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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 DEICIDE] 그들이 오다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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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g 2021. 7. 2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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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11시 55분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앞 서울광장 임시진료소


  “이쪽으로 눕히세요.”

  한 간호사가 이동용 침대 시트를 정리해 주면서 청년을 안내했다. 간호사는 땀에 흠뻑 젖어 있고, 여기 저기에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와중에서도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고 몇 번이고 돌보아 주었다. 참 열심인 간호사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저, 저는 부상이 대단치 않아서 침대에 누울 필요는 없는데요.”
  “괜찮아요. 이곳에 부상자가 많은 만큼 의료기기가 집중되고 있어서, 부족한 상태는 아닙니다. 어서 누우세요. 발목 이외의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아가씨가 사양하자, 간호사가 괜찮다며 청년을 도와 아가씨를 침대에 눕히며 물었다.

  “아니요, 다른 데는 없습니다.”
  “예, 다행이네요. 환자분 보호자 되시나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고요?”
  “아, 보호자는 아니고…… 다친 데 없습니다.”
  “그러세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선생님께서 오실테니 기다려 주시고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세요. 냉찜질팩이 남아있으면 가져올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간호사는 또다시 뛰어갔다. 아가씨가 그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분 참 친절하시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예. 그렇네요.”
  “당신도 참 친절하세요. 정말 고마워요.”
  “아니오, 무슨 말씀이세요.”

  청년이 정색을 하자, 아가씨가 말렸다.

  “아니에요. 정말 감사해요. 아까 그렇게 저 도와주신다는 것도 잊고 화낸 것 죄송해요.”
  “정말 아닙니다. 알고 계시잖아요. 저는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런 말씀 왜 하세요. 그리고 말씀 낮추세요. 조심하셔야죠.”

  청년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기색이 보이자, 아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라 말렸다. 청년은 그런 아가씨가 무척 고마웠고, 또 귀엽게 느껴졌다. 새삼스럽게 찬찬히 뜯어보니 꽤나 미인이었다.

  “왜요?”

  청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좀 길어진다싶자, 아가씨가 조금 민망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전 이만 가봐야 겠네요.”
  “가다니, 어디로요? ……아얏!”

  누워 있던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다 부은 발목의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조심하세요, 누워 계세요.”
  “가신다고요? 지금이요?”
  “예. 약속 지키러요.”

  그제야 아가씨는 청년이 두 번째 약속을 말하다가 말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 맞다. 두 번째 약속. 그게 뭔데요? 누구를 만나기로 하셨나요? 누군데요?”
  “누굴 만나기로 한건 아니지만, 누구 때문이기는 하죠.”

  그러면서 청년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청년이 가리킨 것은 전광판이었다.

  “누…… 누구……? 임요환 선수요?”

  아가씨가 묻자, 청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 사람이 출전 명단에 오른다면, 나도 함께 출전하겠다는게 제가 했던 두 번째 약속이에요.”
  “그…… 그런!”

  아가씨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한 질문은 그녀 자신이 생각해도 전혀 엉뚱한 질문이었다.

  “만약에…… 임요환 선수가…… 맨 마지막으로 출전했다면요?”
  “훗, 그 생각도 해봤죠. 은근히 출전 안하기를 바라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거나 할 수 없네요. 누가 저를 부르기 전에, 제 자신이 저를 부르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청년이 모자를 벗었다. 아가씨는 처음으로 청년의 얼굴을 밝게 볼 수 있었다.

  “이름이…… 뭐에요?”

  아가씨가 힘없이 물었다. 선량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프로 게이머란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인가. 나와 다를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젊은이일 뿐인데.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데.

  “제 이름이요? 음, 지난번에 제가 만들어드린 아이디 있죠?”
  “예. 여기 가지고 있어요.”

  아가씨는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었다. 꼬깃꼬깃 접혀 있었지만, 아직도 Black-Gean 이라는 글씨는 선명했다.

  “이걸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예……”

  청년은 그것을 건네받고서는, 또 한번 씩 웃었다. 하지만, 웬지 그 미소를 본 아가씨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청년은 펜을 꺼내들더니, 거기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종이를 접었다.

  “제 이름은 경기할 때 알려 드릴게요.”
  “왜, 왜요?”
  “제가 반드시 경기에 나가겠다는, 아가씨와의 하나의 약속이죠.”

  그러면서 청년은 종이쪽지를 아가씨에게 건넸다. 아가씨는 그것을 받아들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청년의 두 눈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볼 뿐이었다.

  “또 보게 되길 바랄게요. 안녕히 계세요.”

  청년은 그 쪽지를 아가씨의 손에 쥐어주고, 뛰어 나갔다. 그리고서는 아가씨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뛰어갔다. 아가씨는 멍하니 뛰어가고 있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손에 있는 종이쪽지가 생각났다. 아가씨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펴 보았다.

