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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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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3. 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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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0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이재균 감독은 ‘역시 이윤열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항상 모두가 주저하고 꺼리는 선택을 해오던 그였다. 조지명식에서도 거리낌없이 항상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해오던 것이 이윤열이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은 적도, 좋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윤열이기에’ 그는 그러한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가 가장 어렵다가는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고맙다, 윤열아. 지금은 고맙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네.”

  송호창 감독이 이윤열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윤열의 표정은 딱딱했다. 

  “저, 이만 들어가서 자겠습니다.”
  “어, 그, 그래? 그래라. 어서 가서 쉬어.”

  이윤열은 터벅 터벅 걸어 올라갔다. 그 때, 임요환이 이윤열을 붙들었다.

  “자러 가냐?”
  “어…… 형.”
  “같이 자자.”
  “어…… 어…… 그게…… 어버버……”

  윤열은 당황해하면서 요환의 손에 끌려갔다.

  “저, 형. 씻고 올게.”
  “괜히 이상한 생각 들게하는 대사 하지 말고 그냥 누워 자. 내일 아침에 씻고.”
  “이상한 생각은 무슨 이상한 생각이야, 형? 형이 이상한 생각 하면서?”
  “너 죽는다.”

  둘은 킥킥대면서 같은 침대에 누웠다. 옆 자리의 성제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이거 진짜 쫌 그런데? 성제는 안와?”
  “오겠지. 자꾸 이상한 상상 하지 말고, 야…… 이렇게 둘이 같이 누워보는게 IS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그치?”
  “그러게, 형. 그러고보니 참 오래됐다.”
  “그때만 해도 네가 진짜 어렸는데…… 나한테 형형 하면서 졸졸졸졸 쫓아다니고.”
  “형도 그땐 젊었어. 지금보다 머리도 좀 더 작았던 것 같고.”
  “너 죽는다.”
  “킥킥킥.”

  이윤열이 웃자, 임요환이 이윤열을 막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래, 더 웃어라. 더 웃어.”
  “악, 악, 아, 알았어. 그만, 그만. 내가 졌어. 내가 미안. 항복, GG, GG”
  “진짜야?”
  “어. 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킥킥……”

  임요환은 그제야 간질이던 것을 멈추었다.

  “으유, 이 수달아.”
  “형, 보노보노는 해달이래.”
  “수달이 왠지 간지나잖아.”
  “그럼 형 간지나는 별명은 임요벙이야, 임대가르시아야?”
  “너 죽는다.”
  “아, 알았어. 진짜 안놀릴게.”

  둘은 서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윤열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후아-”
  “……”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 요환이 윤열에게 말을 걸었다.

  “윤열아.”
  “응, 형?”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뭔데.”

  그러자 요환이 그대로 천장을 쳐다본 채로 말했다.

  “지지 마라.”
  “GG 마라고?”

  윤열이 허공에 알파벳 G를 두 번 그리면서 대답했다.

  “그래, 절대로 지지 마라. 너 절대로 지면 안된다.”
  “알았어 형. 이래봐도 천재테란이니까 걱정마셔.”

  윤열이 대답하자, 못 미더운 요환이 윤열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절대로 지지 말라고. 임마.”
 
  그러자 윤열이 요환을 슥 돌아보았다.

  “알았어, 형.”

  요환도 윤열을 한번 돌아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다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윤열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요환이형. 나도 부탁이 있어.”
  “응? 뭔데?”

  요환은 마른침을 삼키며, 귀를 쫑긋 세웠다.

  “손좀 놓지?”
 

 



2005년 5월 7일 0시 반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아…… 또 다른게 뭐가 있는데요?”
  “아이디가 유명한 선수들로는…… 임요환 선수는 SlayerS_`BoxeR', 홍진호 선수는 YellOw 가 항상 들어가고요, 여성 프로게이머 서지수 선수는 테란유저인데도 ToSsGirL 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해요. 김동수 선수는 GARIMTO. 고대문자, 박경락 선수는 Junwi. 삼국지 등장 인물이죠? 그리고, 옛날에 기욤패트리라는 선수는 Grrrrr.... 라는 아이디를 썼어요.”
  “그르르르... 요?”
  “예.”
  “하핫…… 그럼 그쪽도 아이디 있으세요?”
  “물론 저도 있죠.”
  “뭔데요? 재밌는거에요?”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재미 없는거에요.”
  “그래요? 그럼 저한테도 멋진 아이디 하나 만들어 주세요.”
  "제, 제가요?“

  만난지 다섯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인데, 참 사교성 좋은 아가씨라는 생각을 하면서, 청년은 생각했다. 

  “음…… 잠시만요.”
  “네.”

  아가씨는 눈을 말똥 말똥 뜨면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신의 가방에서 펜을 꺼내더니 종이에 무엇인가를 썼다. 그리고 그걸 건네주었다.

  “이건 어때요……?”
  “Black-Gean? 검은 청바지라는 뜻인가요?”
  “예. 청바지 입고 오셔서…… 근데 밤이라 검은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근데, 청바지의 ‘진’ 스펠링은 'Jean' 인데요?”
  “아, 그, 그, 그래요???”

  청년은 머리를 긁적였다.

  “풋, 뭐, 괜찮아요. 오히려 더 센스있어 보이는걸요. 실제로 Gean 으로 독특하게 쓰는 상표도 있는걸요, 뭐. 고마워요.”
  “아, 네……”

  두 사람이 아이디 문제로 시끌시끌한 동안, 시청앞 광장은 떠들썩했다. 첫 번째 출전 선수의 결정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천재테란 이윤열이라는 것 또한 화젯거리였다. 이제는 6만명 가까이 운집한 시청 앞 광장에서, 이제껏 침울해 있던 많은 사람들은 활기 넘치는 분위기로, 이제 전광판에 나머지 선수들이 나타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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