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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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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5. 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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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아침 10시 10분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요환아, 보지마라.”

  주훈 감독이 요환을 불렀다. 하지만 요환은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환이 형, 창가에서 떨어져라. 위험하다.”

  정석이 요환을 붙들고 창가에서 비켜 세웠다. 그리고서는 비틀거리는 요환을 소파에 앉혔다. 충격이 꽤 큰 모양이었다. 그 때,

  “챙그랑!!”

  건물의 유리창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다. T1 의 숙소가 아닌 다른 곳이었지만, 누군가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모두 창가에서 떨어져!!”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리고 나서 잠시후 돌이 맹렬하게 날아들었다. T1 숙소의 유리창들이 박살나고, 사방으로 유리파편이 튀는 가운데 돌멩이들이 들어왔다. 선수들과 감독들은 황급히 기둥 뒤로, 또는 안전한 방으로 숨어들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요환은 넋나간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2005년 5월 7일 아침 10시 15분
서울특별시 삼성동의 한 골목


  민재는 순간 돌을 던지던 손을 멈추었다. 건물 안에서 외계인이 걸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군중이 던지던 돌에 외계인이 맞은 모양이었다.

  “으, 으아악!!”

  대열에 있던 사람 몇 명이 겁에 질려 뒤돌아 도망가려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길의 앞뒤로, 그리고 양옆으로 대여섯의 외계인이 무리를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도망갈 수 없다는 상황을 파악한 민재는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외계인이 시퍼런 날이 선 칼을 들고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겁에 질린 민재의 온몸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묶어 놓지 않았다면 벌써 쇠파이프도 떨어뜨려 버렸을 것이다.

  “죽어라.”
  “흐아아악!”

  민재의 코앞까지 다가온 외계인이 칼날을 쳐들었다. 민재는 양 팔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 때,

  “안돼!!!!”
  “콰당!”

  민재는 칼에 베이는 대신 바닥에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누군가 거세게 외계인을 밀쳐내는 바람에 민재까지 넘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외계인이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고, 그 뒤에 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마. 죽이지 마……”

  떨리고 있었지만 똑똑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재의 눈은 둥글게 커졌다. 프로게이머 임요환이었던 것이다.

  “크르르륵!”

  외계인은 뒤돌아서서 요환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로 들어올렸다. 요환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크윽, 으으윽, 으윽”
  “아무리 프로게이머라도 우리에게 적대하면 죽는다. 그걸 모르는가, 멍청한 인간.”
  “크윽, 크윽, 크으윽……”

  위협적으로 한번 요환을 공중에서 흔든 외계인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요환이 땅바닥에 쓰러지며, 목을 부여잡고 콜록거렸다. 그런 요환을 외계인이 경멸스럽게 내려다보았다. T1 숙소에서 이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냥 죽이는 건 지겹군.”
  “푹!”

  그렇게 내뱉으며, 외계인은 들고 있던 커다란 칼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여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민재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요환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재미있는 놀이를 하지. 너희 둘 중 먼저 이 칼을 집어들고 상대를 죽이는 놈을 살려 주겠다.”

  이 빌어먹을 족속은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그들 최대의 유희인가? 인류 전체의 생명을 놓고 노닥거리고 있는 그들은 지금 당장도 두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외계인이 칼을 꽂아 놓고서는 멀찌감치 물러서자, 쓰러진 요환도, 서 있던 민재도 동시에 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둘 다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셋 셀 때까지 칼을 집는 놈이 없으면 둘 다 죽는다. 하나.”

  외계인이 숫자를 세면서 요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외계인이 또 입을 열었다.

  “둘.”
  “헉!”

  그러자 민재가 앞으로 뛰어나가며 칼을 손에 쥐었다. 민재가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요환도 순간 몸을 움찔 했으나, 쓰러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애초부터 요환이 칼을 집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외계인이 기분나쁘게 킬킬대며 속내를 드러냈다.

  “크르르르.... 크큭. 우리는 명령으로 인해, 프로게이머를 죽일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빌린다면 처단이 가능하지. 어서 죽여라.”

