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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팬픽] [RM 팬픽] 동경 소년 - 1

팬질

by @blog 2024. 6. 3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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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길로 들어가고 싶다는 지망생들에게 힘 빠지는 조언 하나 하자면 실력보다 부탁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실력이라는 건 천재들의 영역이고 당신이나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살갑게 인사하는 법, 부담없이 선물 주는 법, 누구누구의 친구, 누구누구의 제자였다는 말이 훨씬 더 도움이 될테니깐. 왜냐하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봤거든. 나무는 없지만 나무 냄새가 진동하는 책의 숲에서 언제나 비밀이 흘러나왔고 그 서재의 주인 딸인 나는 숨 죽이며 그들의 비리를 엿들었고. 유명 베스트 셀러 작가, 교과서에 여러차례 글이 실린 알만한 작가, 대한민국의 자랑이라면서 신문 1면에 대문짝하게 실린 작가들까지 모두 책의 숲에서는 평등하게 비열하고 저열했으니, 그만큼 부탁의 힘은 위대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부탁의 힘을 알았던 나는 나의 입학을 탈락 처리했던 문창과 교수를 직접 찾아 뵙기로 했는데, 사실 말이 부탁이지 어거지 쓴다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 아닐까? 왜냐면 불합격을 인정하지 않고 무승부로 하자는 거, 삼세판으로 하자는 거 모두 패자들이나 부리는 고집이니깐. 하지만 내겐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내 얼굴을 쏙 빼 닮은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얼마나 많은 책을 출간했고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지 말한다면 칼로 협박 받은 사람처럼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불합격의 여부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내가 생각해도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지만 하도 업계가 좁다보니 이 방법이 통하는 경우가 많았고 밀담이 오고가던 작가들의 서재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화폐는 누구누구 아는 사람, 누구누구의 피가 흐른다는 말이니깐.

 
 
 

 
 

 
 
후...




  그런데 막상 만나기로 한 교수 집 앞에 도착하자 뛰는 심장, 바짝 말라가는 입, 그리고 내 입 속보다 더욱 삭막해보이는 아파트 현관문이 보이자 긴장감은 배로 늘어났다. 인간미 없는 현관문이라 게 이런 걸까. 왠만한 현관문에 붙여 있을 법할 전단지, 전단지를 붙었다가 떼어낸 스티커 자국조차 하나 없는 게 마치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처럼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였다. 거기다가 집 구조는 물론 채광까지 전부 똑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달리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무 명패까지 만들어 매달아 놓았으니, 아카이브. 기록을 보관하고 저장하는 곳. 하루의 임종을 앞둔 거룩한 해질녘 빛이 명패의 표면은 물론 칼에 파인 글자 속까지 스며드는 순간, 문이 펄컥 열리면서 그 집 주인이자 내가 만나기로 한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조교의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나의 등장을 어느 정도 예상한 눈빛이었고 그 눈빛에 부응하기 위하여 난 90도로 꾸벅 인사 후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리대학교 문창과에 지원한 김여주입니다.
...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 분명히 말했어요. 당신 탈락 처리하라고.
...
예비후보로도 받아 주지 말라고 했는데.



  독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깔끔하게 전달하는 작가이자 동물로 따지자면 단 한번의 깨뭄으로 상처와 맹독을 주는 독사같은 남자였지만, 사람 잘 못 봤다. 난 독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나무거든. 그의 말을 일절 무시하고 나하고 싶은 말을 밀어 붙이면서 이 신경전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했으니, 모든 맥락을 무시하는 나의 집요한 의지, 저는 소설가 ㅌㅌㅌ의 딸입니다.



아시죠? ㅌㅌㅌ 작가님.
...
그러니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라 혹시 우리 아버지를 아실까 해서요.
...
그러니깐... 제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고 얼마나 글쓰기에 관심이 많나 궁금해하실까봐서.
...
그래서...



  실수였다. 오히려 아버지의 이름 석글자를 이용하는 내 모습이 괘씸한 듯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안그래도 그와 나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는 감당하지 못 할 정도로 내려앉았다. 지구의 공기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느낌, 키 큰 남자가 만들어 낸 그림자만으로도 압박감을 느끼는 순간, 들어와요. 내 예상과 다르게 남자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현관문을 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사실 말투부터 눈빛까지 삐쪽빼쪽한 사람이 갑자기 친절하게 나오면 경계부터 하는게 맞지만 동물을 잡아가두기 위하여 덫 안에 달콤한 미끼를 메달아 둔 것처럼 글 좋아하는 사람들이 환장하는 미끼, 풍부한 나무 냄새가 나를 유혹했다. 책이 쌓인 서재 속에서 자라 온 내게 있어서 나무 냄새는 고향의 냄새였고 낯선집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가구, 나무 바닥, 소나무 분재, 그리고 책이 만들어 낸 친숙한 향기에 아무 걱정없이 들어갔다. 하지만 - 쿵 하며 강하게 닫힌 문소리와 덫의 주인의 가라앉는 목소리에 그곳이 고향땅이 아닌 늑대의 소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용감하네. 
...
제 발로 찾아오고.
 
