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미 내 몸 안에는 '개같이 노력했지만 결국은 탈락' 면역 세포가 자리잡았기에 이번 7월 공모전에 탈락해도 그렇게 마음 아프지 않다. 어린 아기도 제대로 일어서기 위해서 수십번, 수백, 수천번을 넘어졌는걸. 프로게이머 홍진호도 수백 수천 수억 게임을 했다잖아. (1초에 1번 게임하는 홍진호) 그런데 겨우 몇십번 떨어 졌다고 해서 회의감? 포기하고 싶은 마음? 당연히 없지. 다만 내 노력의 끝이 땅을 딛고서 두발 서 있는 멋있는 모습이 아니라 프라이드, 품격, 기품 다 떨어 트리게 만드는 개다리 춤일까봐 걱정되서 그렇다.
사실 지망생들의 기운을 빠지게 만드는 것들 중에 가난, 보상 받기 힘든 노력의 결과, 예술을 우습게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뒤쳐진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환상 파괴, 즉 자기가 노력하는 분야의 실체를 알고 실망해서 떠나는 지망생들도 꽤 많다.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도 문학이라는 분야가 청렴결백하지 않고, 약자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며, 허세 뿐인 사람들만 있다면서 전과를 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뭐. 한때 화재였던 문단계 미투에 경악해서는 다시는 글을 쓰지도, 읽고 싶지 않다던 독자겸 지망생도 있을정도인데. 그 느낌은 마치 열심히 준비한 공모전에 탈락하고 대상 받은 작품을 보면서 배울 점이 있나 알아보려는 그때, "딸아이의 봉긋한 젖가슴... 깨물면 시큼 달달 과즙..." 같은 글이 대상을 받아서 충격 먹은 것과 같은 꼴이다.
그리고 짜잔! 그 일은 실제로도 아주 아주 많습니다! 실제 중견 작가가 여자 작가 지망생을 지망생이 아닌 여자로만 보면서 성희롱을 일삼는 사건, 그것도 성인 여성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에게도 마수를 끼치는 사건이 미투로 인하여 까발려 지게 되었다. 영향력이 적은무명작가도 아니고, 이제 막 문단계에 들어온 신인 작가도 아닌, 방구 꽤나 뀐다는 이름 있는 작가, 어디 예술계에서 거하게 한자리 해먹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어디 미투 사건 뿐이랴. 전화 한통이면 알사람 다 알만큼의 좁은 커넥션, 자꾸 정치적 좌파와 연관하고 싶어하는 모습, 표절 사건도 조용히 넘어가 주는 끼리끼리 문화, 아직까지도 작가가 자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세 시스템도 지망생 아탈에 있어 한몫한다. 봤지? 알면 알수록 실망할거라고. 차라리 다른 업계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려러니 하고 지나가겠지만 하필 내가 노력하고 싶고 도달해 보고 싶은 곳에서, 그리고 그 분야의 탑을 찍고 있는 사람이 문제를 벌이니깐 노력해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는 것이다. 생각해봐라. 내 노력의 끝이 저딴 사람이 되는 것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펜을 쥐는 이유는 사람은 미워하되 예술은 결코 미워할 수 없어서다. 어디 야설 사이트에나 나올법할 문장을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개저씨들이 드글드글 거려도, 중소기업만도 못하는 정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고 해도 떠나지 못할 만큼 나는 글을 참 사랑하거든. 그거면 된 거 아닌가? 문학 기득권이 정한 미학에 들어갈 필요 없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는거다. 그들이 정한 미학기준, 인물의 특징, 하나도 따를 필요가 없다. 물론 그들이 나누어줄 수 있는 찬사와 인정은 없겠지만, 그리고 그 길이 많이 외롭기도 하겠지만 그게 뭐 어때서? 예술은 그 맛에 하는 거 아니야? 인정 받지 못하는 재미, 자유, 만약 지망생들이 남의 인정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글 같은 거 안 쓰고 어디에서나 인정해주는 토익공부, jlpt, 자격증 공부, 언제든지 새직원으로 갈아치울 수 있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야근했겠지. 하지만 그대는 그러 하지 않잖아.
글을 사랑하지만 문학판 돌아가는 꼬라지에 열 받아하는 작가 지망생이여, 자신만의 글을 써라. 미투 사건 때문에 열받아 죽겠는데 문학을 사랑하는이여, 자신의 환상을 잘 지키도록 하라. 내가 노력해서 도달해보고 싶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실망스러운 짓을 한다고해도 어차피 그건 당신이 아니지 않는가. 인생 역시 결국 죽는 허무함만 있을지라도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유, 삶을 만들어가는 이유는 우리가 영원히 건강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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