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더 이상 본능을 미덕 삼아 글을 쓰고 싶지 않아. (웹소설을 포기하게 된 이유)

에세이/나의 작문 일대기

by @blog 2025. 1. 23. 19:21

본문

 
 
 
 



 


 
  웹소설 자체를 모조리 모욕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한때 나 역시 웹소설로 열심히 글을 썼고 좋은 결과도 얻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립다는 생각? 신기하게도 전혀 들지 않은 거 있지?  왜냐면 그곳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자, 타액, 밤꽃냄새, 땀냄새가 진득하니 풍기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뒤엉키다 못해 아주 노골적인 곳이거든. 그러니깐 어떤 숭고함의 반대편의 서 있는 생존만능주의의 현장이자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어떻게 보면 짐승적이기도한 전장, 전쟁터 그 자체이니깐.


  오해하지마세요. 한번 더 말하지만 저 역시 과거에 웹소설을 썼던 사람이었습니다. 작가님 소리를 듣고 왜이리 전개가 지지부진하냐고, 우리 주인공 너무 괴롭히지말라는 독자들의 댓글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연재 사이트를 통해 전자책 계약도 했구요, 허접같은 표지를 들이 밀고서 빨랑 늬가 허락해야지 출판을 하든 말든 한다고 해서 끝까지 그 표지는 안 된다고 땡깡 부리다가 뭔 교보문고 홍보이벤트에 내 글이 채택되어 다시 화기애애 사이가 좋아졌답니다 ^^, 라는 에피소드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내 작문 인생에 있어서 '공모전 수상'이라는 엄청난 운을 필요하는 방법 외에 순수 노력으로 꼬박꼬박 글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이 웹소설이었고, 지금도 역시 글이라는 매체 중에 힘과 권력과 대중성 및 장례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웹소설이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르 문학이라고 할 수 있곘다. 무엇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순수문학에 비하면 아주아주, 매우매우 민주적이게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으며, 능력과 센스만 있다면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공간,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언제든지 꿈 꿀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렇게만 보면 글쓰는 사람은 죄다 웹소설에 맞춰서 글을 써야 한다고 느끼겠지만, 그리고 나 역시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렇게 때려치고 나온 이유, 운이라는 요소에 크게 좌우되는 공모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모두 웹소설에서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에 미학을 느끼지 못해서겠지.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구요. 만약 그 미덕이 내 작문인생에 미학이었으면 나 그 판에 완벽 적응해서 돈 좀 벌었을텐데. 소위 말하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밥먹고 살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웹소설이 추구하는 미덕에 나는 버티지 못하였고 그것은 재능이자 어떻게 보면 기질이 맞아야 한다. 즉, 웹소설을 쓸 수 있는 기질이 타고 나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면 웹소설에서 미덕이라고 여기는 글의 특징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뭐 어렵지 않다. 남자가 원하는 성향의 웹소설은 인생역전물, '나혼자 존나 잘나서 엄청 잘나서 대박이다' 같은 류의 성공기 스토리가 조회수 상위권에 안착된다. 남자의 타고난 본능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알파메일이 되어 남자를 다스리고 여자를 거느리는 것이 남자의 타고난 본능이라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지않은가. 그러면 여자는? 여자의 음습한 하이퍼가미 욕구와 피가학적인 충동을 잡아내는 줄거리, 강간, 폭행, 가스라이팅, 무섭지만 강한 남자에게 종속되는 이야기가 잘 먹힌다. 뭐? 여성 인권이 뭐 어쩌고 저쩌고? 데이트 폭력 어쩌고 저쩌고? 페미니즘 여전사 이야기는 딴대가서 하시고요, 그런 글은 전반적으로 잘 팔리지도 않을 뿐더러 호응도 없으니깐 포기하시라. 남자랑 화끈하게 놀아보려고 찌찌 거의 절반쯤 드러난 옷 입고 갈비뼈 부러질 정도로 코르셋 조이며 헌팅포차에 왔는데 갑자기 왠 탈코페미가 꾸밈노동 하지 마라고 하네? 누가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줄까?
 
