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송병구가 또 다시 공룡 옷을 입었다. 이번에는 < ESPRIT >가 아니라 <취중진담>에서 2탄을 촬영했다.
삼성전자 송병구는 지난 92호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다소 귀여운 공룡 복장으로촬영에 임한 것. 92호가 대중에게 공개된 뒤 송병구의 이미지는 ‘공룡’으로 굳어졌다. 이후 성적도 급상승하면서 <다음 스타리그 2007>과 <곰TV MSL> 시즌2에서 모두 4강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 삼성전자 칸을 정규 시즌 1위에 올려 놓은 1등 공신 역할을 했고, 8월4일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전기리그 결승전에서는 3대0으로 앞선 상황에 출전, 르까프 오영종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삼성전자 칸에게 창단 이후 첫 프로리그 우승컵을 선물했다. 자신도 결승전 MVP에 오르면서 ‘뷰티풀 전기리그’를 완성시켰다.
공룡으로 변신한 뒤 일취월장한 송병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새콤한 독일 맥주와 곁들였다. 남윤성 기자 force7@ 사진=박송이 기자 raki@fighterforum.com
Behind #1. 공룡 옷에 화들짝
송병구가 공룡이라는 별명을 얻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코너는 esFORCE의다. 박송이 기자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꾸려지는 이 코너는 다소 생뚱 맞은 컨셉트로 독자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송병구가 공룡으로 변신한 것도 이 코너를 통해서다. 송병구는 어떻게 해서 공룡 옷을 입게 됐을까.
“박송이 기자님을 촬영 전날 경기장에서 만났는데 동물 옷 같은 것을 입고 촬영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뜨악했어요(뜨악하다는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아 꺼림칙하고 싫다’는 뜻이다). 촬영하러 간다고 감독님께 신고했더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임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못 알아 듣고 일단 촬영했어요. 가방에서 옷이 한 벌 나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공룡이었어요.”
그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뛰는지 맥주로 입술을 축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일까 예측이 안됐어요. 이 옷을 입고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입겠지만 회사, 게임단, 저, 기자까지 모두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고민하고 있는데 주위 평가가 귀엽다는 거에요. 그 말에 혹해서 촬영했고, 이후에 결과가 굉장히 좋았어요. 팬들이 스타리그에 응원 오시면서 공룡 가면을 쓰고 나타나시기도 하고 ‘공룡 토스’라는 별명도 붙었고요. 이래저래 고마운 공룡입니다.”
Behind #2.와의 결별
송병구는 2006시즌 내내 ‘2년차 징크스’에 시달렸다. 데뷔 첫 해인 2005년 가장 주목받는 신예로 급부상하면서 활약이 기대됐지만 시즌 내내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말이 좋아 ‘2년차 징크스’라 부르지만 내면에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제서야 송병구는 당시 부진의 원인을 밝혔다.
“솔직히 말씀 드릴게요. 저했어요. 그 게임에 빠져 노트북도 사고, 연습이 끝난 뒤 서너 시까지를 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에 빠져 성적이 떨어지고 나서 얻은 것이 더 많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고맙기도 해요.”
<스카이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삼성전자 칸은 2006시즌 초 지독한 슬럼프에 빠지면서 타이트한 방식으로 훈련 방식을 바꿨다. 선수들의 자유시간은 줄어들었고 외출도 거의 하지 못했다. 송병구는 숨 막히는 숙소 생활을 견디다 못해에 빠졌다.
“4개월 정도에 빠져 살았지만 제 실력이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연습실에서도 상위권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방송 대회에 출전하기만 하면 패하는 거에요. 그제서야 깨달았죠. 제가 자만하고 있었고, 나태함에 빠졌다는 걸요. 그래서 노트북도 팔고 최고 레벨에 올랐던계정도 지워버렸어요.”
송병구는 스스로 잃은 것이 많다고 했다. 200만원짜리 노트북을 100만원에 되팔면서 손해를 봤고 2007시즌을 앞두고 연봉 계약 때 삭감이라는 된서리도 맞았다. <스타크래프트>에 집중하면서 더 많은 상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날려 버렸다.
