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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팬픽] [RM 팬픽] 동경 소년 - 2

팬질

by @blog 2024. 6. 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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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콜록! 아 진짜 짜증나네!
...
콜록! 어떤 미친놈이 학원 화장실에서 담배 펴? 
강사가 폈겠지.



  다시는 만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버섯머리 남자애와 같은 시간,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먼저 만나자며 종이 뭉치 한켠에 적힌 번호로 연락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런데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학원 화장실에서 담배를 핀 미친놈 때문에 복도는 물론 계단에서는 도무지 이야기 할 수 없었고 대신 통유리 때문에 무드등을 틀어 놓은 것처럼 주황빛이 넓게 감도는 사무실, 공실이 된지 1년도 넘은 한원 윗층 빈 사무실에서 밀담을 나누기로 했다. 물론 그곳도 테이블이며 의자며 먼지가 쌓여 있어서 이야기 하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오고 가지 않았다는 증거로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으니 오히려 비밀이 보장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저... 그래서 작가님이 뭐라고 하셨어?


 
 
  지난번처럼 깔끔하게 고데기질이 된 그 아이의 머리칼 위로 주황빛이 내려졌지만 확실히 전보다 덜 빨게진 얼굴을 가지며 내게 물어보았고, 난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천히, 그러니깐 최대한 오래도록 뜸 들이다가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잘썼데.
그러고 끝?
응.
...
...
그래. 뭐 좋기는 한데...
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거 엄청난 칭찬이야.
...
엄청난 칭찬이라고. 너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사람마다 사랑한다는 말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잘했다는 말의 무게 역시 다르다는 사실을 통찰력 부족한 너가 알리 없지. 아니. 반드시 알지 못해야 한다. 너는 나보다 인과관계를 읽어내는 힘이 부족해야하고 사유의 깊이도 나보다 얇아야만 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뱀처럼 어떤 깊은 생각에 빠져서도 안되고, 복잡한 감정선과 변덕스러운 마음, 그리고 예민한 성격을 가져서도 안돼. 감각이 극도로 날카롭게 서는 외로움에 자주 노출되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소한 부분에 크게 반응하는 모습을 가져서는 안돼. 천재로서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는 소리야. 하지만 딸에게 조차 칭찬 안하기로 유명한 천재 작가의 냉정한 감정을 찌른 주인공은 다른 애들이 집착광공, 조폭물 팬픽을 보고 있을 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필사해오던 여자애가 아닌,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문학적 재능이라는 수치가 올라가지 않을까 굳게 믿고 있었던 소설가의 딸이 아닌, 어떤 평범한 범생이의 글이었다. 




  진짜 지랄맞네. 앞뒤가 안맞잖아. 노력의 대가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디 콩쿨 대회가 열렸는데 그날만을 위하여 매일 연습하던 음대생이 꼴등하고 깡촌 산골마을에서 취미로 음악하던 소년이 대상을 탄 것처럼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손이 물감에 찌들정도로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지만 누군가가 잠결에 그린 그림이 선택 받은 것처럼 심사위원의 기질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도 아니고 산골 소년도 아닌, 나의 기질을 의심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더라고. 난 절대 아니었던 거야. 천재도 아니고 어중간한 작가로서의 기질 자체가 아예 없었던 거야. 그리고 그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은 그 아이가 든 날카로운 칼이었고 과연 그 칼은 불 때문에 끝이 녹아내린 고물이 아닌 비수처럼 날이 서 있는 칼, 그리고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처럼 영원히 빛났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그애의 집요함, 짜증섞인 나의 한숨 소리에도 꺾이지 않는 고집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리하기 힘든 뱅머리에 흐르는 오차없는 윤기, 그리고 그 완전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읽어냈어야 했어. 종이뭉치도 아버지에게 건내주지 말았어야 했다. 분명 내가 봤을 땐 붕뜨고 뜬구름 잡는 글인 줄 알았는데 나의 문학적 시력이 떨어져서 흐리게 보이는 것 뿐 시력 좋은 아버지는 무척 반가워하셨거든.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여 감정을 나누는 사람과 달리 촉각과 후각으로 말하고 듣는 뱀처럼, 남들은 가지지 못한 이색적인 감정선을 가진 또 하나의 천재를 찾아냈으니 아주 얼싸 안고 싶었겠지. 딸은 안중에도 없이. 조건에 맞지 않는 행성을 퇴출시키면서.

 
 
 
 

 
 
 

야.
응?
너 나랑 같이 글 써볼래?
글? 어떤 글? 소설? 시?
아니 그런 글 말고. 취미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글 써보자고.
...
학교도 그만두고 작문에만 매진해보는 거야.



