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거 다 아는 나이정도 됐으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 다니는 ‘여돕여’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여돕여라니.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적여에 반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건가? 비록 내가 짧은 인생을 살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를 통달할 정도의 통찰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가 여자를 제대로 돕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여적여는 본능적으로 잘만 하거든? 누가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여자아이부터 할무니들까지 잘만 하는데 여돕여라는 것은 크게 눈에 띄지도 않았고 막상 있다고 해도 여적여의 비율이 아득하게 높았기에 그런 단어가 있을 필요가 있나 싶다. 예를 들어 우린 까마귀하면 검정색 까마귀를 생각하지 0.01% 있을지도 모르는 흰색 까마귀를 생각하지 않잖아. 그런데 흰색 까마귀도 있다면서 바득바득 우기고 까마귀하면 흰색 까마귀도 생각하라고 하면 뭐 그게 쉽게 되겠어?
물론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 원수라고 해도 생리대 빌려달라는 말에 거부하지 않고 평균 이하의 남자를 똘똘 뭉쳐서 퇴출 시키는 경험담을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보다 간호사의 태움 문화로 같은 여자를 죽이고, 미혼 여성을 속인 유부남의 아내는 남편에겐 관대하지만 피해 여성에게는 고소하겠다고 노발대발하며, 맘카페는 참 여교사에게만 유독 가혹해. 그치? 여교사 뿐이랴? 여성 네티즌은 여자 연예인이 정말 아니꼽게 바라본다. 또한 자칭 여돕여를 하고 있다는 인터넷 여초 카페들을 보면 차라리 ‘아리랑 증후군’이라고 부르는게 더 괜찮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버리고 간 전남친, 전남편에 대한 신상정보를 퍼트려 같은 여성에게 조심하라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라고 험담만 할 뿐이지 경제적인 도움, 자기 발전적인 도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여성은 거의 없다.
이게 모두 여자에게 있어서 연애와 결혼 생활이 생존의 영역일 정도로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동료가 될 수 있는 여성을 연애 경쟁자로만 보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지위와 경제력을 얻는 방법이 남자를 통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거든. 여자에게 있어서 쟁취라는 개념은 권력의 쟁취보다는 권력을 가진 남자를 쟁취한다는 개념이 더 높고, 또 본인들도 권력욕에 있어서 그다지 치열하지도 않아요. “내가 남자를 대려다가 먹여 살려야지” 같은 절박함이 없기 때문에 재산과 권력에 대한 욕심,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인내심이 그다지 크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피땀흘려서 이루어낸 재산과 권력을 어떤 여자는 남자 잘만나서 쉽게 얻는 모습을 볼 때, 분명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저 여자는 저리 편하게 얻느냐면서 박탈감과 질투심을 느껴 스스로 노력하는 게 큰 손해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다보니 자신과 같은 여성을 함께 으쌰으쌰해서 권력을 높여 나가는 동료가 아닌 권력 높은 남자를 두고 싸우는 경쟁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서 여돕여가 제대로 통하는 날이 오려면 여자가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생각하는 날이 와야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남자를 살려 먹이겠다“는 완전 역가부장제가 되어야지만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과연 이런 역가부장제에 찬성하는 여자가 뭐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 드네. 왜냐면 더치페이 하나에도 그렇게 불합리하다고 하던 여자가 본인이 집하고, 본인이 매달 생활비 주며 결혼 생활 유지하고, 본인이 먼저 고백하여 프로포즈하는 삶, 그것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하겠다는 여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입으로는 가부장제 폐지, 가부장제 철폐, 여자가 여자를 돕는 시대가 와야한다고 하지만 직접 쟁취하는 권력은 힘들고, 다른 여자들은 남자를 통해서 쉽게 권력을 쟁취하는데 나만 바보처럼 집적 얻으려는 것 같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합죽이만 되어버리는 상황. 이 사실에 어느 여성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상황인 것을 보니... 흠. 확실히 여돕여하고 있는 거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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