“올해 초 스타리그와 MSL에 진출하면서 인터뷰마다 “작년에 못한 두 배를 얻겠다”고 말했어요. 제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죠.를 하면서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해도 끄떡 없었거든요. 그 노력과 열정을 <스타크래프트>에 다시 쏟았어요. 떨어진 기량을 제 궤도에 올리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죠.”
밑바닥까지 떨어진 실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에는 3개월 가량이 소요됐다. 각종 대회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그 노력이 2007시즌 상반기 송병구 신드롬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다.
“우리 집 식구들이 원래 한 가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죽어라 물고 늘어지는 성격을 갖고 있어요. 아버지는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원어민 수준으로 능통하게 하세요. 형은 관심을 공부에 돌려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요. 저는 그 관심을 e스포츠에 둔 만큼 이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뤄야죠.”
Behind #3. 우승 이후
송병구를 비롯한 삼성전자 선수들은 우승 이후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8월4일 결승전에서 르까프 오즈를 4대0으로 셧아웃 시켰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아직 단 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무대에서 두 번 상을 받았잖아요. 정규 시즌 MVP 시상을 위해 올라갔고, 우승 MVP도 받으러 갔고. 그 기억밖에 없어요.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 멍하더라고요. 이게 우승의 느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묘했어요. 지금도 그런 느낌의 연속이에요.”
전기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송병구는 나름대로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었다. 스타리그와 MSL에서 모두 결승에 올라 둘 중 하나를 차지하고, 프로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4강전이 이틀 연속 열리면서 진이 빠졌다. 같은 팀 동료인 이성은과 경기를 치른 뒤 CJ 변형태 선수와 경기를 준비하려 하는 데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승부하려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곰TV MSL> 시즌2에서 김택용 선수와의 승부가 매우 아쉬워요. 제 실수 때문에 우승컵을 내줬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것도 달게 받아 들이고 있어요. 실수도 실력의 일부잖아요.”
그 때의 쓰디쓴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히 맥주를 넘긴다. 쌉쌀한 뒷맛을 지우기 위해 치즈 케이크도 한 점 입에 담아 넣는다.
Behind #4. 높아진 위상
<스타크래프트>에 매진하면서 송병구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전략가로 변모했다. 전기리그 개막 직전 KTF 박정석이 삼성전자에서 합숙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선수가 송병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프로토스 게이머들은 수시로 송병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기도 하면서 ‘ARS 공변뱅 찬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 ‘ARS’라는 말이 꽤 듣기 좋았어요. 다른 선수들이 제게 기댄다는 것은 제가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고 그들도 저를 신뢰한다는 뜻이잖아요. 실패하면 어쩌나라고 고민하기도 하지만 성공했을 때에는 두 배 이상의 기쁨을 누린답니다.”
송병구에게 전략을 묻는 선수는 삼성전자 칸 선수들 뿐만 아니다. 함께 연습했던 박정석이나 1988년생 동갑인 윤용태와도 자주 교류를 갖는다.
“한빛 윤용태와는 각별한 사이에요. 서로 전략을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해왔기 때문이죠. 사실 제가 더 많이 가르쳐 주는 편인데…… 용태는 꼼수를 발견하면 숨겨 놓고 알려주지 않아요. 제가 약간 손해 보는 느낌이죠. 참 재미있는 제보도 있어요. 배틀넷에서 만나면 서로 공룡이라고 놀리거든요. 그랜데 최근에 용태 별명이 바뀌었대요. 도롱뇽으로. 이재균 감독님이 “병구는 결승전도 가는데 너랑 똑같은 별명을 쓰면 병구가 화낼 거다”라면서 도롱뇽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배꼽 잡고 웃었어요. 용태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하하.”
유쾌하게 웃는 모습이 시원스럽다. 송병구의 위상이 높아진 데에는 이런 쾌활함이 한 몫 거들지 않았을까.
