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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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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5. 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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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11시 30분
서울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왜 그랬던 거죠?”

  여태껏 아무 말 없던 아가씨가 청년의 등에 업힌 채 질문했다. 아가씨가 발목을 다쳐서 거의 걸을 수가 없게 되어서, 지금 청년은 아가씨를 등에 업고 시청앞 광장에 임시로 설치된 응급 진료소에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학살이 끝나고 한 시간 뒤, 시청 앞 광장은 죽은 사람들을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후송하는 일로 무척이나 분주한 와중에 있었다. 그러나 말이 수습이지, 수없이 땅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을 트럭에다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그나마 형체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시신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뭐가 말입니까?”

  청년이 질문했다. 청년은 그 여느때보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그 외계인이요. 왜 그랬던 거죠?”

  아가씨의 목소리에 전에 없이 약간의 날카로움이 섞여 있었다. 다친 다리가 고통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청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어서였을까. 청년은 얼버무렸다.

  “글쎄요……”

  순간 청년이 멈칫 했다. 잘려져 뒹굴던 손 하나를 밟을 뻔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피해 걷기도 어려울 정도로 광장 여기저기에 신체들이 널려 있었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사람을 취하게 만들 정도로 진동하고 있었다.

  “멈춰봐요. 내려줘요. 대체 누구세요? 당신은 대체 누구죠?”

  아가씨가 그렇게 말하자, 청년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업고 있던 등을 조금 펴자, 아가씨가 등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더니 한 발로 비틀거리며 섰다. 청년은 뒤돌아서서 아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는 아가씨는 누구십니까. 어차피 서로를 모르잖아요.”
  “아니오, 틀려요. 분명히 그 외계인은 당신을 죽이지 않고 그냥 갔어요. 당신은 대체 누구죠? 대체 누구길래 그 외계인이 그렇게 그냥 지나간거죠?”

  그 때, 한 발로 서 있던 아가씨가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했다.

  “아앗!”
  “조, 조심하세요.”

  청년이 넘어지려는 아가씨의 어깨를 간신히 두 팔로 잡았다. 그 바람에 잠시 그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가씨는 빤히 청년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의구심과 의혹의 눈빛을 보고, 청년은 하소연했다.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서로 지탱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연약하고 무력한 사람입니다.”
  “아니오, 당신은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무슨 뜻이에요?”

  그러자 아가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청년에게 물었다.

  “당신, 프로게이머죠?”
  “……!”

  순간 청년은 당황한 나머지 아가씨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칠 뻔 했다. 그러나, 다시 두 손에 힘을 주고, 아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누군지 알고 있었나요?”

  그러자 아가씨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오. 하지만 역시 프로게이머가 맞군요. 뉴스에서 외계인들이 프로게이머들이 모인 숙소와, 그들 개인의 안전을 보호한다고 했잖아요. 또, 아무리 제가 스타를 모른다고 해도 터치패드로 스타를 가르쳐주시는 손놀림이 굉장하시던데요.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진짜 프로게이머이실 줄은 몰랐네요.”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처음부터 거짓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숨긴 것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욕을 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저를 욕하십시오. 저만 살아남으려고 도망친 비겁한 놈이라고, 당장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서 제가 맞아죽더라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자기 어깨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 청년을, 아가씨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

  많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오간 후, 갑자기 싱긋 웃으며 오른손으로 살며시 청년의 턱을 들어올리게 했다. 붉어진 청년의 눈시울을 보며, 그녀는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오, 오히려 당신이 더 이해가 안 가고,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으로 왔고, 여태 있는거죠? 당신에게는 훨씬 위험할 수 있는 이 곳에. 그것도 아직까지 말이죠.”
  “그건……”

  청년은 오른손 손가락으로 눈을 한번 슥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약속 때문이에요.”
  “약속이오? 누구와 약속하셨는데요?”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은 아니에요. 바로 제 자신에게 한 약속이에요.”
  “예?”

  아가씨는 의아해했고, 청년은 말을 이었다.

  “도망친 건 맞아요. 두렵고 무섭고 떨려서 도망친 것 맞습니다. 그 숨막히는 부담감, 공포, 강박관념…… 하지만, 이대로 숨어버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어요.”
  “그게……”
  “예, 그 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이렇게 모자를 쓰고 있고,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는, 마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양심의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누가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심판을 달게 받을 각오도 하고 온 겁니다. 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해해요. 그 마음. 아니, 이해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고통, 분명 작은 것은 아니었을거에요. 그냥 도망쳤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까지 했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청년은 다시 눈에 눈물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감추어왔고 말하지 못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고민과 괴로움이 한순간에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간신히 심호흡을 하면서 그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청년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약속은……”

  순간,

  “우와와아아아아!!!”
  “빠아아아앙~~~~~!”
  “이야아아아아!!!!”

