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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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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4. 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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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아침 8시 10분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앞 서울광장


모자를 쓴 청년은 열심히 [Oops]Reach 라는 아이디를 가진 선수에 대해서 아가씨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스피커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지금 어서 이 곳에서 피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한 시간동안 외계인들이 인간을 다시 공격한다고 합니다! 피하십시오!!!"

어제 인파를 통제하던 그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는 더욱 다급해졌다.

"어서 피하십시오! 외계인들이 인간을 살육하기 위해서 인간이 많은 곳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지금 당장... 아아악!!!"

그 때, 자지러지는 비명이 시청앞 광장을 울렸다. 방송하고 있던 그 사람을 외계인이 머리를 붙잡고 들어올린 것이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더니, 아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몸뚱이가 털썩 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외계인이 손으로 머리를 바스라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아악!!!"
"으, 으, 으아아아악!!!!"

10만 가까운 인파가 밀집해있던 시청앞 광장은 생지옥이 되어 버렸다.  열댓 정도 되는 외계인이 시청 앞 광장에 투입되어,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참혹한 것은 사람들에게 밟혀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약한 사람들은 바닥에 깔렸고, 그 위에 몇 명이고 사람들이 덮여 깔렸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외계인의 손에 죽어 나가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크아아악!!!"
"아아, 아아아악!!!"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도망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열심히 앞의 사람들을 밀어 보았지만, 도망치는 맨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속절없이 외계인들의 무기에 등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2002년 붉은 티셔츠로 물들었던 시청 앞 광장은 처참한 광경과 함께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어서, 어서 이쪽으로 와요!!!"
"꺄악!!!"

청년은 다급한 목소리로, 아가씨를 잡아 끌며 달렸다. 다행히 인파의 중심에서는 떨어져 있었고, 외계인들이 공격해 들어오는 곳과 반대 방향 쪽에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인파에 묻혀버리거나 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전혀 안전한 상황이 아니었다. 달려가고 있는 방향에 두셋의 외계인이 달려오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퍼억! 퍼거걱!"
"아아아악!"
"건물 안으로, 건물 안으로!!"

두 사람과 채 10m 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외계인이 도망가던 한 여자를 뒤쫓아서 긴 장대같은 무기로 어깨를 내리쳤다. 쓰러진 여자를 외계인이 계속해서 장대로 내리치는 것을 보고 같이 달리던 아가씨가 얼어붙어 있자, 청년은 아가씨를 급히 잡아 끌어서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헉, 헉, 헉, 못가요, 못가겠어요."
"여기서 멈추면 안되요!!!"

청년은 아가씨를 잡아 끌려다가, 그제서야 그 아가씨가 절뚝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발을 밟혔는지, 접질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 일단 저쪽으로 갑시다!"

건물은 의류 판매장 같은 곳이었다. 두 사람이 한 귀퉁이로 들어서려는데,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건물 안에서 들렸다.

"저것들이, 저것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나봐요!"
"제... 제길!!"

아가씨가 걸음을 옮겨 보려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어... 어떻게 하죠? 이제 어떻게 하죠?"
"옆으로, 옆으로 숨어요! 이 안으로!"

청년은 겁에 질린 아가씨를 급히 아무 문이나 열고 숨겼다. 하지만 그 곳은 옷을 갈아입는 좁은 장소여서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저기, 그쪽, 아니, 당신은요?"

아가씨는 그 청년을 부르려다가 머뭇거렸다. 여태껏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발견했다. 

"전 됐으니까 이 안에 있어요!"

그리고 청년은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그만 매장 안을 누비며 사람들을 찾고 있던 외계인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크와아앙!!"

외계인은 괴성을 지르면서, 가는 길에 방해되는 것을 모두 집어던지며 청년에게 다가왔다. 그만 얼어붙어 버린 청년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외계인은 청년 코앞까지 다가왔다.

"크르르르르르...."
"헉, 헉, 헉..."

청년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외계인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칼 같은 것을 쳐들었다. 공포에 질린 청년의 눈이 외계인의 칼날을 바라봤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죽음을 직면해 본 적이 없었다.

"크르르... 크와앙!!"

그 때, 칼을 쳐들었던 외계인이 괴성을 지르면서 칼을 내렸다. 그리고서는 뒤돌아서서 다른 사냥감을 찾아 쿵쿵거리며 떠나버렸다.

"헉, 헉, 헉, 헉..."