 
 
 

 
 


 





*
 

 
 
 

 



  용감하다는 말, 어린시절부터 많이 들었었지. 사람의 완전한 성격이 형성된다는 6살 이전부터 난 뼛속부터 기고만장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사주에 칼이 많다고, 왼손에 하나, 오른손에 하나, 그리고 입에는 두개나 물고 있으니 사람 무서워하지 않는게 당연하다며 화장 진하게 한 박수무당이 말했다. 하지만 아저씨. 그런걸로 사람 성격을 정의내릴 수 있어요? 그러나 박수무당과 나의 아버지, 그리고 두려운 미래 때문에 사주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과학보다 사주가 논리적인 학문이었고, 선택론보다 운명론이 중심 철학이며, 불, 나무, 흙, 쇠, 물만으로 사람을 정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불이었다.



칼도 많은데 불도 많아. 칼이 녹는군.
그러면 딸이 가지고 있는 불을 식혀야 할까요?
못 식혀. 왜냐면 그냥 불이 아니라 산불이거든.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의 욕심이 어마어마해서 땅의 끝자락까지 뿌리를 내린다고. 그런데 그런 나무를 베어버리기 위해 칼을 들면 칼마저 녹여버리기 위하여 나무 스스로 불타는 꼴을 자처한다고. 다른 사람의 자비없이는 살 수 없는 매우 이기적인 나무, 거의 저주에 가까운 박수무당의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무당집을 나오자마자 무당 잡놈들이라는 욕과 함께 집으로 가는 내내 담배를 피우셨으니, 그 모습은 서재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기가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자 속타 하시는 모습과 닮아보였다. 아마 자기 딸 역시 자기 못지 않은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현장 르포를 쓰고 싶었지만 그게 잘 쓰여지지 않아서 그러시는 거겠지.



  그리고 박수무당 말대로 유명 소설가의 딸인 내가 잡은 펜촉은 끝이 녹아 내린 고물이었고, 그런 펜촉이 만들어낸 글은 찔러야 할 곳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고 적출해내야하는 암세포 대신 다른 장기에 흠집을 내는 초보의사의 수술와도 같았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 내 글이 쓰여진 A4용지 너머로 보이는 작문반 애들의 더럽게 일그러진 표정. 하물면 그 글을 쓴 나는 오죽하겠어? 분명 내가 쓴 글임에도 이질감이 느껴지다 못해 존재 이유 조차 없는 해충떼처럼 보이면서 어떠한 애착심도, 애정도 생길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불쾌해지는 시간이었다.





 


 


안녕.


  작문 수업이 끝나고 7시 논술 수업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던 그때, 나처럼 새하얗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나는 교복을 입은 타학교 남학생이 내 앞에 섰고 교복보다 더 하얀 종이 뭉치를 내미는 순간, 하아... 앞전 시간에 누적된 짜증 때문도 있지만 너무 익숙한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버섯머리 남자애는 진한 갈색 피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누가봐도 창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새빨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내리거나 도망치지 않고 꿋꿋하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그것도 미안함 반, 용감함 반을 섞은 어떤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지.



   나도 안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한숨 푹푹 쉬는 건 직업정신 없는 서비스직 여직원들이나 하는 막되먹은 행동이라는 걸. 하지만 내가 ㅌㅌㅌ 작가의 딸이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소설이나 시를 쓴 종이를 내밀고서 작가님에게 평가 좀 받아달라고, 자기가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 좀 확인 해달라고 하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그렇다. 심지어 나이 지긋하신 교장선생님까지 한자 섞인 시를 내밀면서 평가 좀 받아달라고 했을 때, 또 눈높은 아버지는 쓴소리부터 시작하면서 이딴 건 시도 아니라도 했을 때 그 사이에서 낀 나의 난처한 입장을 누가 알아주기는 했을까? 막연한 감정에 취해있는 글이 얼마나 별로고 읽는 것조차 고역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긴 알까? 자기의 호흡이 담긴 글이 자기 만큼 가치가 있을거라는 자만심, 오만함, 그리고 어리석음. 그게 어디 하루이틀이어야지. 그게 어디 한 두번이어야지. 



부탁이야.
...
엄청 열심히 썼어.



