쓴다면 못 받을 것이고
못 받고자 생각하고 쓴다면 받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지망생들에게 가장 도움 안되는 감정이라면 바로 엄격함,
본인 스스로를 거장과 비교하여 수치심을 느끼고
글을 완성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참 나쁜 감정이다.
사실 이 엄격함은 절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나르시시즘에 더 가까운데,
아니 비교를 해도 왜 하필 거장하고 비교를 하는 거야?
무의식적으로 본인이 그러한 급이라도 된다고 생각한거야?
아니면 거장이 썼던만큼의 글을 써서 칭찬 받고 싶은 거야?
그래... 엄격함이 뭐 나쁘지 않지.
소위말하는 천재들의 이미지는 엄격함으로 무장한 완벽주의자니깐.
하지만 지나친 엄격함은 끈기를 부족하게 만들고 오히려 이상한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단어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 한다던다, 이게 비문인지 아닌지 계속해서 읽어보고 또 읽어본다던가,
오타와 띄어쓰기에 대하여 미리 걱정을 한다던가 말이지.
사실 좋은 글은 좋은 문장 딱 하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문장들이 어우러진 결과에서 나오는 법인데 나무 같은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 하다가는
숲인 글 전체를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마치 인터넷에서 글 맥락 전혀 상관 안하고
개뜬금없이 띄어쓰기나 오타를 지적하면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보려는 사람같은 거지.
무슨 국립국어원 사람이냐고요. 인간 표준국어대사전이냐고. 오타 잡아서 뭐할건데.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도 유우명한 오타왕이었던 것처럼
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필자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박과 집착에 벗어나지 못하면 나중에 이야기마저 완벽하게 통제해보겠다며
글을 쓰는 건지, 조각 하는건지 구분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번아웃이 오면서 글쓰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
그 사람의 메모장에는 썼다가 말았다 하는 글조각들만 유영하고 있겠지.
크게 꿈을 꾸고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
원래 소리없이 꿈을 꿔야 뭘 오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길래 왜 처음부터 거장 수준의 엄격도를 가지는 걸까?
앞서 말했다시피 그건 본인을 지망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의식 과잉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함이라는 것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서
조금만 노력하면 어떤 절대적인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고,
전세계를 감동시킬 마스터피스를 완성할 수 있을거라 유혹하는데
그것은 엄연히 자만이자, 함정이자,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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