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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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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2. 1. 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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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오후 2시
잠실종합병원 병실


  용호는 병원에서 제공된 치료식을 먹고 있었다. 헌데 왼손으로 먹으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반찬을 젓가락으로 찔러 먹거나, 숟가락으로 떠 먹고 있는 중이었다. 용호는 되도록 잘린 팔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럴 때에는 순간순간 치밀어 오는 감정을 자제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탁.”
  “휴……”

  용호는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 놓았다. 입맛도 없었고,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자, 병실을 돌보고 있던 한 간호사가 용호에게 다가왔다.

  “조용호님, 왜 더 드시지 않으세요?”
  “아, 예…… 밥 먹기가 힘드네요. 입맛도 없고요.”
  “그래도 드셔야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됐어요.”
  “조용호님, 이럴 때일수록 먹고 기운을 차리셔야 해요.”

  용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씩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충분히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회복이 늦어요. 어서 드시고……”
  “아, 됐다니까요!!!”
  “와장창창!”
  “어머나!”

  순간, 용호가 버럭 화를 내면서 식판을 엎어버렸다.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식판이 바닥에 굴렀고, 깜짝 놀란 간호사가 뒤로 물러섰다. 용호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가만히좀 내버려둬요…… 가만히좀……”

  용호는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골랐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가 잘못한 것은 없었는데. 그 때, 간호사가 용호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조용호님.”
  "아, 아니에요. 제가 신경이 날카로워서…… 죄송합니다.“
  “금방 치워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 그게……”

  그 때, 무안해하며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난감해하던 용호의 눈이 TV에 멎었다. TV에는 대담 프로그램같은 것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오른쪽 아래에 항상 떠 있던 선수명단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선수가 추가되었다는 뜻이었다.

  “……저게……”

  TV가 먼 곳에 있었기에, 용호는 잘 보이지 않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눈을 가늘게 떴지만 아직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선수명단이 확 커지면서 화면 전체로 확대되었다. 숫자 4. 옆에 반짝이는 아이디가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4. [NC]...YellOw>

  용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폭풍저그 홍진호가 저그의 첫 출전선수이자, 네 번째 선수였다. 이제 선수 리스트는 단 한 개의 빈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2005년 5월 7일 오후 3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아니, 그게 정말이야?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해! 언제 그랬는데?”

  송호창 감독이 크게 소리쳤다. 윤열은 그 앞에 서서,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인채 말없이 있었다.

  “송감독, 무슨 일입니까? 왜 이윤열 선수에게 그렇게 화를 내세요.”

  주훈 감독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송감독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아 글쎄, 윤열이 이녀석이 마우스하고 키보드를 잃어버렸답니다.”
  “예!?”
  “나, 이거 참. 휴…… 이걸 어떻게 하지요?”

  회의실 안에 있는 감독들은 일제히 놀랐다. 출전 선수인 이윤열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놓고 왔다니. 다들 얼이 빠져 있을 때, 이재균 감독이 다가와서는 이윤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야기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봐요, 송감독. 윤열이 더 이상 다그치지는 맙시다.”
  “속이 답답하니까 그렇지요. 아니, 윤열아. 너는 너 키보드랑 마우스도 없으면서 어떻게 출전할 생각을……”
  “송감독!”

  이재균 감독이 송호창 감독을 제지시켰다.

  “뭐요? 윤열이는 내 선수입니다. 이감독이 왜 나서는겁니까?”
  “지금 상황에서 내 선수 네 선수가 어딨습니까?”
  “내가 지금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시오? 이감독?”
  “그러니까 그만 합시다.”

  그러자, 송호창 감독은 식식거리면서 문을 쾅 닫고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재균 감독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윤열에게 물었다.

  “윤열아,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그걸 언제 잃어버렸는데?”
  “……그저께…… 아니, 5월 4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겠어?”
  “그날 서바이버 리그가 있었는데…… 팀원들 경기도 구경하고 만날 사람도 있어서 세중에 갔었어요.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키보드랑 마우스를 넣어둔 가방이 없어졌어요.”

  이재균 감독은 얼이 빠졌다. 잃어버린게 아니고 누가 훔쳐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찾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구나.”
  “죄송합니다. 정말……”

  윤열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책하는 윤열을 보자, 이재균 감독은 그것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윤열이 마음졸이고 있었을지 생각이 되어 가슴이 아팠다. 이재균 감독은 윤열의 등 뒤로 돌아가서, 윤열의 어깨를 양 손으로 덥석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어깨 펴 이녀석아. 훌륭한 목수는 어떤 연장으로도 나무를 잘 베어내야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연습해서 적응하면 되지. 응?”
  “예……”
  “그래. 어이, 주훈감독. 숙소에 윤열이가 쓸 만한 키보드와 마우스 있습니까?”

  이재균 감독이 묻자 주훈감독이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그, 그래. 이윤열 선수. 어떤 마우스하고 키보드가 필요한가?”

 




2005년 5월 7일 오후 3시 15분
서울특별시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준비는 다 끝났나?”
  “예.”

  키가 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외계인이 묻자, 그 뒤에 서 있던 외계인이 깍듯이 대답했다.

  “이 짓도 슬슬 질려가는군.”
  “그러십니까.”

  키가 큰 외계인이 조용히 그르렁댄 후,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군.”
  “재미있으실 겁니다.”
  “그래? 어떻게 확신하나?”
  “이 인간이라는 종족의 스타크래프트를 수행하는 능력이란 굉장한 수준입니다. 선발되고 선발된 우리의 최고 전사들이지만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란 말인가.”

  그러면서, 키큰 외계인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금속제 통 안에 점액질의 액체가 꾸물거렸고, 그 안에 고치 같은 것이 번들거리며 들어 있었다.

  “참. 저것도 있었군.”
  “예, 사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럼 재미있겠군.”
  “예. 재미있으실 겁니다.”

  키큰 외계인은 고개를 들었다. 한때 숱한 아파트단지와 빌딩이 서 있었던 한강시민공원 주변은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어 흉물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외계인의 뒤와 머리 위의 하늘에는 거대한 UFO 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떠 있었다.




2005년 5월 7일 오후 3시 30분
서울특별시 삼성동


  중학생쯤 될 만한 소녀가 빼꼼히 골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쩌지…… 진짜.”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소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 소녀는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T1 숙소가 앞에 보였고, 그 주위를 무시무시한 외계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떡하지…… 아……”

  울상이 된 소녀 곁에는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윤열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들어 있었다. 사흘 전, 이 소녀는 세중게임월드에 놀러갔다. 그러다 우연히 이윤열 선수를 보게 되었다. 이 소녀는 자다가도 이윤열 선수 꿈을 꿀 정도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쑥스러움이 많아서 다가가 말도 걸지 못하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이윤열 선수가 경기장 구석 후미진 곳에 가방을 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순간,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주워들고 재빨리 도망쳐 버린 것이다.

  “아, 진짜 내가 왜그랬지……”

  소녀는 일이 이렇게 커져버릴 줄은 몰랐다. 처음엔 아무도 모르게 가방을 버리려고 했는데, 때마침 이윤열 선수가 가장 첫 선수로 출전했다. 소녀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조아라, 정신차려. 용기를 내자.”

  ‘아라’ 라고 자기를 부른 소녀는 자신의 볼을 두드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 소녀의 뒤로,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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