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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역할 놀이에 맞춰주지 마세요

에세이/옥덕순의 인간 관계학

by @blog 2025. 7. 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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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 심리상담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내가 다 불편하더라. 왜냐면 내담자가 사람들의 작은말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며, 허래허식이 담긴 말을 진심으로 믿어 상처받았다고 하는데 이에 상담사는 당신은 너무 정직한 사람이라고, 조금은 유도리를 발휘해야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솔루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또한 그것이 이 사회에 무탈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고 말이지. 다만 상담사의 상담 방식에서 불편함을 느꼈으니... 물론 내가 상담사를 감히 평가할 위치도 안된다는 걸 알지만 백종원의 경영 솔루션처럼 그 가게의 개성, 그 사람의 개성에 문제가 있다 지적한 후 제단하려는 방식이 영 보기가 좋지 않았다. 동시에 오래된 친구가 있지 않냐고 물으며 그런 친구가 없으니 너의 성격 역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하는데 어우... 정말 그러면서까지 사람을 만나야 해? 오래된 친구가 벼슬도 아니잖아.  내가 오래된 친구가 있다고해서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거나, 자랑을 하거나, 또는 자랑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운이 좋아 잘 맞은 사람을 만난 것 뿐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거든.

 


  위의 상담사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상대의 개성을 공격한 후 제단하려는 사람을 나는 한 명 더 본 적이 있다. 자칭 경제 완벽주의자라는 유튜버, 허나 조회수를 목적으로 한국 경제 망한다고 하루종일 울부짖는 강의팔이 유튜버가 있는데 이 사람이 자신의 수익률이 엄청나다고, 내 강의는 투자 전문가들도 보는 엄청난 강의라고 난리난리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자 “정말로 그 투자 방법이 통하나요?”라고 한 사람이 묻자, “000씨 주식으로 돈 얼마나 버셨나요? 수익률 얼마나 되세요? 말해보시겠어요?” 라고 하는데 위의 상담사와 같은 비슷한 느낌을 느끼게 됐다. 그들이 취하는 인간관계 전략 첫번째, 상대방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격하기. 두번째, 흠을 잡았다면 이제 자신이 말하는 솔루션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단정 짓기. 세번째, 물론 그 솔루션에 대한 부작용도 있겠지만 성공확률이 높으니 나만 믿어봐. "너 이거 문제니깐 바꿔, 너 그렇게하면 사람들이 안좋아해, 너 그렇게 하면 오래된 친구 없이 외롭게 지낼거야, 너 인기 많아지고 싶지? 그러면 내말대로 해." 그래 그렇게 해서 바꿨다고 치자. 그런데 바꾼 모습이 자신이 편한 모습이 아닌데 행복감을 느낄까? 

 

 



  인간관계가 힘들고 짜증나는 이유는 타인이 요구하는 모습도 유지해야하지만 본인이 요구하는 모습도 취해야한다는 것이다. 사실 난 머리감는 싫어하고 안감아도 몇날 몇칠을 버틸 수 있지만 타인은 아니거든. 이틀만 안감아도 눈치 채서는 이상한 눈빛을 보내거든. 결국 내가 지내고 싶은 모습보다 타인을 위하여 억지로 내 모습을 맞춰야 하지만 매번 이 삶의 방식에서 오는 불만을 늘 삭혀야만 한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타인이 이렇게 했으면 하는 평균치가 너무 높다보니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옷차림, 말투, 행동, 하다하다 생각과 의견까지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 되고 어떤 평균치를 따르지 않으면 지적받고 바꿔야하는 것으로 취급하면서 이유없이 공격한다. 마치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내 마음의 집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앉았으니, 그만 내 영역을 침입하라고 하면 오히려 예민한 사람, 위에 상담사가 말하던 오래된 친구를 사귀기 힘든 까다로운 사람으로 취급한다. 너가 사회생활하기에 용이한 성격으로 만들어주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이냐며 몰라하는 것이다. 타인의 성격을 제단하고 바꾸라는 솔루션을 주는 것, 이는 프랑스 철학자 샤르트르가 말하는 인간관계론의 두번째 방법인 사디즘적 방법이고 타인에게 있어 매우 무례한 인간관계 방식,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 명백한 정답도 아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고 말한 샤르트르, 인간관계론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빡이 쳐서 그렇게 결론 내리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샤르트르.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론에서 사디즘이 가장 좋은 답인 것처럼 밀고 붙이고 있으니, "현실은 이러니깐 너가 바꿔. 너 생각해서 해주는 소리야. 다른 사람들이 너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언제까지 굼뜨고 있을래?" 아 어쩌라고요. 남이 뭐라고 생각하든 나랑 뭔 상관이야. 난 내 자신의 요구조건도 맞춰주기 빡세다고. 하지만 한국 특유의 군대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것도 아니면 수평적인 관계에 대한 부재인지는 몰라도 사디즘적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많고 이러한 사디즘적 인간관계 방식은 반드시 상대가 '마조히즘'적 태도를 택해야지만 유지될 정도로 불안정하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라고 하는 것을 사디즘이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요구하는 이미지에 맞춰 뼛속까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마조히즘적 태도, 그런데 만약 상대가 “아 꺼져. 나 너가 본 그런 사람 아니거든?”라고 상대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끝난다.




