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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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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3. 27.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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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6일 새벽 3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각 구단 감독들은 서로 모여야 할 것에 동의했고, 장소는 SKT T1 숙소로 정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외계인들이 프로게이머들의 이동과, 그들이 집합하는 T1 숙소를 보호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어차피 그들의 감시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므로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아 보였고, 새벽 4시 정도 되어가자 지친 나머지 그런데 신경쓸 여유도 없었다.

  “어. 어서들 와.”

  박태민이 문을 열고 프로게이머들을 맞았다. 라이벌인 KTF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귀중한 동료요 친구들이었다. SKT T1 선수들도, KTF 선수들도 서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너…… 다친거야?”
  “응, 형.”

  김정민이 놀라서 묻자, 박태민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박태민은 오늘 오른손 둘째, 셋째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대단찮은 부상이었지만, 프로게이머로서는 치명적이었다. 공교롭게도 마우스를 클릭해야 하는 두 개의 손가락이 부러진 것이다.

  “연성이 소식은 들었습니다. 강한 선수인데……”

  KTF 정수영 감독이 SKT T1 주훈 감독에게 악수를 청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훈 감독도 악수를 받으며 물었다.

  “예. KTF 선수들은 좀 어떻습니까?”
  “용호가 오른팔이 잘렸습니다. 폭격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나봐요. 친구를 붙들다가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면서 그만…… 지금은 병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다친건 아닌데 민이가 건물이 흔들리면서 넘어지다보니 왼손가락을 삐었어요. 용호랑 같이 병원에 있는데, 좀 심하게 삐어서 키보드를 누르는건 어렵다더군요. 의사 말로는 일주일은 간답니다.”
  “강민이가요?”

  김성제가 벌떡 일어나더니 물었다. 다른 T1 선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강민의 부상소식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임요환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강한 프로토스 유저중의 하나였던 강민이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능하다니…… 

  “주훈 감독. 정말 미치겠습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이냐구요!!!”

  정수영 감독이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대체 누가 나가고 누가 나가지 않는단 말입니까. 지면 죽게 되는 저 자리에…… 하지만 나갈 수 없는 위치가 아닌 이들인데……”

  주훈감독도 선수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선수들도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T1 숙소를 감돌았다.

  “똑똑”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다른 프로게임단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이재균. 선수들 데리고 왔습니다.”

  한빛팀이었다. 선수단이 하나씩 모여들고 있었다.

 

2005년 5월 6일 새벽 5시
서울특별시 여의도 MBC 본사



  지금 MBC에서 나오는 방송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외계인들의 모든 전달사항이나 변동사항은 이 MBC 방송국에서 송출되고,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100% 에 육박하다는 전무 후무한 방송 시청율이었지만, 결코 축하하거나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살아남아 일하는 자 모두 어두운 얼굴이었다.
  현재 가장 높은 관심사는 대체 누가 출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방송국 측은 각 프로게임 구단 측과 이야기를 마치고, 그들의 회의에서 결정되는 대로 선수들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오직 그들을 통해서만 외계인에게 전달이 될 수 있으므로, 아무나 경기에 나설 우려는 없었다.

  “오셨군요.”
  “예. 방금 도착했습니다.”

  PD가 김동수 해설위원과 악수를 했다. 경기는 전 세계로 생방송 될 것이고, 중계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스타크래프트 해설을 할 수 있으면서 섭외 가능한 사람은 오직 전직 프로게이머인 김동수 해설위원 뿐이었다. 다른 해설위원이나 캐스터들은 모두 사망하거나 부상했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서……”
  “아니오, 아닙니다.”
  “다른 모든 해설진은 현재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 분들도 있고요.”
  “엄재경 선배님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엄재경 해설위원은 집에 있다가 변을 당했다. 가스가 폭발하면서 화마가 그와 그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예…… 정말 안타까운 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PD는 창문 너머에 있는 외계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녀석들 때문에 너무도 비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 저런……”

  PD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를 악물더니 김동수 해설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래도 제 가족이 무사한 것에 대해 감사하려고 합니다. 김 해설위원님께서는 이렇게 선 뜻 제 부탁을 들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오, 전 오히려 부끄럽군요.”

