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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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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4. 1. 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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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오후 4시 15분
서울특별시 여의도, MBC 본사


  “이제 오셨습니까.”
  “어, 그래요. 김동수 선수.”

  정일훈 캐스터가 도착하자, 김동수 해설은 급히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정일훈 캐스터는 무심결에 김동수 해설을 ‘선수’ 라고 불렀다. 그는 김동수 해설의 머쓱한 표정을 보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아참. 내가 또 실수를 했군. 미안해요. 여전히 김동수 선수라는 말이 내게는 입에 익어서 말이지.”
  “괜찮습니다, 선배님.”
  “김동수씨가 해설한지도 꽤 되었는데, 나는 볼 때마다 이러네요.”

  정일훈 해설은 잠시 허허 하면서 웃더니,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김동수 해설에게 말했다.

  “음…… 참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들이군요. 정말 오랜만에 하는 스타크래프트 해설인데, 이런 자리라니.”
  “예. 그렇습니다. 이런 일들이 다 현실이라는 것이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같이 게임중계를 해오던 엄재경 해설도 유명을 달리하고…… 타 방송사 다른 모든 해설진들도 전부 연락 두절 상태라니……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정일훈 캐스터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김동수 해설에게 물었다.

  “출전 선수는…… 아직 네 명 뿐입니까?”
  “예. 이윤열, 박정석, 임요환, 홍진호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음…… 모두 경력이 오래된 선배 프로게이머들이군요. 어려운 상황인데, 그 친구들이 큰 결단을 했어요.”
  “예. 정말 용기있는 이들입니다.”

  김동수 해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김동수 해설을 보며, 정일훈 캐스터가 물었다.

  “김동수 씨는, 이번 경기를 어떻게 중계할 생각이에요?”

  그러자, 김동수 해설이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선수들이 그렇듯, 저도 최선을 다하는 해설을 해야겠지요.”
  “그래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모두들 자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야겠지요. 같이 한 번, 그들의 용기어린 출전에 부응하도록 최고의 중계를 해 봅시다.”
  “예. 해 보겠습니다.”

  정일훈 캐스터가 손을 내밀었다. 동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 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2005년 5월 7일 오후 4시 30분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이제 좀 진정이 됐어? 이것좀 먹어봐.”

  윤열이 소녀의 옆에 앉으며, 우유가 들어있는 컵을 내밀었다. 그 아이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베개를 꼭 끌어안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지금 숙소에 마실만한게 그것밖에 없네.”

  성제가 미안한 듯이 말을 건넸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떨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자, 애가 불안해하니까 여기 있지 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갑시다. 어서요.”

  주훈 감독이 주변을 환기시켰다. 그러자 웅성웅성 모여있던 프로게이머들이 하나 둘 흩어졌다. 거실에는 윤열과 송호창감독, 주훈 감독만이 남게 되었다.

  “자, 이제 불안해하지 말고 이야기 해 봐. 이름이 뭐니?”

  윤열이 다시 부드럽게 묻자,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윤열을 한번 보더니, 윤열이 준 우유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그리고 꼴깍 꼴깍 우유 한 잔을 다 비워버렸다.

  “목말랐구나. 물 좀 더 가져다줄까?”

  주훈 감독이 묻자,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서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소녀의 표정은 금방 울음을 터뜨려 버릴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러자, 윤열이 옆에서 다독 다독 달래어주었다.

  “아니야, 괜찮아. 나 때문이면 괜찮으니까 울지마. 응?”
  “윤열오빠…… 미안해요…… 흑. 저 때문에…… 흑!”
  “괜찮다니깐. 다른 마우스랑 키보드 구해서, 잘 연습하고 있으니 걱정마.”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말 한마디 없이 바라보던 송호창 감독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윤열은 그런 송 감독을 한번 슥 쳐다보고, 다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조…… 아라요……”
  “아라? 그래, 아라야. 난 이윤열라고 해.”

  윤열이 씩 웃으면서, 약간의 장난기를 섞어 말했다. 그러자 아라는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옆에 옆에 앉은 윤열을 슥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윤열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으아앙! 오빠!”
  “어, 어엇……”

  아라는 윤열의 목을 끌어안은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윤열은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주훈감독을 돌아보았다.

  “으아앙…… 엉엉……”

  주훈 감독은 윤열과 눈이 마주치자, 턱으로 아라를 몇 번 가리켰다. 그러자 윤열은 머쓱해하며 아라를 살짝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어, 어, 그러니까…… 어, 어버버…… 그, 그래. 진정해. 울지마……”
  “오빠, 미안해요…… 으허엉…… 으아앙……”

  주훈 감독이 윤열에게 티슈 몇 장을 뽑아서 건넸다. 윤열은 그것을 받아들고 나서도, 한참을 다독인 다음에야 아라가 윤열에게서 떨어지자, 간신히 그것을 아라에게 건넬 수 있었다.

  “자, 이거로 좀 닦아.”
  “흑, 흑”

  아라는 그래도 계속해서 훌쩍였다. 그러자 윤열이 아라의 손에 있는 티슈를 다시 가져와서는 아라의 볼과 눈 밑에 있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난 오히려 너에게 고마운걸. 이렇게 용기있게 키보드랑 마우스를 돌려주려 왔잖아.”

  윤열이 사근사근하게 잘 대해주자, 아라는 그제서야 조금씩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오빠…… 항상 그거로 연습하셨을 텐데, 그거로 해야 가장 잘하실수 있으실텐데 저 때문에 그걸 부수시고……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 그런거 없어도 이길 수 있어. 당연히 너 목숨이 훨씬 중요하지.”
  “그래도요, 오빠…… 그거 때문에 지면 어떡해요. 지면…… 지면 죽인대잖아요!”

  아라의 말에 윤열은 머리를 한번 긁적였다.

  “나도 좀 무섭긴 한데…… 이겨야지.”

  그러자, 아라가 윤열의 팔을 잡아 흔들며 다급하게 말했다.

  “오빠, 안 나가면 안돼요? 저 때문에 오빠 마우스랑 키보드도 없잖아요! 마우스랑 키보드 없어서, 어쩔수 없으니 다른 사람한테 대신 해달라고 부탁해요. 네? 오빠 죽으면 어떻게 해요. 윤열오빠, 제발요!”

  윤열은 아라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주훈감독도 그런 아라와 윤열을 지켜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오빠, 오빠가 제일 처음이잖아요. 저 외계인들이 어떻게 할 지도 모르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가장 위험하다구요. 제발 나가지 마요. 네? 오빠!”
  “아라야.”

  윤열이 조용히 아라를 불렀다. 계속해서 윤열을 흔들며 말하던 아라가 잠시 멈칫했다.

  “……네?”
  “아라 넌, 왜 나를 응원하니?”

  뜬금없는 질문에, 아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대답했다.

  “오빠가 제일 잘하고 멋있으니까요.”

  그러자, 윤열이 피식 웃으며 아라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아라의 눈을 가까이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그렇게 믿는다면, 지지 않고 꼭 이길테니까 날 믿어 줘.”

  순간, 아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윤열은 다시 한 번 말했다.

  “꼭 이길테니까, 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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