  붉은빛이 내려 앉는 시간대라서 그런지 안그래도 붉은 그 아이의 얼굴은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로 새빨갛게졌고 결국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행동, 자기가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글을 아버지에게 전달해주기로 했다. 그제야 안경 버섯머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학원을 떠났지만 두툼한 책가방, 다른 남학생과 다르게 둥글고 가지런한 버섯머리가 잔상에 오래 남더라고. 귀여워서 그랬을까? 아니, 동질감이었을지도 몰라. 터질 것 같은 가방을 매고 버스가 끊기는 시간까지 학원에 들락날락 거리는 그애나,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밤새도록 독서하고 필사하는 내 꼴이나. 이른나이에 성공하고 싶어서 안달난 애새끼들. 불쌍한 애새끼들.



  
 
 

 
 
 

 
 


와...
...
와. 진짜 말도 안돼!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는데 역시나. 바가지 머리에 모범생티 줄줄 흐르던 애는 모든 여자들이 로망으로 여긴다는 키 180cm의 남자로, 안경 때문에 가려졌던 흐리멍텅한 눈 대신 뱀처럼 길고 날카로운 눈매가, 머리도 그 촌스러운 바가지 머리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헝크러진 머리칼이지만 층이 단정한 것으로 보아 아마 평소에는 포마드 머리를 유지하며 자기자신을 빡빡하게 관리하는 사람이겠지. 탈피하는 정도가 아닌 돌처럼 단단한 알 속에서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부화하는 것처럼 과거의 그의 모습과 현재의 그의 모습에서 어떠한 공통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알에서 깨어난 짐승은 섬세하고 치밀하며 집요한 뱀,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뱀답게 겁먹은 쥐새끼의 냄새를 어찌도 그리 잘 맡았는지 내가 할 행동의 냄새를 미리 맡고서는 경고했다. 
 
 

 
 

 
 


본인이 먼저 늦은 시간에 민폐 끼치면서 왔잖아.
...
도망칠 생각하지말고 가만있어.

 

  물론 업계가 좁다 보니 언젠가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엄청난 간극 차로 만나게 될 줄이야. 널리고 널린 모범생에서 한 대학교의 교수로, 그러니깐 강아지인줄 알고 방심하고 키웠는데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처럼 오히려 내가 그애에게 자비를 받아야 할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역시 그 사실을 알고있었는지 채권자처럼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았지만... 사람 성격 어디 안변한다고 별 것 아닌 일에 얼굴 붉히던 남자 아이는 필요 이상으로 손을 부산스럽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결국 강한 척 하고 싶었는지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 피웠다. 



중학교 자퇴하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까지 나왔더라. 좋은 곳으로.
...
수능도 잘 보고. 그 정도 점수면 더 좋은 대학 지원할 수 있었을텐데.
...
아니면 실기를 정말 더럽게 못봐서 그러는 건가? 왜냐면 학과 특성상 실기를 꼭 봐야하잖아.



  비수 담긴 말에 내가 대답 할 수 없는 이유는 흡연자는 물론 비흡연자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한 금연 포스터 속 찡그리는 소녀처럼 코와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담배피는 그도 문제지만 그거 하나 참지 못하고 인상 쓰는 내 모습 역시 유난떠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사실 난 나의 형편없는 수술 실력에 유령이 되어 돌아온 환자를 당당하게 마주하는 뻔뻔한 의사처럼, 단순 의료사고였고 간호사탓이라고 핑계대는 양심없는 사이코패스스처럼 강하게 나오고 싶었지만 담배 냄새에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과 술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것, 그것은 내가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는 본질의 영역이었고 내 안을 뜨겁게 만들어 주는 것을 난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술담배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었으니, 그런면에서 난 소수자였다.
 


알았어. 끌게. 그러니깐 손내려.
...
내리라고!
콜록.
...
콜록 콜록!



  나만 문제라고 생각하니? 너도 문제야. 불에 타기 쉽고 냄새 배기 쉬운 책과 나무 가구 속에 살면서 가장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는 너도 어지간히 미친 놈이라고. 이 집에서 익숙한 향기가 났던 이유는 서재에서 담배 뻑뻑 피워대는 아버지처럼 납득 안 가는 행동만 하는 집주인 때문이었고, 그런 꼴초들은 담배 냄새 배인 책 뿐만 아니라 사람 미치게 하는 글도 잘 썼으니, 이건 모두 뱀 때문이다. 그가 절반도 못피우고 꺼버린 담배 끝에서조차 뱀 같은 연기가 스믈스믈 피어오르는데 그것을 입안에 통채로 넣으면 어떤 기분이겠어. 하다못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감각을 지닌 천재가 민감한 목구멍 속으로 섬세한 뱀들을 잔뜩 풀어 놓는다면.


  아빠. 골초든 애주가든 목구멍 안으로 뜨거운 것을 집어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천재라고 왜 말 해주지 않았어. 잔불까지 꺼지길 바라며 그렇게 짖밟았던 애가 다시 타올랐으니 내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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