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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슈슈버거 - 우리가 끝내 불행해지는 이유

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by @blog 2024. 4. 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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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슈슈버거가 먹고 싶었고 마침 맥도날드 어플에 슈슈버거를 할인해주는 쿠폰이 있어서 맥도날드로 갔다. 우리집은 맥세권이라 걸어서 7분 거리에 맥도날드가 있거든. 아니 그런데 무슨 빡대가리도 아니고 아이패드, 블루투스 스피커, 아이패드 받침대까지 챙겼으면서 가장 중요한 카드를 두고 왔네? 매번 겪는 나의 깜박거림에 진이 빠진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닥에 왠 주황색 쓰레기가 보였고 자세히 보니 5만원? 5만원 신사임당?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뒤돌아보지않고 잽싸게 주웠지. 방금 전 재수없다고 여겼던 사건은 행운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전화위복을 몸소 경험하던 날이었다.



  사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도 전화위복을 겪은 적이 있다. 작년 미국 나스닥 종목 애플에 숏, 즉 공매도를 했는데, (공매도란 주가가 떨어질때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 이걸 어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주가가 계속 오르는 거야. 분명 내가 보기엔 애플은 중국 애국주의로 인해 중국 판매량 부진, 인공지능 버블에 편승하지 못함, 구글 글라스와 더불어 애플카 역시 상용화까지는 한참 멀었다는 이유로 주가가 떨어질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나스닥 종목 시총 1위 주식답게 꿋꿋이 올라갔고 다시는 내 안목 따위는 믿지 말자 생각하는 그때, 주가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때동안 올랐던 것이 소위 말하는 “개미꼬시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즉 큰 하락으로 가기위한 작은 상승이 있었을 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때? 재미있지? 이 줮같은 세상 아직 살아볼만한 것은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승전 경기에 패함으로써 팀에 방출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김현진같은 경우에는 만약 결승전에 승리했다면 보통 프로게이머들처럼 2-3년의 선수생활을 하다가 은퇴했을 텐데 결승전에 패함으로써 방출, 하지만 타팀에서 선수로, 코치로, 결국에는 최연소 감독까지 지낼 정도로 세상일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거다. 사주팔자에서도 소위 말하는 대운, 즉 운의 흐름이 크게 바뀌기 직전이 가장 다사다난하고,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호사다마라고 불행과 행운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는 것처럼 이 세상은 불행과 행운의 중첩상태,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다만 상자를 열자 중첩상태가 풀리면서 죽은 고양이 것처럼 생의 마지막에는 중첩 상태가 끝나면서 오직 불행만이 남는다.

 

 

  아니 아까는 삶이 불행과 행운의 중첩 상태라면서요? 왜 갑자기 배드 엔딩으로 퉁치는 건데? 라고 묻는다면 하필 우리 삶의 마지막에 죽음만이 남아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다. 우린 죽음을 불행한 일, 탄생을 축복받은 일이자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고 있잖아. 살아있는 것은 결국 모두 죽기에 우리는 죽는 존재, 즉 불행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데드캣 바운스처럼 폴짝 폴짝 뛰어봤자 결국에는 상장폐지, 가치는 0원,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깨끗히 사라지게 될 운명이자, 이 세계는 공매도 했던 내 주식처럼 큰 하락으로 가기 위한 대장정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암울한 이야기 같다고?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에서 어떻게 하면 죽음에서 오는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을지 많이들 연구했고 특히 불교에서는 탄생을 행운, 죽음을 불행이라고 보지 않고 아예 두 개를 섞어버리기도 했다. 죽어도 영원히 죽는 게 아니고 태어나도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는 윤회 사상으로 말이지. 윤회 사상 속 우리는 죽은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슈뢰딩거의 고양이같은 존재가 되니... 오호라. 우리가 고양이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군! 왜냐면 위인들은 어떤 진리를 꼭 고양이에 빗대서 설명하니깐. 대드캣 바운스,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는 귀여워.



  슈슈버거도 다 먹었고 글도 이제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됐다. 창밖에 보이는 가로수와 벚꽃 나무도 때를 기가 막히게 아는지 봄이 되자 연두색 새싹과 벚꽃을 피워내는게 예쁘더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벚꽃은 모두 떨어지고 새싹은 풍성한 이파리가 되겠지. 그때도 식물은 때를 알고 조용히 그 시간을 보내겠지. 식물과 사람의 차이점은 바로 이거다. 식물은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때든 못생기던 때든, 잘나가던 때든 못가나던 때든 참 한결같거든. 그런데 사람은 행복 하나에 날뛰고 불행 하나에 세상 풀이 죽으며 불행한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지 않는가. 마. 인생 어차피 호사다마야. 우린 불행과 행복의 중첩 상태에서 살고 있으니깐.

 

  뭐? 그래봤자 사람은 결국 죽게되는 불행한 존재라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고? 혹시 모르잖아. 불교에서처럼 평생 윤회하면서 살아갈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종교들처럼 평생 행복만 있는 사후세계가 있을지. 그러니 이 순간만큼은 좀 즐기자고. 평생 상승할 것처럼 튀어오르는 대드캣 바운스처럼. 한달도 못가는 벚꽃인 걸 알면서도 우선 피우고 보는 벚꽃나무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거 같은데 마지막이 아닌 중첩상태처럼 즐겁고 신나게 보내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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