  그때의 난, 아마 재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쉬지않고 불타던 나무가 일순간에 식어내리면서 풍기는 연기 냄새에 질식해서 정신이 이상해져버린게 분명하다. 누구 하나를 죽여야만 분이 풀릴 것 같은 억울함과 불리한 싸움을 역전해보려는 최후의 발악. 화전민들이 일구어 놓은 밭에 새싹이 자랐는데 그 새싹 하나하나를 밟아죽이는 못된 심보. 그것도 아니라면 해가 넘어가는 시간대다 보니 그림자가 길어지니깐 나쁜 생각도 길어져서 그런 걸까. 그때의 난 굉장히 본능적이었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나빴던 것 같아.



아버지가 칭찬할 정도면 너 진짜 재능 있는거야. 천재일지도 몰라.
천재? 천재는 무슨.
왜 그래. 너의 능력을 왜 부정하는 건데.
아니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하지 않을까? 중학교라도 졸업해야지. 
그때면 너무 늦어.
...
빠를수록 좋아.
...
부모님 설득시키려다가는 끝도 없어.




  느껴지니? 니 마음 깊숙한 곳까지 뿌리 내리는 나무의 의지를 말이야.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뱀굴에 까지 뿌리를 내렸고 몇몇 뱀들은 독니를 드러내며, 정말 자퇴하면서 까지 글써야 돼? 라며 경계했지만 나무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았기에, 또 너무 오랜시간동안 자신의 기질과 맞지 않은 공부에 지쳐있던 너였기에 결국 뿌리 내리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입으로는 한번 더 생각해보겠다고, 부모님과 상의해봐야겠다고 하지만 난 다 알아. 결국 너하고 싶은 대로 할거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렴. 그 나무가 그렇게 나쁜 나무도 아니잖니. 보기만해도 칙칙해 보이는 곳에 난생처음으로 구멍을 뚫어줘서 햇빛을 선사해주었는데. 뱀들 역시 깊은 땅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이 좋아서 빛의 결을 따라 똬리를 틀었는데 뭐. 물론 머지않아 싹다 불타 죽을 것을 난 알고 있지만 말이야. 왜냐면 그 빛은 땅 속 끝까지 뿌리를 내리고 하늘 끝까지 타오르는 이기적인 나무가 만들어낸 의도가 다분한 빛이었기에.







*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어떻게 했더라.
...
어떻게 했냐고. 묻고 있잖아.
자퇴하고 월세집 구했지.
아니지. 나만 자퇴했지. 월세집도 내 돈으로 한 거고. 너는 쏙 빠져버리기만 했잖아.
...
그것도 하루만에 갑자기 글쓰기 싫다면서. 잠시 예술병에 걸린 거 같다면서. 그리고 너도 예술병에 탈출하라면서.
...
사이코패스 살인마도 너보다 착했을거다.
 
 


  화려하지만 온기 하나 없는 야경. 그 야경을 어줍잖게 흉내내는 마루 바닥 위의 빛들. 참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만들어진 너의 담뱃불. 그리고 울분이 담긴 연기를 잔뜩 풀어내는 너. 그 연기는 마치 뱀처럼 나무 바닥, 나무 가구, 그리고 ㅌㅌㅌ작가의 추천사가 쓰인 책 속으로 숨어들었고 내게 다가오는 뱀도 있었지만 밤바람이 부는 창가 바로 옆에 서 있었기에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맡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질투심에 가려졌던 동경하는 마음이 나의 기질을 바꾼 걸지도 모른다. 거실 한켠에 빈 위스키병을 가지런히 세워두고 술이든 담배든 뜨거운 것을 환영하는 차가운 몸으로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어떤 이상한 정의감에 사로잡혔어.
...
잘난사람은 좀 덜 잘나야하고 못난 사람에게는 잘날 기회를 주는 것.
...
아니면 중2병에 걸려서 그런 걸지도 몰라. 왜냐면 우린 그때 중학생이였잖아.
좋은 변명이네.
그래 맞아. 변명이야.
...
하지만 사과할 자격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어.




  질투라는 감정이 오랜시간동안 인간을 숙주 삼을 수 있었던 건 질투하고 있을 땐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현병이랑 같은 맥락인 거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일루미나티의 감시와 삼중 뇌파, 레이저와 마인드 컨트롤 무기가 진짜라고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깐 그 병은 치료되지 않고 숙주와 함께 오래도록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거다. 다행히 질투병에서 벗어난 나는 그때 질투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이유, 야경 빛에 간신히 보이는 그의 윤곽선에 어떠한 변화도 없는 이유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질투병 고백을 들어 온 천재라서 그런거겠지. 그래서 나 역시 뻔한 사과는 그만두기로 했고 그렇게 우린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말도 안하고 눈빛도 주고 받지 않는 반수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깨어난 것도 잔 것도 아닌 것이 마치 꿈속에서 그를 만난 느낌이더라고. 그만큼 그는 내게 너무도 먼 존재이자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만 가봐. 나 많이 피곤해.
...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깐 가라고.
...
그리고 아버지한테 잘 좀 해드려.
...
스승님이 너 걱정 많이 하시더라.




