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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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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4. 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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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밤 1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정만이 형. 내는, 죽는게 무섭다."

그때 마침 불어온 바람이 박정석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지금 박정석과 김정민은 T1숙소 옥상에 있었다. 윤열의 출전으로 인해, 복잡한 기류가 흐르는 실내의 무거운 공기가 싫어 김정민이 먼저 옥상으로 올라왔고, 뒤이어 박정석이 올라와 그 옆에 섰다. 둘은 아직까지 여기 저기에서 불꽃과 연기가 솟아오르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윤열이 그 아라고, 와 안 무서웠겠노. 더 하면 더 했지, 덜 할 아는 아이다."

정민은 여전히 말없이 있었다. 정석은 그런 정민을 한번 힐끗 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근데, 그 아한텐 용기란게 있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렇제?"
"그렇지......"

정민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글마가 그래서 천재소리를 듣는거 아니겠노.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서 걸어갈 수 있는 용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글마의 그런 면이, 그런 성격이, 참 대단하다 느껴진다."

이렇게 남 칭찬을 한 적이 없었는데. 여전히 무표정하게 들으면서도 정민은 그런 생각을 했다. 정석이 말을 이었다.

"내는 그리 몬한다. 그래, 내가 지면, 이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생각, 그 부담감. 그게 억수로 크긴 크다. 하지만, 그거보다는 게임에서 지면 바로 죽는다는데, 그 압박을 누가 이기겠노. 솔직히 내는 몬하겠다."
"그래...... 사실 말은 안하지만 다들 그런 생각 하고 있겠지."

뒤돌아 서서 난간에 두 팔을 기대며, 정민이 대답했다.

"약이라도 묵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있겠노.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제정신일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 하나부터 열까지, 세상이 모두 미쳐버린 것만 같은데."
"그란데, 그란데. 정만이 형."

이제껏 계속 이야기하던 정석이,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정민은 고개를 돌려 박정석을 바라보았다. 정석은 자신의 가슴께를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여기가, 이 가슴이, 자꾸만 뜨거워진다."

정석의 가슴을 붙들고 있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안된다고, 미쳤냐고, 무서워 죽겠다라고 외치고 있는데, 내 이 가슴은 그럴수록 자꾸만 뜨거워진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 정만이 형."
"응?"

정석이 정민을 보며 씩 웃었다.

"...내 신체 일부가 왕따가?"
"풋."
"쿡쿡쿡... 하하하하..."

두 청년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웃음이 진정이 되자, 정민이 정석을 불렀다.

"후아... 정석아."
"어, 정민이형."
"그게 바로 네 강점이다."
"내 강점이 뭔데?"
"멋."

정민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 말에 박정석은 정민의 어깨를 툭 치며 피식 웃었다.

"뭐라카노."
"멋. 멋 말이야. 멋있는거."
"형 와이라는데. 옥상에서 비행기 태워서 날려 보내려하나."

그러자 정민이 가슴을 쭉 펴며 이야기했다.

"네 안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멋있음을 향한 특유의 본능 같은게 있어."
"내 부끄럼 많다, 형아. 대체......"

정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정민이 박정석의 가슴에 주먹을 갖다 댔다.

"그래서, 그 본능이 네 가슴에 이야기 하고 있는거 아니야?"

박정석은 정민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쿵. 쿵. 쿵. 쿵."

또 다시, 정석의 가슴은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박동은 정민의 주먹에까지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힘찬 것이었다.

 


...그렇게 인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평온한 밤이 지나고 있었다.

성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자고 있는 요환과 윤열을 보고 피식 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들이 깨지 않도록,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살며시 문을 닫고 자신의 침대로 들어갔다.

강민은 조용히 잠들어 있는 용호를 한번 쳐다보고, 너무 빨리 떨어지고 있는 듯한 링겔병을 천천히 떨어지도록 조절해 주었다. 내일은 숙소에 들러서 짐을 챙긴 후, 부모님께 가 보아야지. T1 숙소에 팀원들이 모여 있다니까 얼굴이라도 한번씩 보아야겠다. 그렇게 강민은 마지막 하루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길섭은 옥상에서 내려온 정석과 정민과 내려왔다. 정석의 눈빛이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정민을 바라보자, 정민은 눈을 천천히 한번 깜빡이는 것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했다. 

한참이나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던 아가씨는, 청년에게 무엇을 물어보려다 멈칫했다. 청년이 꾸벅 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그러미 그 청년을 바라보고 있던 아가씨는, 손에 들려 있는 "Black Gean" 이라고 적힌 종이를 살짝 펴보더니, 미소짓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2005년 5월 7일 아침 8시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인류의 마지막 날 아침, MBC 뉴스 스튜디오에서는 밝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의 시청자 여러분. 희망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반가운 소식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간밤에 2명의 대한민국 프로게이머들이 출전하였습니다. 이 두 선수의 이름은 이윤열 선수와 박정석 선수로서......"

김동수 해설은 팔짱을 끼고, 뉴스가 진행되는 스튜디오를 바라보았다. 

"윤열이와 정석이라......"

믿음직스러운 두 명의 프로게이머들이었다. 특히, 정석은 동수와 같은 한빛 스타즈 소속이기도 했고, 프로토스 유저라 참 친했던 선후배 관계였다. 김동수 해설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정석이가 대견하기도,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출전하기 전에 한 번 만나볼 수나 있으련지......

"......그러므로, 어, 어??"

그 때, 돌발상황이 일어났다.

"퍼억!!"
"쿠당탕탕!"

외계인이 난데없이 스튜디오 안으로 난입했던 것이다. 외계인은 앵커를 거칠게 쳐서 밀어냈고, 당황하던 앵커는 화면 밖으로 사정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 모든 장면이 전 세계에 생생하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쿠앙!!!"

외계인이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자, 단단한 원목 재질 책상이 두동강나며 내려앉았다. 외계인은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천한 족속들이 우리가 약간의 인정을 베풀었더니 겂없이 날뛰는구나. 어제 우리 종족의 위대한 전사 넷이 죽었다."

외계인들에 대한 저항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레지스탕스들이 조직되고,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감행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피해는 고작 넷 뿐이라니, 이들의 강력함과 인류의 무력함을 다시한 번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외계인의 말은 더욱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또, 너희에게 기회를 주었음에도 비겁하고 겁많은 너희 인간 녀석들은 여태까지 두 명 밖에 이 대결에 참여하지 않았구나. 이 나태하고 교만한 족속들이 반성하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한 시간 동안 희생된 우리 전사 하나당 1억씩, 모두 4억의 인간들을 죽이겠다."

MBC 방송국 안이 크게 술렁였다. 전 세계의 이 뉴스를 듣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그 무참한 살육이 계속된다는 말인가?

"또한, 앞으로는 우리에게 적대하는 그 어떤 지구인도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이겠다. 살아남기 위해 마음껏 발버둥쳐 보아라."

말을 마치고 나서 외계인은 쿵쿵거리며 스튜디오에서 내려와 버렸다. 김동수 해설은 경악에 가득차 그만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희망의 아침이 처절한 살육의 아침으로 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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