  “이게…… 뭐지?”

  종이쪽지에는 청년이 작은 글씨로 ‘Good Luck' 이라고 더 적어 놓았고, 중간의 알파벳 G를 B로 바꾸어 놓았다. 그게 전부였다.

<Good luck, Black-Bean>

  아가씨는 그 알 수 없는 종이쪽지를 손에 쥔 채, 다시 청년이 사라져버린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뛰어가던 그 청년의 뒷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2005년 5월 7일 오후 1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강민은 조금 당황해했다. 잠깐 들르려고 했던 프로게이머 숙소에 그만 발이 묶여버리고 만 것이다. 폭동 사태 이후, 외계인들은 프로게이머들을 T1 숙소에 구금하고, 모든 외출을 통제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여러 프로게이머들의 얼굴을 보니, 끈끈한 동료애와 함께 미안함이 엄습해왔다.

  “어떻게 하냐, 민아. 부모님께 가봐야 할텐데……”
  “아니야, 괜찮아. 사실 돌아갈 교통편도 불확실했고, 이렇게 너희들 보니까 더 좋다.”

  김정민이 걱정스레 묻자, 강민이 손을 내저었다. 꽤 긴 시간을 한솥밥을 먹었던 두 선수였다. 현재, 살아있는게 확인되었던 GO팀 출신 프로게이머는 김정민, 강민, 박태민, 전상욱 넷뿐이었다. 이 중 전상욱은 이벤트로 인해 먼 지방에 내려가 있는 와중에 사태가 터졌고, 서울로 귀환하고 있는 중 오늘 아침부터 연락이 두절되고 있었다. 때문에 현재 T1 숙소에는 김정민, 강민, 박태민이 있었고, 이 중에서 박태민과 강민은 각각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므로 건강한 선수는 김정민 한 사람 뿐이었다. 팀 전체가 살해당한 참극도 참극이었지만, GO팀의 기구한 불운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용호는 좀 어때?”

  요환이 물어왔다. 출전 결정 후 연습실에 줄곧 있다가 강민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온 그였다. 강민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애가 성격이 순해서……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이는데 정신적 충격이 큰가봐.”
  “민이 너는? 다른덴 이상있는 데 없고?”

  요환이 이어서 묻자, 강민은 자신의 왼손가락을 내려다보며 표정이 우울하게 바뀌었다.

  “이것 뿐이야. 나는 며칠만 있으면 낫게 될, 손가락이 삔 게 다인데…… 다들 너무 미안해.”
  “무슨 말이야. 네가 왜 사과를 해. 네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냐.”
  “아냐. 누군가 쓴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어. 자기 몸 관리하는 것도 선수의 책임이라고. 내 몸 관리 안해서 내가 다친건 내 잘못이지.”
  “아니다, 야. 그건…… 아픈게 왜 네 탓이냐.”

  요환이 강민을 달래자, 강민이 씩 하고 미소지었다.

  “고마워, 요환형. 근데 정민아, 정석이랑 진호는?”
  “……어?”

  갑자기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은 정민은 난감해했다. 정민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어…… 어. 정석이는, 출전했잖아. 그래서 지금 위에 연습실에서 윤열이하고 같이 둘이서 연습중이고……”
  “응.”
  “그리고 진호는…… 그러니깐……”

  정민은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옆에 있는 변길섭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길섭도 정민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정민이 무엇인가 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 순간,

  “쿵쿵쿵!”

  누군가 연습실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모두들 화들짝 놀랐다.

  “쿵쿵쿵쿵쿵쿵-!”

  그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요환이 벌떡 일어나서, 현관으로 다가가서는 물었다.

  “누구십니까?”
  “헉, 헉…… 나야 나.”

  이 목소리는……? 요환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너……!”

  그 곳에는 숨을 헉헉대며 한쪽 팔을 벽에 기대고 홍진호가 서 있었다. 진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요환의 얼굴을 보자,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중나온 사람도 이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참 인생 재밌다는 생각을 한 진호였다.

  “누구야?”
  “진호냐? 홍진호?”

  프로게이머들이 하나 둘 현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진호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다들 놀라서 제자리에 멈추었다. 진호는 그들의 얼굴을 한번 슥 돌아보았다.

  “미안해.”

  진호가 벽에 기대었던 팔을 내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요환이 진호의 어깨를 잡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야! 얼마나 기다렸는줄 아냐. 어디갔다가 이제오냐!……”

  요환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진호는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다가, 곧 자기도 요환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형……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됐어, 이녀석아. 괜찮어……”

  요환은 진호의 등을 토닥였고,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있는 주위 게이머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말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란 정말 멋지고 가슴아픈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진호가 요환을 불렀다.

  “근데 형.”
  “응?”

  그러더니, 진호는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한번 푹 쉬었다.

  “……형이랑 나도 참 어지간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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