  분명 뱀의 모가지를 잘라 글과 관련된 모든 것에 얼씬거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니깐 기질에는 맞진 않지만 안정적인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 모범생 행새할 줄 알았는데 그가 되살아났던 이유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더이상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딸의 이유를 찾다가, 자신과 같은 감정선을 가진 아이를 만나보고 싶어하다가, 아니면 정말 신이 도와준 건지 모르지만 골방에 틀여박혀 혼자서 우는 아이를 발견한 우리 아버지. 분명 나도 아버지를 쏙 빼닮은 속쌍꺼풀을 가지고 있지만 피 하나 섞이지 않는 그 아이의 속쌍꺼풀에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며 둘은 오래도록 이야기 했겠지. 딸에게는 절대 느껴지지 않았던 거리감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말투, 불꺼진 방안에 남녀의 표면만 비추는 야경과도 같은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둘이 언제 만났던거야. 
알아서 뭐하게.
혹시 아버지 때문에 날 도와주는거야?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인맥 같은 거 들먹이게.
그러면 왜 도와주는 건데.
...
아까는 절대 받아주지 않겠다면서.
가.
...
가라고.




  한 번 속으면 실수, 두 번 속으면 내 책임이다. 나무향에 속아 덫에 걸린 나를 풀어주는 사냥꾼의 친절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혹시 내가 아버지의 피 절반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는 거니. 딸의 죄를 대신해서 사죄한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친절, 그것은 어느덧 기특함이 되고 자랑스러움이 되고, 애정이 되어서 사제 관계가 된 거 맞지? 확실히 앞뒤 꽉꽉 막힌 글만 쓰던 딸과 달리 날카로울 때는 한없이 날카롭고,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럽게 사람의 마음을 휘감는 그 아이의 가능성에 아버지는 마음이 더 갔을 것이다. 거기다가 담배는 또 어찌나 잘 피던지. 학원 화장실에서 담배핀 거 너지? 탈취제 뿌리면 담배 냄새도 같이 사라질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너하고 우리 아버지 밖에 없거든. 발작하듯 기침하는 어린 딸과 다르게 능숙하게 담배 피는 성숙한 소년에게 아버지는 더 가까움을 느끼셨고 어느덧 아끼는 제자가 성인이 되던 날, 한동안 비밀이 오고 가지 않던 책의 숲에서 밀담이 오고갔을 것이다.


 
  인지도가 조금 떨어진 지방대학교이지만 교수가 된다면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우선 시간 강사로 들어가면 곧 담당 교수님이 병환으로 입원하실테니 그땐 너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피보다 진하고 딸과 아버지라는 사이보다 깊은 둘의 관계를 볼때면 역시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 방식이 아닐까? 단어를 선택하는 생각 구조, 문장을 끌고 나가는 정의관, 선택, 그리고 습관과 운명.



  내가 천재의 운명에 빗겨나간 사람이기에 슬프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너와 대화 해보고 싶어서 그래. 이건 이성적으로 너를 좋아해서가 아닌 사람인 이상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천재에 대한 동경이야. 만약 그때 너가 잡은 월세집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우린 어땠을까. 조금만 더 오래 있었다면. 좁지만 채광이 좋았던 그곳에서 진심으로 글을 썼더라면. 이기적인 감정에 가려졌던 진심을 좀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아마도 우린.




  


*

 
 
 

 
 


  위대한 부탁의 힘 덕분에 불합격 지옥에 떨어졌던 나는 예비후보라는 연옥으로 올라왔지만, 생각보다 연옥에서 사는 죄인들이 많더라고. 예비 후보 번호 13번. 그러니깐 합격까지 했는데 이해못할 변덕심에 마음 바꾸는 13명의 미친 사람이 있어야지만 내가 입학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판도라의 상자 속 재앙이 다 떠나고 희망만이 마지막에 남은 이유, 희망은 재앙중의 재앙이다.



  이참에 글 같은 거 때려치고 중소기업 경리직으로 취직이나할까 생각이 드는 그때, 최대한 글과 멀어지는 곳에 무관하게 사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드는 순간, 달리는 고속 버스에서 보이는 시골 야경, 그러니깐 사방이 어두컴컴한데 그 어둠을 찌르고 뻗어나가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보고 괜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내가 쉽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먼 곳까지 내려와 그를 만나지 않았겠지. 본능인 거야. 나무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빛처럼, 날 것의 손톱처럼 날카로운 것을 사랑하는 건 나의 보완심리라고. 시골에서 사는 가축보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을 사랑하고 나이먹고 온순해지는 사람보다 예민함을 잃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며, 주체못할 섬세한 감각에 누구보다 힘들어 하는 사람, 기민한 마음에 사춘기 소년같은 사람을 난 사랑한다. 그러기에 한번만 더 너를 동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연이 닿을 수 있다면 나 그때는 너에게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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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고속 버스 안에 한줄기의 빛같은 핸드폰 불빛이 반짝이며 예비 후보 13번에서 12번으로 바뀌었다는 문자가 왔다. 세상은 넓고 변덕심 심한 사람이 많다는 신의 계시, 그만큼 기적의 확률도 높다는 소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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