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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적인 것을 신파적이게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 (오징어게임과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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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그거 암?
12월 26일에 오징어 게임2가 나온다는 소식 말이다.
참 출시일도 재미있어. 12월 26일이라니.
마치 예수 탄신일 다음날에 나오는 것이 성기훈을 예수 그리스도로,
본인이 희생할 지 언정 악마들이 만들어놓은 죽음의 게임에서 구원해주겠다는
메시아처럼 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
실제 오징어게임2의 주요 스토리는 상금 456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인 게임속으로 들어가서 그 게임을 막으려는 성기훈의 이야기이고,
동기 역시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 모습 그 자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징어게임2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는 이유 역시 이것이다.
성기훈이 많은 돈을 가지고, 또 오징어 게임의 위험성을 너무도 잘 아는데
또다시 오징어 게임을 참가하는 동기가 공감이 안간다는 것이다.
자칫 “인간은 모두 소듕해!” 라는 인간찬가로 끝나는 어떤 오글거리는 영화처럼,
화기애애한 저녁 밥상에서 며느리가 입덧을 하며 임신 소식을 알리고
다같이 기분 좋아지는 주말 드라마처럼 신파적일 수 있으니깐.










그런데 솔직히 말할까?
원래부터 오징어게임1부터가 신파적인 드라마, 그것도 대단히 신파적이었다.
보통 신파의 장치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속썩이는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을 기다려 주는 힘없고 순진한 어머니’ 클리세인데
주인공인 성기훈은 물론 상우 역시 어머니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는 못난 아들로 나온다.
그 외에도 곳곳에 신파의 느낌이 나는 장면이 많았는데
강새벽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는 지영이와
기꺼이 희생하는 지영이에게 구슬을  던지라고 소리치는 새벽의 모습,
상우에게 이용 당하고 상우형이라 구슬프게 외치는 알리의 모습,
죄책감으로 인해 돈을 단 한푼도 쓰지 않고 노숙자가 된 성기훈의 모습도
차암 신파적이다.
차암 교과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게임이 신파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신파를 신파처럼 느끼지 않게 만들어 주는 요소를 잘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파를 신파처럼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
주말드라마적인 요소를 넣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건 바로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고
사람을 쉽게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감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분노와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다.
즉 오징어게임은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리얼한 ‘공포’와
틈틈이 게임을 방해하는 빌런 + 이러한 상황으로 밀고 가는 세상 +
그 절박한 사람을 이용하는 오징어게임 주최자들에 대한 ‘분노’ 덕분에
사람들은 감정 이입하면서
신파 범벅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파적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사실 오징어게임보다 훨씬 더 일찍 놀이터 놀이를 데스게임으로 접목시킨 영화가 있다.
그건 바루 2014년에 나온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인데 이 영화가 오징어게임만큼
마음의 울림을 주지 않는 것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데스게임 때문에 ‘공포’는 주었지만
분노, 즉 세계과 자신을 구별지어주는 신념과
그로 인한 충돌로 오는 분노가 없어서 그렇다.
이 미친 살인게임을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성기훈의 분노가
<신이 말하는 대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거지.
그러는 와중에 일본 특유의 큰판을 짜기 위한 억지성
+ 신파적
+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만화적 요소
+ 말하고 싶은 메세지가 너무 명확하다보니
이 영화를 만든 작가 안에서 내가 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한 반감 때문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내가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그 누구보다 기다렸지만,
그러니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것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목빠져라 기다렸지만
실망한 이유 역시 <신이 말하는 대로> 영화처럼 공포는 있지만 분노가 없어서 그렇다.
그래 그래.
뭔가 잔인한 장면은 많이 나오고 자칫하다가 나락가버릴 수 있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이 공포를 준다고 쳐.
하지만 신념이 부딪힘으로서 오는 분노는 커녕
자신의 생존까지 위협당하는 험난한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동료애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주인공이 왠말이냐고요.







“너를 달로 보내주고 싶엉...” 어쩌고 저쩌고 하는 모습은 신파를 넘어서 
둘이 꽁냥꽁냥 사랑 전시 밖에 되지 않았고 멋져 보이지도 않았다.
분명 사이버펑크 2077 게임 스토리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온갖 똥꼬쇼 하는 v의 여정과
영혼마저 통제하려는 기업을 향한 조니실버핸드의 분노가 다시 부활하면서
신파 제로 스토리를 만들어 냈는데
어느 누구는 사랑을 위하여 대신 희생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빙의한다라...
그냥 어이가 없었던 거지.





몇몇은 엣지러너의 짧은 러닝타임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러면 모든 단편 영화는 장편 영화보다 딸려야 하는 거 아닌가?
짧은 시간 때문이라는 걸 안다면 등장인물을 팍팍 줄었어야 했다.
어차피 짧은 등장 후 고인이 될 필라, 도리오, 메인을 제외 시키고
영악한 루시와 베테랑 솔로인 레베카, 패러데이와의 관계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주 무슨 예수 그리스도님이 나선 것도 아니고 데이비드의 저 재미없는 신념, 사랑,
아무튼 데이비드와 루시가 서로 연민하는 사랑방식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실망도 크고 말이지.






아무튼 오징어게임2는 과거 오징어게임1과 같은 분노와 공포를 잘 살려서
소화 잘되고 맛있는 신파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주인공처럼 “너의 삶은 ^^ 나의 행복이얌^^”라고 하지는 않겠지?
예고편을 보니 장동근과 함께 어머니가 돈때문에 의해 게임에 참가하는 모습에서
다시한번 진하디 진한 신파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는데
과연 이번에도 부담감없는 신파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조니실버핸드는 사이버펑크 2077을 통해
두번째로 아라사카에게 분노의 공격을 감행하여 몰락시켰는데
과연 성기훈은 오징어게임에 두번째 참가함으로서 게임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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