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이상한 의무감을 가지고 그 단체의 속성과 정반대의 정의를 설파하는 사람 있다.
예를 들면 불교 행사가 있는 곳에 찾아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이라던가,
고깃집에 꾸역꾸역 찾아가서는 동물은 생명이라고 외치는 사람이라던가 말이지.
인터넷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딱봐도 여자들만 모일법할 사이트에 와서는 "2030대 여자들이 망한 이유,
이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매달리는 이유." 같은 글을 쓰면서 비추천을 한가득 받고,
또 남초 사이트에 꾸역꾸역 와서는 "한국 남자들의 문제점, 해외에 인기없는 한국남자."같은 글을 쓰며
나쁜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뭔 줄 아는가?
그렇게 욕을 먹던 글이 의견이 맞는 남초 사이트나 여초 사이트에 딱 들어가는 순간
'필력이 좋은 글, 통쾌한 글, 진짜 맞는 말만 한다.'라는 명문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내가 가장 흥미있게 봤던 칭찬이 바로 '필력이 좋다.'라는 평가인데
흔히 말해서 우리가 말하는 필력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통하는 건 줄 알았거든?
그러니깐 남녀노소 누구나 필력 좋은 글을 보고 필력 좋다고 평가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었다. 필력은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그럴만도 하지. 누군가에겐 오글거리는 웹소설이지만
독자에겐 고전 어떤 명작보다 뛰어난 스토리와 필력으로 무장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글을 내가 한두곳에서 본 것이 아니거든.
그와 동시에 남자들은 전반적으로 필력이 떨어진다면서 여성 작가가 많은 한국 문단을 예시로 들면서
문학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어디 페미나치들이나 할법할 소리들도 봤고 말이지.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필력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닌
주관적으로 요소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필력은 외모와도 같은 거다.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 배우같은 경우는 첫 인상을 보고
구수하게 생겼다, 일반인처럼 생겼다, 남자주인공하기에는 좀 그런데? 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리즈를 거듭다면 거듭날수록
류준열이 잘생기고 멋지다라는 평가가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지.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주관적 요소가 주를 차지하고
주변 분위기에 의해서, 전체적인 스토리에 인해서 언제든지
호 또는 불로 바뀌기 쉬운 것,
여자들이 자기들 역시 이쁜 여자 좋아한다고 하지만
친분이 있다면 못생긴 것이 귀여운 것이 되고
사이가 좋지 않다면 예쁜 것이 너무 튀어보이는 얼굴이 되는 것처럼
필력은 평가하는 사람의 주관이 크다.
그렇다면 이제 어느 사람에게는 불쾌한 글이지만
어느 사람에게는 필력 좋은 글이라고 칭송받는지 알겠지?
얼마나 더 과감한 단어를 사용하고 독자의 마음을 뒤흔드느냐에 따라
필력으로 점지어지는 것이고,
필력이 평가 되기 이전에 스토리가 독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즉 필자가 말하는 의견이 독자와 어느정도 일치해야지만
필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응 수 있으니,
필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야기,
이야기보다 중요한것은 바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견이라는 사실.
글의 신이 재림해서 필력이 뛰어난 글을 써도 이야기가 별로면 별로고,
이야기가 아무리 좋아도 필자의 의견이
독자의 의견과 반대되면 필력도 이야기도 모두 별로라며 평가받는다.
주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문체가 아무리 좋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다고 평가하는 글과
읽지도 않는 글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대표적인 예 두가지를 꼽아보자면
우리는 모두 신의 구원과 사랑과 규율로 평화를 찾아야한다며 구구절절한 문장으로 쓰여진 전도지,
저는 10년동안 연예인에게 조직 스토킹과 해킹을 당해
눈물이 나고 손발이 벌벌 떨리고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낀다는 과대망상 및 정신 분열증 환자의 글.
알지 모르는데 그들의 필력, 단어 선택력, 결코 나쁘지 않다.
한참을 읽고 나서야, 아... 이거 그 내용의 글이구나, 라며 깨달아버리는 독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을 보고 우리가 필력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아예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필자의 의견을 결코 사랑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내가 필사를 싫어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글이라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의견, 그리고 그 의견에 맞는 이야기와 그에 맞는 문체로 써야하는데
필사를 통해서 필력부터 만든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운전공부를 하고 운전면허를 딴 후 자동차 매장으로 가 자동차를 사야하는게 맞잖아.
그런데 필사를 한다는 것은 우선 오토바이든 트럭이든 사고 싶은 것을 산 후에
운전공부는 나중에 하겠다는 것과 같다.
내가 매장에 가서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닌
옷을 먼저 고르고 그 옷에 맞도록 살을 빼고 살을 찌고, 키높이 수술을 한것과 마찬가지라니깐?
만약 열심히 소설 필사를 하고 소설과 어울리는 문체를 가졌는데
이제보니 난 동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더 맞네?
그때가 되면 동화도 아니고 소설이 아닌 짬뽕이 되어버리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력 그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둘 중 하나겠지.
하나는 높은 필력이 무조건 좋다는 필사 장사치,
나머지 하나는 필력 하나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매우 자만스러운 사람.
그리고 이런 자만스러운 사람이 흔히 보이는 특징이 바로
글에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미사구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래. 이쁘장하고도 위대한 언어로 문장을 마구 꾸미는 사람 말이지.
그런 사람이 쓴 글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잘 안잡히고
말을 빙빙 돌려서 말하며, 필요에 맞지 않는 사적인 이야기,
논점을 많이 벗어난 구구절절한 이야기 때문에 손이 가지 않은 글을 만들어내곤 한다.
뭔가 똑똑해보이고 싶고 감성적으로도 보이고 싶으며,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여 욕먹기도 싫다는 욕심에 탄생한 욕심 많은 글.
누군가에게는 자꾸맠 스마트폰을 보고싶게 만드는 글.
하지만 이 글 역시 필자의 의견과 독자의 의견이 딱 맞아 떨어진다면
그 필체는 더이상 지리멸렬한 필력의 글이 아닌
미성숙하지만 매력있는 글이 된다.
이처럼 필력이라는 것은 필자의 의견에 달려 있고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것,
내 생각을 그가 대신 말해줬다는 만족감과 통쾌한 감정이 들 때
독자들은 필력이 좋구나 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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