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등단에도 급이 있다 (문단혐애자)

에세이/나의 작문 일대기

by @blog 2026. 3. 6. 23:05

본문

 
 
 
 

 
 


 
대학교 4학년때 일이다.
다른 애들은 취업을 위해 토익 준비하고, 조기 취업도 하고,
어떤애는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겠다고 계속 글을 쓰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애미나이의 눈초리에 휩쓸려 일찍이 취직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글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못해 이 공모전 저 공모전 다 출품했다.
그러다 한 문예지에서 대상을 받고 상금도 받으면서
소위 말하는 등단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등단한 문예지는 메이저 출판사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메이저 문예지가 아니라 마이너 문예지라는 점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것을 등단 취급 안해주더라고. 
그와 동시에 우리과에서 메이저 문예지에 등단한 애가 있었는데 
교수들은 그애를 두고서는 무슨 작가 동료라도 된 것처럼
"작가는 뚱뚱하면 안되고 샤프해야한다느니,
작품을 쓸때 고충은 어떠냐느니",
이런 말들을 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얼빠졌는지.
 
 
 
 
어린 마음에 섭섭했지.
아니, 지금 생각해도 섭섭하긴 하다.
 메이저 문예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 상금만큼은 메이저 문예지 못지 않게 받았고 
경쟁률도 500대 1로 치열했는데  누구는 작가로, 
누구는 아예 등단 취급도 해주지도 않았으니깐. 
처음 등단 소식에 담당 교수에게 문자로 전했는데 한다는 말이
"거기 혹시 돈주면 등단 시켜주는 곳 아니야?
심사위원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니?"
하여튼 개병신련 같으니라고.
넌 내 인생에서 영원히 꺼져라.
 
 
 
 
 
원래 과학자와 달리 순수문학작가들은 빙빙빙빙빙빙 돌려서 바른말 같은 거 잘한다.
허울좋은 소리 같은 거, 마음에도 없는 소리같은 거, 감상적인 말들 말이다.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고 낭만적인 소리를 하며,
"직장인이라고 하더라도 퇴근 후 글을 쓰면 당신은 작가입니다 ^^"
라고 소리를 하지만 등단작가와 비등단 작가에 대한 취급이 다르고,
메이저 문예지와 비메이저 문예지에 대한 차별이 있으며, 
그들 안에서도 급이 있고, 계급이 있으며, 지켜야할 규율이 명백하게 있다. 
사회 생활하고 다를 거 하나없다.
 
 
 
 
꼬우면 너도 메이저 문예지에 투고하라고? 
시로 시로.
왜냐면 야들은 양심이 없거든.
요즘 시대가 무슨 시대인데 인쇄를 하고 그걸 또 우편으로 보내야 함?
우편비 얼마인지 알기나 해???
또 종이는 뭐 구겨지면 안되니 빠른 등기로 보내야 하는데
빠른 등기가 얼마인줄 알고 그래.
또한 내가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스타일이라
인쇄 다하고 등기로 보냈는데 오타나 문장을 바꾸고 싶은 충동,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  
다행히도 예전과 달리 공모전 사이트가 많이 있고
이메일이나 사이트를 통해 작품을 받는 곳이 많으니
그곳에서 꾸준히 투고하고,
또 아주 운이 좋으면 성과를 거둘 때도 있기에 이 방법을 쓰고 있고
이게 또 나한테 잘 맞는다.
 
 
 
 
 그리고 난 꿀릴게 없는 걸.
난 왠만한 전업작가보다 글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진심이며, 글빨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말뿐이 아니라 성과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글쓰기에 진심인지 보여줄 수도 있다.
원래 글쓰는 사람은 프라이드가 있어야 하거든.
어디에 굽히고 막 그러면 안돼.
마치 인생하고 같은 거다.
왜 사냐는 질문에 거창한 포부와 목적을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그것을 이룰 가능성이 보통의 사람보다는 높다.
 
 
 
 
 
 
어린시절 작가 취급해주지 않아 섭섭했던 추억...
아마 그때의 난 어느 곳에 소속이 되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단체에 들어가고 싶었던게 아닐까?
마치 판이 좁아서 사람 너머 너머로는 다 아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처럼 말이지.
더군다나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곳이잖아.
기존의 부패하고 고이고 썩어버린 그런 업계보다는 조금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며,
부정과 부패가 없을 거라고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해서
더 탐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대충 실상을 알고 나니 역시 사람이 모여있는 곳은
거기서 거기였고 썩어가기 마련이다.
혹시 시간 되시면 팟캐스트 "문학은 개뿔" 한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문학과 문단에 어떤 큰 기대를 품다가 고꾸라진 그녀의 사연이 남일 같지 않거든.
 
 
 
 
물론 한편으로는 문학에 대해 심도 깊이 이야기하고, 상을 타면 같이 축하해주며,
문학적 고충을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으면 하지만 
이렇게 어디에 소속도 되지 않고 혼자서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독의 깊이라던가 사유, 발상은 확실히 혼자 있을 때 더 맛깔나게 만들어지거든.
언제나 개인은 약자다.
단체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약자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약자의 이야기이고,
그러기에 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적어나갈 자신이 있다.
 
 
 
 
 
그리고 또 완전히 외로운 것도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요.
내가 쓴 글을 공모전에 투고하고, 그 글을 심사위원이 읽는데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어. 
그 사람이 읽지 않았다면 내가 쓴 글은 그냥 
10011010101 데이터일 뿐이지 않겠냐고.
 
 
 
 
이번 5월에 낼 장편 동화를 틈틈히 쓰고 있는 지금,
내 글을 재미있게 봐주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심사위원님을 생각하니
외롭지 않아요...
존나 행복한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사실 개구라에요...
나를 닮아서 외롭지만 꿋꿋하게 사는 여자 아이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BwTyjr9YVjc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