Behind #5.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
인간 관계에는 ‘6단계 법칙’이 있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 사람들이 서로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이 법칙이 유난히 송병구에게는 잘 들어 맞는다. 굳이 6단계까지 찾을 것도 없다. 3단계면 다 통한다.
“제가 대구 출신이거든요. 남덕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차재욱 선배가 그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리고 심인 중학교 출신도 아마추어 프로게이머들이 잔뜩 있고요. 대구 공업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제가 1학년 때 마재윤 선수가 2학년이었고, KTF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주현 선수가 3학년이었어요. 안기효, 김근백 선수는 이미 졸업생이었고요. 그리고 심인 중학교 근처에 있는 학교에 STX 김구현 선수와 이스트로 박준한 선수가 다녔고요.”
프로게이머 안에도 학연이 존재하는가 보다. 학교 이야기를 한창 재줄거리던 송병구는 팀 이야기를 꺼냈다. 삼성전자 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는 것.
“준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커리지 매치에서도 인연이 깊어요. 김동건 선수는 주영달 선수를 이기고 준프로가 됐고, 저는 이성은 선수를 이기고 나서 자격증을 땄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팀에 테스트를 받으러 왔더라고요. 인연 참 묘하다고 생각했어요.”
Behind #6. 팬들에게 바라는 것
공룡으로 뜨기 시작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송병구이지만 아직 팬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얼마전 자신의 팬층이 정말 얇다는 것을 절감한 적도 있었다.을 마친 뒤 팬미팅을 하는데 1위를 차지한 진영수가 30명, 3위를 차지한 마재윤이 25명에 둘려 싸여 대화를 나누더란다. 그런데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니 5명밖에 없어 서러움을 느꼈다고.
“팬층을 넓힐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약간 소심한 성격이라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데 그런 성격도 뜯어 고치고 저를 알릴 수 있는 창구를 더 많이 만들려고요. 그래서 최근에 팬들이 미니홈피에 일촌을 신청하면 모두 승인해드리고 있어요. 카페가 쇠퇴하는 요즘 미니홈피를 통해 적극적으로 저를 알리고 팬들을 만들려고요. 하루 방문자 1000명이 넘는 송병구 팬들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식신 송병구 ‘엄옹’에게 도전장
삼성전자 칸에서 송병구를 부르는 특별한 호칭이 있다. 바로 ‘식신’이다.
송병구의 식사량은 엄청나다. 정확하게 말하면 간식량이 엄청나다. 2004년 12월 합숙을 시작한 송병구는 상금을 따로 모아 놓았다. 간식을 사먹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건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어릴 적부터 빵이나 치킨, 피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송병구는 숙소에 합류하자 마자 엄청나게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매일 편의점에 쏟아 붓는 돈도 2만원 가량 된다. 편의점을 ‘습격’하고 나면 연습실 자리 아래엔 과자와 음료수 등 먹을 것이 한 가득이다. 선배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귀찮아 하면 직접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렇게 먹어대다 보니 송병구의 체중은 83Kg까지 늘어난 적도 있다. 요즘은 규칙적인 운동으로 73~77Kg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먹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버릇은 아직 못 고쳤다.
“엄재경 해설 위원과 한 번 붙고 싶어요. 저도 먹으면서 말 잘 할 수 있거든요. <스타 뒷담화>에서 섭외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오케이입니다. 온게임넷의 식신과 삼성전자 칸의 식신이 맞대결을 펼치고 싶어요. 꼭 불러 주세요.”
도롱뇽 나와라, 오버!
송병구는 절친한 친구인 한빛 스타즈 ‘뇌제’ 윤용태에게 바통을 넘겼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송병구와 윤용태는 격의 없는 사이다.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실력을 키워나갔고 김택용과 함께 신세대 프로토스 3총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송병구는 “용태가 음흉한 곳이 있거든요. 그걸 집중적으로 캐물어 주세요. 용태가 팬들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도록.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