  떠나가버릴 듯한 함성소리, 박수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등이 시청앞 광장 안을 뒤흔들었다. 청년과 아가씨가 놀라 광장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일제히 두 주먹을 하늘에 번쩍 치켜올리며 엄청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박수치며 환호하고, 계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광장과 그 주위의 각종 차들도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다.

  “야아아아아아아아!!!”
  “빠아아아아아앙---”

  그제야 두 사람의 시선이 전광판 쪽으로 돌아갔다.

  “저, 저도 저 아이디는 들어본 것 같아요……!”

  아가씨가 이렇게 말하자, 옆의 청년은 잠시 그 아이디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전광판에는 이미 씌여져 있던 아이디인
  
  1. [ReD]NaDa, 
  2. [Oops]Reach 

  그 밑에, 모든 사람들이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아이디가 반짝거리면서 빛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마치 빛이 나는 것만 같은 아이디였다.

  < 3. SlayerS_'BoxeR' >

 




2005년 5월 7일 11시 40분
서울 여의도 MBC 본사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출격으로 한창 들떠있던 분위기도 잠시, 외계인이 MBC 본사의 직원들에게 대결 장소와 장비 및 진행 등을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대결 장소는 바로 이 곳이다.”

  외계인들은 MBC 스튜디오를 대결 장소로 정했다. 가장 그들에게 익숙하고, 또 통제 가능한 곳이기에 어느정도 대결 장소로 예상되어진 곳이었다. 

  “사용되어질 컴퓨터는 우리 측에서 준비한다. 너희 인간들의 조잡한 컴퓨터는 믿을 수 없다. 시스템 문제의 가능성이 전혀 없고, 너희들도 익숙할 그런 컴퓨터를 준비해 두었다. 경기 스튜디오 내에는 우리측 선수 다섯, 인간측 선수 다섯이 입장되며, 처형을 담당할 우리측 외계인 둘이 입회한다.”

  처형 대목에 직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누구도 경기에 개입할 수 없으며, 만약 사소하게 의심되는 부분이라도 발견되었을 시, 경기하는 그 자는 즉시 패전처리해서 죽여버리겠다. 경기중의 모든 촬영 및 방송은 우리가 담당한다. 덜떨어진 인간들의 영상편집기술에 이런 것을 맡길 수야 없지.”

  그럼 대체 무엇을 하면 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마자 외계인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가 할 것은 너희 종족의 모습을 성실하게 중계하는 것 뿐이지. 전 세계로 인류의 패배와 절망을 잘 중계하는 거다. 단 하나의 희망에 목숨걸고 버둥거리는 너희 교만한 인간 족속들이 절망하며 죽어 나가는 모습이 기대되어 견딜 수 없군. 말해 두지만, 우리는 종족들을 절멸시킬 때 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해 왔다. 그리고 단 한번도 우리가 대결에서 져본 일이 없다. 살아 남은 족속들이 없다는 거지. 너희 인간들은 과연 살아날 수 있을지 기대해보겠다.”

  외계인의 말이 끝났다. 열심히 여러 가지를 받아 적고 있었던 PD는, 잠시 자기가 쓴 것을 내려다보고 있더니, 그 종이를 꾸깃 하고 구겨버렸다. 그리고 옆의 김동수 해설을 바라보았다.

  “가장 큰 일을 맡게 되셨습니다.”
  “그러게요.”

  김동수 해설은 머리를 긁적였다. 평소같으면 머쓱해서 했을 행동이지만, 지금 머리를 긁적이는 김동수 해설의 모습은 머리를 쥐어 뜯는다는 표현이 가까울 정도로, 깊이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중계해야 할까요?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 볼 텐데, 그들 중에는 스타크래프트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을 생각해서, 이미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설명하는 방송을 여러 차례 내보냈습니다. 물론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김동수 해설께서는 평소 하시던 대로, 그렇게 경기를 중계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혼자 중계하게 되는 겁니까? 다른 해설진이나 캐스터분들은 여전히 섭외가 되지 않고 있나요?”

  그러자 PD가 씩 웃었다.

  “아닙니다. 긴급히 한 분을 섭외했습니다.”
  “그게 누구시죠?”
  “예전에 온게임넷 스타크래프트 중계 캐스터를 맡으시던 분이십니다. 김동수 해설도 아마 잘 알고 계실텐데요.”

  그러자 동수가 놀라 물었다.

  “정일훈…… 정일훈 캐스터 말씀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현재 각 방송사 스타크래프트 중계 캐스터분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섭외가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우연히도 정일훈 캐스터와 연락이 가능했고, 고민하시다가 결정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십니다.”

  동수는 큰 부담을 덜었다고 생각했다. 혼자라면 너무 어렵지만, 노련한 정일훈 캐스터와 함께라면, 부담스러운 이런 상황에서라도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잘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전 인류의 운명보다 방송 중계를 걱정하고 있던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 정도로 프로 의식이 내게 자리잡힌 것일까 하면서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다시금 밀려들어오는 압박과 공포에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는 김동수 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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