  민재는 서둘러 오른 손의 붕대를 풀어내고, 땅에 박혀 있는 칼을 두 손으로 뽑아들었다. 손잡이도 팔뚝만하고, 칼날 두께만 해도 어른 몸통만한 그런 커다란 칼이었다. 그리고 나서, 민재는 요환을 노려보았다.

  “다, 다, 이게 다 당신 잘못이야!!! 이 비겁한 XX야! 다 네 잘못이라고!!!”

  민재가 악에 받쳐 버럭 소리질렀다. 요환은 그런 민재의 욕설을 묵묵히 들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민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순간 민재가 멈칫했고, 요환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요환의 첫 마디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돌아가신 많은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많이 고민했고, 정말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 손에, 제 자신의 목숨과, 모든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할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지요.”

  요환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물 1호라는 자신의 손이 그 때만큼 원망스러워 보인 적이 또 있었을까. 요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제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리고, 요환은 민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제 자신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

  민재는 그런 요환을 쳐다보았다. 요환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에도,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에도,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주목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고민했지요.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내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 제 자신에 대해 저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과연, 모든 프로게이머를 대표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가? 다른 사람이 인정하기 전에, 내 스스로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내가 내 자신과 인류를 이 손으로 구해낼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 저는 끊임없이 고민했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알 듯 합니다.”

  그러면서 요환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는 아니라는 것을요.”

  외계인이 슥 하고 민재를 쳐다보았다. 민재는 묵묵히 요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저보다 훨씬 강력한 다른 프로게이머가, 분명히 승리해 낼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가겠습니다.”

  요환은 고개 숙인 채 마지막 말을 읊조렸다. 요환 앞에 양 손으로 칼을 쳐들고 있던 민재의 팔이 덜덜덜 떨려왔다. 이를 너무 세게 악물어서, 민재의 이에서는 빠드득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라.”

  외계인이 차갑게 명령했다. 그 말을 듣자, 민재는 칼을 내리치기 위해 등 뒤로 칼을 서서히 넘겼다. 요환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 민재가 요환에게 말했다.

  “임요환 선수.”
  “……예?”

  순간, 덜덜 떨리던 민재의 떨림이 멈추었다.

  “당신은 언제나 최고입니다. 항상 최고였고, 앞으로도. 그러니 힘내십시오.”

  그리고 민재는 칼을 들고 외계인에게 뛰어갔다.

  “이야아아아아아!!!!”
  “퍽!”

  그러나, 기세좋게 뛰어갔음에도 민재는 외계인의 팔에 맞아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분노한 외계인은 칼을 집어들고, 민재의 오른 손목을 집어 들어올렸다. 손목 뼈가 아그작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고, 민재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끄아아아아악!!”
  “이 더러운 족속. 소원대로 죽여주겠다.”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요환은 고개를 들고 민재와 외계인을 쳐다보았다. 외계인은 칼로 민재의 겨드랑이 부분을 슥슥 잘라내고 있었다.

  “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악!!!!!”

  민재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마침내 오른팔이 잘려지고, 민재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외계인은 민재의 머리를 붙들고 다시 들어올렸다. 

  “캬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처절하게 민재의 비명이 이어졌고, 피가 허공에 분수처럼 흩어졌다. 외계인은 민재의 어깨에서부터 몸통을 대각선으로 슥슥 자르기 시작했다. 잔인한 광경이었다. 몸통을 절반 정도 자르자, 부들거리던 민재의 경련이 멈추었다. 외계인은 끝내 민재의 몸을 토막내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멀리 던져버리며 외쳤다.

  “죽여라!”
  “아아악!! 아악!!”
  “꺄악!”
  “아아아아아!”

  그 외계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붙들려 있던 50여명의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외계인은 각자 손에 든 무기로, 또는 맨손으로 사람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크으읏……!”

  요환은 무릎을 꿇은 채, 그 모든 광경을 눈으로 보았다. 입술을 너무 꽉 깨문 나머지, 입술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부르르 떨면서 너무 세게 쥔 주먹에서도 피가 맺힐 지경이었다. 눈에 살기에 가까운 독기를 품으며, 요환은 그 참혹한 광경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아 두었다. 이전에, 그 어느때에도 볼 수 없었던 임요환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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