아직도 반쯤 넋이 나간 채 청년은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을 벌린 채 가쁜 숨만 내쉬고 있는 청년 뒤에, 문이 빼꼼히 열리며 역시 아가씨의 겁먹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2005년 5월 7일 아침 9시 반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학살은 끝났다. 그러나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했던 한 시간이었다. 외계인들은 그들이 말한 그대로, 한 시간 동안 지구상에 있는 4억의 인간을 학살했다. 이 재앙 속에서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있는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그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지난 5월 5일 대학살 이후로 죽은 사람의 수가 전 인류의 10분의 1에 육박했다. 

  “정말로 4억이…… 4억이 죽은 걸까요?”

  윤열이 넋나간 얼굴로 물었다. 곤히 잠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숙소 안에 비상이 걸렸고, 모든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쥐죽은 듯 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외계인들은 프로게이머들을 보호하고 있었고, 그들의 숙소도 지키고 있었기에 대학살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바깥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굉음과 비명소리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4억이 아니라 전 인류를 몰살시킬수도 있는 놈들이야. 나쁜 XX들……”
  “쉿! 바로 바깥에 있어!”

  성제가 참다못해 욕설을 내뱉으며 이를 갈자, 정민이 그것을 제지했다. 아무리 프로게이머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지만, 그들에게 적대하는 지구인은 모두 죽여버리라는 명령도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저게 뭐지?”

  창밖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이재균 감독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러자 선수들이 하나 둘 창가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인데요.”
  “이 쪽으로 오고있어요.”
  “숫자가 꽤 많은데……”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수들은 그들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헉……!”

  그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들, 커다란 피켓에 씌여 있는 글귀. 그리고 현수막에 붉은 글씨로 써 놓은 글. 그것들이 하나 하나 시야에 들어오게 되자, 숙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 둘 씩 그들 중에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2005년 5월 7일 아침 10시
서울특별시 삼성동의 한 골목


  민재는 손과 쇠파이프를 붕대로 단단하게 묶었다. 이렇게 해 두면 쇠파이프가 손에서 빠져나갈 염려가 없었다. 물론 팔이 부러져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민재는 이빨로 붕대 매듭을 묶으면서 SKT T1 숙소를 노려보았다. 드디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임요환 이 XX 나와!!!”
  “이 개XX 야,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너만 살겠다고 처박혀있어? 당장 나와 이 XX 야!!!”

  광기어린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T1 숙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이미 그들의 난동은 시위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위의 간판이나 진열장 등을 쇠파이프나 각목, 야구방망이 등으로 마구 부수며 폭도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에는 붉은 글씨로 <임요환 죽어라> 라고 씌여 있었고, ‘배신자’, ‘비겁한 XX’ 등의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임요환, 이 XX야!! 지금 바깥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너는 끝까지 잘난 네 몸만 사리면서 그 안에서 처박혀 있어? 그 안에 있는 다른 프로게이머 XX 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 임요환 너 이 개XX 는 우리 손으로 죽여버리겠어! 당장 나와 이 XX야!!!”

  민재가 야구방망이로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뒤이어 주위에서 “옳소!” 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이 쳐죽일놈아! 너는 인간이 항상 그랬어. 니가 잘난 줄 알고, 최고인 줄 알았지? 하지만 이게 진짜 네 모습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더러운 자식아!!”

  ‘그들’ 이 오기 전, 인터넷상에서 민재는 소위 말하는 ‘임까’ 였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임요환 선수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쇼맨쉽있고 스타성있는 플레이는 분명 매력적인 것이었고, 민재도 그런 임요환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몰상식하고 볼성사납게 그를 응원하는 광적인 팬들 때문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얼굴만 보고 쫓아다니는 여학생들, 다른 선수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팬들의 발언 같은 것 때문에 그만 정이 뚝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번 미운 털이 박히고 나자, 그가 하는 모든 경기와 말투,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고, 결국 지금의 민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태워라!”
  “죽여라!”

  흥분한 무리는 그들이 가져온 무엇인가를 들어올렸다. 짚으로 얼키설키 만들어서 십자가 모양의 틀에 묶은 인형이었다. 민재는 홰에 불을 붙였고. 인형의 가슴께에 횃불을 지져 불을 붙였다. 검은 연기를 내며 인형이 타올랐고, 타오르는 불길에 따라 폭도들의 기세도 더욱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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