  어디 인간관계론에 있어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한 간단한 예시를 들어볼까? 그래, 이게 좋겠네. 내 엄마는 이중적인 사람인데 <자식을 돌보고 싶은 마음 + 그런데 자신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길 바라는 사고 방식>을 자식에게 바라고 있다. 우리딸 ^^ 언제한번 찾아와^^ 맞있는거 해줄게^^ 라고 해놓고서 찾아오면 하루 이틀은 잘 대해주거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유없는 짜증과 틱틱거리는 행동 양상을 보여주면서 결국 반강제적으로 도망치게 만든다는 것. 한두번이라면 인정하지만 매번 그러는 모습에 도대체 왜 그런가 본인에게 물어봤더니 하루이틀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까지는 뭔가 귀찮고 싫다는 것. 뭐야? 그러니깐 하루 이틀까지는 귀여운 우리딸 ^^ 엄마니깐 챙겨줄께! 라고 하지만 그 이상부터는 다시금 어떤 속박이 되어서 내가 보기 싫다는 건가? 그러나 그것을 자기 입으로 집적 말하기에는 창피하고 하니 저렇게 틱틱거리고 짜증내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한 건가? 자녀가 부모집에서 얼마나 더 머물고 싶냐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기간까지만 딱 있어라, 그 기간 동안만 귀여운 자식으로 취급해줄테니, 즉 타인의 의사나 기호를 무시하는 사디즘적 인간관계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다 결국 내가 사디즘의 기호에 맞춰주는 마조히즘을 그만두니 또 슬금슬금 한번 집으로 찾아오라고 하는데... 누가 오고 싶겠어? 역할놀이는 본인 혼자하쇼.

 

 

  이처럼 인간관계의 사디즘, 마조히즘은 부모와 자식관계에 많이 나타나고 회사, 군대에서 많이 보인다. 군대는 뭐 인정해. 왜냐면 인간을 철저하게 도구화하는 곳이잖아. 그런데 회사까지는 오버 아닌가? 사장이 머리카락이 지저분하니 자르라고 하는 거, 옷차림 좀 바꿔보라고 하는 거, 사실 외국에서는 굉장히 무례한 발언이거든. 면접때 남자친구 있냐 없냐 거리는 것 역시 정말 실례가 되는 발언이인데 한국에 서만큼은 잘 먹히는 이유가 바로 한국인의 인간관계론 대부분이 사디즘&마조히즘적인 방식이고, 못나지만 자기 고유한 상태로 머무는 것보다 잘나면서 자기 개성을 잃어버린 것을 더 옳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성에 있어서 상하의 개념이 있고 이는 위에 말했던 친구를 오래 사귀고, 유도리 있게 잘하고, 사람 잘 만나고 문제없이 지내는 것, 인기가 많아지는 모습을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다. 요즘 혼자가 편하다, 결혼 안하는 것이 좋다, 회사 안다는 것이 최고야, 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모두 이 극도의 사디즘적인 인간관계의 후유증 때문인데 타인에게 제단받고 깎여질 바에 사르트르가 말하는 세번 인간관계 방식인 “무관심”, 차라리 타인을 안보고 만다는 식이다.


 

 

 



  지금까지 매우 촘촘하게 파고든 사디즘적 인간관계, 사디즘적 사회의 나쁜 점만을 이야기 했는데 그게 꼭 단점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있지만, 백종원의 솔루션이나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물어보살처럼 독특한 사람이 나와서 이거 바꿔봐, 저거 바꿔봐, 하는 방식이 다양성을 파괴시킬 수 있지만 깊숙하게 파고든 통제능력이 사랑에서도 통용된다는 거든. 왜 외국 여자들이 k - 로맨스 드라마에 환장하는지 아는가? 왜냐면 너무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옆의 남자는 무뚝뚝하고 너의 일은 너가 알아서 하라고, 너에게는 자유가 있다고 하는데 k - 로맨스 속 남자는 친입하지 말아야 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친입하지만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거든. 사람대 사람끼리 사랑받는 느낌보다 어떤 공기같은 존재, 신같은 존재에게 사랑 받는 느낌. 쥐구멍까지 햇살이 뻗치는 느낌. 모든 곳에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다는 느낌. 어째서 로맨스 소설에 집착광고 북부대공이 뺀질나게 나오겠어. 하다하다 육아물이라고 딸이 주인공인 소설이 나오겠어. 기분 좋은 억압과 통제라서 그렇지.



  애정결핍을 가진 여자들이 환장하는 이상형이 무엇인지 아는가? 집착해주는 남자, 자신을 많이 챙겨주는 남자, 정말 사소한 것도 배려해주는 남자, 약간은 폭력적이지만 통제해주고 지켜주는 남자다. 본인의 주체성? 자유? 개성? 천부인권 사상? 그딴거보다 사랑이 더 소중해요 ♥ 어째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집착광공이랑 많이 닮았지? 그 뜻은 많은 여자들이 애정결핍 환자에게나 어울리는 사랑방식을 좋은 사랑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너무도 오랜시간 사디즘적 인간관계론에 노출되었다는 증거다. 타인의 사랑 vs 자기다움을 지키기 에서 타인의 사랑을 택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다이어트, 성형에 쉽게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보니 사회가 거대한 애정결핍증 환자였네. 국뽕이 괜히 있는 게 아니였어. 두유노우 귐치? 두유노우 지성팍? 그게 괜히 있는 것이 아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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