 
  게다가 독자와 다이렉트 소통 되다보니 욕구에 관한 요구는 더욱 노골적일 수 밖에 없다. 소통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작품의 방향성까지 자기 입맛에 바꾸고 싶은 집착이 다른 장르들보다 유난히 강하다는 것이다. 00 너무 고구마다, 00 하차했으면 좋곘다, 전개 빨리빨리 나가주세요. 물론 다른 장르에 비해 웹소설은 작가주의가 가장 적은 분야라고 하지만 간혹 적당히를 모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자신의 욕구를 들이밀고서는 당장 해결해 달라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약간 변태같아 보이기도 하고...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짤 중 하나인 "야 거시기 꺼내봐... " 그게 생각 나기도 하고... 내가 작가인지 글써주는 AI인지 모를 때가 많기도 하고...
 

 
  이처럼 웹소설판은 이성을 향한 강력한 본능, 유전자의 본능을 토대로 한 곳이기에 어떤 인간에 대한 진중한 생각, 아이러니와 모순, 인간에 대한 통찰력 같은 것은 웹소설 안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로 전략할 수 밖에 없다. 씹선비 같은 거지. 헌팅 포차에 왔는데 혼자 무게잡고 "인생이란..." 거리는 눈치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인거지 뭐. 물론 모든 스펙트럼을 뛰어넘는 사람을 우리는 프로라고 부르고 프로 작곡가들은 댄스곡도 쓰고 발라드도 쓰고 할 거 다하지만 아쉽게도 난 그런 종류의 천재이자 프로가 아니라는 거. 물론 종종 "이 소재 웹소설로 쓰면 대박인데?"라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만 장편소설로 쓰기에는 너무도 짧고, 단편으로 쓰기에는 독자의 호기심을 달아오르게 만들기에는 분량이 너무 부족하다. 즉 잠깐의 호기심으로 깔짝거리다가 끝나버린다.
 
 

  으잇? 왜 포기하세요! 웹소설의 탈을 쓴 순수문학을 쓰면 되잖아요! 그러니깐 영화에서나 쓸 카메라 기법을 뮤직비디오로 끌고 와서 예술적인 제작자라 호평을 받는 일처럼 말이죠!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쉽게도 그렇게 소설을 쓸 경우 진행이 지지부진하고 고구마 한사발 쳐먹은 글로 평가 받습니다요. 순수문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웹소설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야? 끔찍한 혼종인가? 자신의 글이 혼종 취급 받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그럴 바에 포기하는 게 세상 편합니다. 더군다나 웹소설판은 예매한 장르와 섞은 것을 받아줄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절대 아니다. 모 아니면 도. 미친놈 아니면 미친년이 되어야지만 해볼 수 있다. 그야말로 날카롭게 날이서야 한다. 할 수 있는 방법 다 끌어써서 호응을 이끌어 내야한다.
 
 

  혹시 소설 <고래>를 쓴 천명관 소설가 아는 사람? 나의 삼촌 브루스리와 고령화가족을 쓴 소설 작가 말이다. 문예지 <악스트>에서 했던 인터뷰 중에 한국 문단의 문제점으로 대중과의 적극적이지 못한 소통을 말했을만큼 그는 순수문학이 다른 장르처럼 대중친화적이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 천명관 소설가가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장편 소설을 쓰며 호기로운 도전을 했지만 별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니... 그야 당연하지. 카카오페이지에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소설이 어떤 소설인데. 다시 환생했을때 나는 악당대왕의 쇼듕한 2살아기로?! 응애?! 찌질한 말단 사원인 내가 청수재단 엘리트 요원으로?! 두둥?! 다른 순수문학 소설가에 비하면 천명관 소설가는 정말 문장이 가볍고 쉽게 읽히는 스타일에 속하지만 그마저도 진중하게 보일만큼 웹소설판은 본능의 아수라장이자, 무서운 공간이라는 사실. 그래서 나 못해못겠다는 거다. 나 거기 너무 무서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