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회사는 좋은 터가 아니다.

본문

 

 

 

 

 

 

 

이 에세이 말고도 호텔 관련 에세이를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주제가 있는데 5성급 호텔에서 쌩쌩하던 나는 왜 회사만 가면 골골대고 아플까, 라는 의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일이 싫어서라는 것을 알지만 혹시 회사에서 좋지 않은 기운이 흘러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 역시 회사만 가면 몸이 쑤시고 가슴이 답답하며 어떻게 해서든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니깐.

물론 개소리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나 역시 내가 개소리하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다. 지금이 무슨 시대인가. 21세기 아니던가.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말하는 로봇이 나오는 시대인데 뭔 미신 같은 소리를 하냐고 할 수 있겠지. 물론 유사 과학일지도 모르지만 유독 예민한 사람들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 회사가 모여 있는 공단을 걷다 보면 오싹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사 과학 하니깐 생각나는 건데 사실 우리는 유사 과학을 진실로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흔히 초등학교 교실에 하나씩 키우던 양파, 칭찬하면 건강하게 자라고 비난하면 건강하지 못하게 자란다는 양파를 키운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와 동시에 좋은 말을 하면 물의 결정이 가지런해지고 나쁜 말을 하면 물의 결정이 찌그러진다는 어떤 일본인이 쓴 책이 초등학교 필수 도서로 지정될 정도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말의 중요성, 말의 파급력과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유사 과학을 많이 접했다.

물론 욕먹으면 더 오래 산다는 말처럼 비난만 들은 양파가 더 쑥쑥 자라고 물이 사람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는 책은 엉터리 유사 과학책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나쁜 말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 변함없었고 그러기에 나름 좋은 배움의 시간이라고 난 생각한다. 부부싸움을 자주 목격하던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서 자존감이 낮고 선생에게 자주 비난을 듣는 아이는 늘 눈을 아래로 까는 것처럼 말이 주는 파급력은 어린아이의 세계든 어른의 세계든 매우 강력하니깐.

 

 

그런데 초등학생도 아는 이 사실을 어른들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말 한마디로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심지어 회사의 우두머리라는 사람이 회사 분위기를 저급하게 만드는 단어와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어디 한번 예를 들어볼까? 사장이 여직원에게 ‘미스 김’이라는 단어를 쓰고 거래처 손님이 오면 여자에게만 커피를 타라고 시키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그 사장의 말과 행동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그 회사는 여직원에게 미스 김이라고 불려도 되고 커피 타는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동시에 편견이 형성된다. 반면 어떤 회사는 자신의 손님이 올 때 자신이 커피를 타고 여직원에게는 OO씨라고 부르는 사장이 있다면 여직원을 향한 분위기와 회사 전체 분위기가 다를 것이다.

지금 예시는 고작 여직원이 커피를 타 주냐 마느냐지만 스케일이 커지면 이게 정말 무서워진다. 만약 사장이 직원을 폭언해도 괜찮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직원을 때려도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회사가 있다면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최근에 난 사장이 여유롭게 치킨을 뜯어 먹으며 직원을 폭행해서 죽였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 있다. 노동자들의 인권이 바닥 수준이던 옛날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몇 년도 안 된 실제 사건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지각했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로 때렸다는 기사를 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그런 일이 발생할 정도로 회사 분위기를 자기 편한 대로 만들어 놓는 사장도 문제, 서서히 익어서 죽는 개구리처럼 그런 분위기를 곰곰이 고심하지 못한 직원도 문제다.

 

 

그런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난 회사에서 참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이 많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또한 직원들이 남기고 간 억울함, 분노, 사무친 원한들도 회사에 그대로 남아있겠지. 입막음을 당한 궁녀들이 묻힌 뒷산, 정신 나간 원장이 환자들을 실험했던 폐쇄된 정신 병원, 허가되지 않는 인체 실험이 벌어진 지하실에서는 온갖 오싹한 느낌을 느꼈다면서 왜 직원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회사, 그런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공단에서는 오싹한 느낌을 느끼지 못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