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을 파괴하러 온 구원자, 사실 저 문장이 과격한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뜻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해주어 한 차원 높게 성장시켜준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킹스맨 주인공이 한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평범한 삶에서 탈피한 것처럼, 가난한 여자가 까칠 도도 재벌 3세를 만나 인생 180도 바뀐 것처럼 말이지. 그러나 그건 어디 매체에서나 있는 일이고 실제 내 인생을 개박살내려고 온 사기꾼만이 구원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왜 인생에 가장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구원자의 모습으로 다가오는걸까?
그래, 말이 안되잖아. 왜 사기꾼하고 구원자의 모습은 종이 한장 차이처럼 구별하기 힘드냐는 말이다. 사실 사기 당하는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모든 일에 어리버리해 하지도 않으며, 에헤헤! 나 바보인가봥... 미안해용! 거리는 멍청이도 아니다. 그들 역시 정규교육 과정을 거치다 못해 보통사람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꾼에게 속은 이유는 사기꾼의 얼굴에 "나.사.기.꾼."이라고 적혀져 있지 않을 것을 넘어 백마를 탄 초인처럼 생겼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새로운 역사를 이끌 것 같은 스티븐 잡스, 일론머스크, 뭔가 있어보이는 발명가처럼 생겼기에 흠뻑 속는 거겠지. 당장 테라노스 사건만 보더라도, 아니 외국까지 갈 필요없이 황우석 박사 사건만 보더라도 사기꾼은 절대 사기꾼이라 하지않고 오히려 흥미로운 이야기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이끈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사람과 달리 매우 섹시하다.
나를 파괴하러 온 악당의 세가지 특징 중 첫번째, 재미없는 일상과 180도 다른 이야기만 하다보니 섹시해보인다. 그들은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회사 다녀 착실하게 돈 버는 짓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소리라고 한다. 세상에 무시 받던 내가 우주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존재?!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안 속아. 현실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의 막힌 맥을 단번에 뚫어버리는 소리를 남발하는데 얼마나 달콤하겠어. 위의 일론머스크만 보더라도 화성식민지를 입에 달고 살지만 화성을 테라포밍하는데 들어갈 엄청난 비용, 시간, 예초에 자기장이 없는 행성에 식민지를 만든다는 것은 누가봐도 대책없이 없는 발언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뻔한 상식보다 재미있으니깐, 또 아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우주선을 척척만드니깐 사람들이 혹한 것이다. 동시에 실패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철저하게 가리면서 말이지.
나를 파괴하러 온 악당의 세가지 특징 중 두번째, 왜냐면 사기꾼도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는 구원자의 모습으로 나아가야만 하니깐. 위에 말한 것처럼 자기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이나 실패 가능성을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깔끔한 외형,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극적인 스토리, 말빨 같은 것들로 말이지. 그 구조는 작전주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데 천천히 올리다가 또 천천히 내리고, 그러면서도 또 극적인 뉴스 기사를 내서 극적으로 올리는 방법과 유사하다. 특히 남자 특유의 허세는 이러한 구원자 이미지를 더욱 증폭시켜 주고 본인 스스로도 그 사실을 믿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구원자를 본 사람 역시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나를 파괴하러 온 악당의 세가지 특징 중 세번째, 늘 구원받고 싶은 인간의 심리 때문에 구원자 포지션에 있는 사람을 과대 평가한다. 사실 사기꾼도 잘못이지만 그 사기꾼을 향한 믿음이 과도하게 섞이는 바람에 거대한 사기극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악인에 대해서도 과대평가하지만 선인에 있어서도 과도할 정도로 과대평가하고, 그러다보니 비이성적인 판단을 넘어 자살에 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단체인 IS에 자진으로 들어간 김군이 있는데 IS의 악랄함은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봐도 나오지만 본인이 알고 싶은 내용만,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정보만 걸러 듣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게 아닌가 싶다. 물론 당신이 아무도 찾지 못한 보석같은 사람을 만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통찰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지마라.
사실 내가 이렇게 글을 자세하게 적는 이유는 나 역시 구원자의 모습을 한 사기꾼에게 몇번 속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멍청해요, 다른 사람들은 저보다 통찰력이 없어요, 하지만 나는 달라요, 나만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어. 거기다 위에 말한 것처럼 남자의 허세와 한국인 특유의 멋져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속아버린게 아닌가 싶다. 또 내가 남에게 힘든 고민을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거든. 가족들 역시 가족의 고민을 잘 들어주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나는 내심 어떤 구원자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번 이야기 나누다보니 허세가 99%고 1%는 어떤 이상한 사상에 대한 믿음이기에 결국 나보다 똑부러진 남자는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다 해줄게, 나를 믿으세요, 라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의심하고, 두번 의심하며, 세번 의심해야지. 특히 남자라면 더욱더.
한국에 사기 범죄 비율이 높은 이유는 한국인이 모두 의사소통에 있어 트라우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그런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깐 진심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만 그에 대한 거부, 혹은 상처에 대한 기억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내심 구원자를 바래서 그런게 아닐까? 유독 한국 기독교가 정적이기 보다는 광적인 이유, 또 기독교의 모습을 한 사이비 종교가 많은 이유도 모두 구원자 포지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말이지. 한쪽에서는 구원자를 바라다가 사기를 당하고, 또 한쪽에서는 돈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사기를 치고. 아직도 부모를 찾아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 나타나 자기를 돌봐주고, 구해주고, 사랑해주길 바라고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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