  악수한 손을 놓으며 김동수 해설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 저도 전직 프로게이머로서, 지금 선수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특히, 내노라한다는 최고 위치에 있는 선수들 말입니다. 그들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그 부담이 어떤 것일지, 저로서는 감당할 수 조차 없을 듯 합니다.”
  “음……”
  “부끄럽습니다. 제 목숨을 저들에게 부탁한다고는 하지만, 죽음의 자리에 그들을 대신 내몬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3:0으로 이길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PD가 되묻자, 김동수 해설위원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지요. 단 한 사람도 죽으면 안됩니다. 다 소중한 친구들이고, 후배들입니다. 절대로 그 누구도 죽어선 안됩니다. 절대로……”

  하지만 점점 김동수 해설의 말끝은 흐려졌다.

  “절대로 지면 안됩니다. 절대로 누구도 져서 죽어버리면 안됩니다. 절대로……”

 

 


2005년 5월 6일 아침 8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선수들의 모임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누가 출전할 것인지, 누가 적당한 것인지는 그 누구 한 사람도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한 것은 어떤 구단에서 어떤 프로게이머가 다쳤는지, 또는 누구의 가족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는지, 거기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어느 누구도 선뜻 자신이 출전하겠다고 나서지 못했고, 그 어느 누구도 누구를 내보내겠다고 하지 못했다. 목숨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
  회의라는 것이 지지부진해지자, 날이 밝아오자 선수들과 감독들은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누가 출전하게 되든,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도 얼마 없고, 맵도 상대도 모르니 연습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게임에 참여할 ‘건강’ 이 남아있는 프로게이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컨디션 조절뿐이었다. T1 선수들은 각자의 방에 몇 명씩의 동료 프로게이머들과 같이 잤고, 거실과 연습실 등에서도 이불을 덮고 선수들이 쓰러져 자고 있었다.

  “기효는 아직 연락 안 되지?”
  “……예.”
  “그래. 수고했다, 영훈아. 이제 들어가서 자라.”
  “예, 감독님. 알겠습니다.”

  송호창 감독은 팔짱을 끼고 소파에 깊숙이 드러누웠다. T1 숙소로 출발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있던 기효가 보이지 않더니, 연락도 되지 않았다. 기효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숫자의  안전이 확인된 프로게이머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거나 탓할 수만은 없었다. 수도 없이 자신이 다루는 병력을 상대방과 싸우게 했던, 그리고 그 승과 패를 맛보았던 프로게이머들이지만, 지금은 진짜 ‘전쟁’ 상황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지면 바로 죽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스타크래프트는 컴퓨터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쟁놀음이 아니었다. 진짜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터가 되어버렸고, 그것을 감당하기에 프로게이머들은 한 명의 여린 청년에 불과했다. 고도의 혹독한 훈련이나 교육을 받은 이들도 당해내기 어려운 부담감과 위협. 그리고, 누군가 내 대신 나갈 수 있다는 자기방어적인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었다. 

  “끄응……”

  송호창 감독은 크게 기지개를 하고 눈을 감았다. 벌써 다른 감독들은 깊이 잠에 빠져 있었다. 살면서 이런 일을 눈으로 보게 되다니. 외계 종족과의 전투라는 게임을 업으로 삼으면서, 한 번도 외계인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데. 그런데 정말로 지구인들이 외계인의 침공으로 학살을 당하다니. 그리고 이 인류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프로게이머들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감독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것은 선수에게 이미 맡겨진 것이 아닐까……? 아니, 언제나 항상 모든 것은 선수에게 달려 있었지.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매우 지엽적이고 작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신뢰하는 것’ 이 최선이요 최고의 방책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들다 보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송호창 감독은 잠들면서 중얼거렸다.

  “안기효, 이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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