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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캉스 할 때 읽기 좋은 에세이) 예술과 의절한 호텔

에세이

by @blog 2023. 8. 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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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있는 워터파크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미술관인지 호텔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예술적인 호텔을 본 적 있는데 순간 그 느낌에 압도되어 기존에 예약했던 곳을 취소하고 그곳으로 숙박하고 싶더라. (물론 엄청난 숙박비에 바로 포기했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다. 소위 말해서 예술뽕에 취했는지 모르지만 그 호텔이 가지고 있는 우아한 느낌에 반해버린 것은 확실했다.

사실 그 호텔뿐만 아니라 1층 로비에 전시회를 여는 호텔, 카페에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호텔, 객실마다 아티스트의 그림이 걸려있는 호텔을 보고 나는 예술과 호텔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왜 호텔은 실용적으로 변하지 않고 미술관처럼 변하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호텔이 미술관처럼 변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우리의 인식 속에 예술은 여유롭고, 상류층들이 즐길 것 같으며, 고상한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호텔이 그 이미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생화를 배치하고 우아한 그림을 걸어두며, 대리석 바닥과 기둥의 인테리어가 미술관과 비슷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술가들도 호텔에서 작업 활동을 많이 하는데 대표적으로 소설가 헤밍웨이가 있고, 소설가 김영하씨 역시 작가들이 호텔에서 집필활동을 많이 한다고 했다. 또 호텔에서도 예술가를 위해 작업실을 내주는데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아트테이너 솔비는 호텔 사모님이 작업실로 쓰라며 내주신 속초 호텔방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른 호텔에서도 소설가에게 방을 내주는 이벤트가 있다. 그만큼 예술가와 호텔은 작업공간으로써, 또는 낯선 공간으로서 영감을 떠올리게 해주는 뮤즈 같은 공간이다.

나 역시 호텔에서 글 쓰고 싶다. 왜냐하면 호텔의 차분한 분위기와 낯선 공간, 곳곳에 배치된 예술품들이 이질감과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 역시 인터뷰에서 작업실과 실제 생활하는 곳을 분리하는 게 좋다고 했고 나 역시 낯섦에서 영감을 얻는 스타일이지만, 문제는 돈이 없어서 카페나, 도서관, 그것도 아니면 집에서 카페ASMR을 틀며 최대한 분위기를 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이렇게 예술과 끈끈하던 호텔이 요즘에는 서로 멀어지고 있는데, 부부라면 이혼 조정 중이고 친구라며 절교 선언 중이며, 가족이라면 의절을 말한 상태다. 자본주의 속에서 장인정신이 사치가 되다 보니 '호텔'을 짓기보다는 '저렴한 건설비로 호텔 구실 하는' 건물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전문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호텔은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호텔의 기본인 방음조차도 없는 곳이 많은데 예술성을 바라는 것은 너무 사치인 건가?

현재의 호텔들은 "그냥 적당히 떡치다가 가십시오!"라는 날림식으로 건설된 곳이 너무 많고 심지어 콘돔도 주는 호텔도 있다. 호텔, 비즈니스호텔, 모텔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지만 죄다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면서 왜 호텔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우선 호텔로 분류만 된다면 허술해도 문제없다는 건가?

잠깐! 그건 예술가하고 조금 비슷한데? 예술가라는 타이틀 안에 들어가면 성희롱해도 사랑의 시도고, 스토킹도 열정이며, 협박 역시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합리화 잘하잖아. 아직 예술계 쪽에 미투 운동이나 폭로들이 쉬지도 않은 걸 보면 역시 호텔과 예술은 형제이자 자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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